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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봄내골 신선

심봉사(심창섭) 2010. 5. 3. 07:10

 

  봄내골 신선(神仙)

심 창 섭

으로 울타리를 두른 춘천의 일출은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어둠 속의 춘천을 깨우려고 밤새 도시를 기웃거리던 태양은 도시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는 대룡산의 등허리를 헤치며 솟아오른다.

 

우유빛 그리움의 도시 춘천.

안개가 자욱이 깔린 의암호 건너편 중도마을의 미루나무 숲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떠오르면 춘천을 감싸고 있던 산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어떤 그리움이 도시를 이토록 하얗게 지워버린 걸까? 도시는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에 쌓인 안개속에서 한 폭의 동양화처럼 하얀 여백으로 채색되고 있다.

도시를 덮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태양을 어슴푸레 느끼면서 몽환의 일출로 하루를 연다. 점심시간이 머지않은 것 같은데 아침 해는 아직도 잠이 덜 깨인 부수수한 모습이다. 그나마 활기차고 붉은 빛을 띤 커다란 아침 해의 모습이 아닌 마치 100촉짜리 전구처럼 나른한 빛을 발하고 있는 작은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습습함과 촉촉함 속에서도 우울해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안개는 오후의 파란 하늘의 예고이기에 하루의 푸르름을 느끼는 여유를 갖는다.

 

태를 자른 곳이라는 인연으로 나는 춘천을 고향이라 말한다.

고향은 언제나 유년의 편린들이 여기저기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순간 낯설지 않은 정겨움으로 피어오른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산중턱에만 올라도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던 벌거벗었던 봉의산은 봄이 되면 온통 분홍색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도시를 활기차게 만들곤 했다. 그 진달래꽃의 아름다움보다 겨우내 헛헛해 하던 우리들에게 정말 상큼한 주전부리였다. 밍밍 들큰한 향과 약간의 쌉싸로운 맛을 내는 진달래꽃잎은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봄이라는 싱그러움으로 입안을 보라색으로 채우곤 했었다.

또 시가지를 벗어나 뚝방을 넘고 거름냄새 물씬 풍기는 구불구불한 밭두렁 들판을 달려가면 여름 내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던 대바지 강도 있었다. 겨우 발목만 넘는 물길에서도 강돌만 들추면 보이던 탱가리, 모래무지와 다슬기를 고무신에 그득히 잡아 의기양양하게 맨발로 돌아오던 신나는 여름방학이 아득한 옛이야기처럼 떠오른다.

목이 마르면 강물을 그냥 벌컥벌컥 들이켜도 배앓이 한번 안하던 맑고 맛있는 물이였고, 강 유역에서 미끈거리는 개흙을 온몸에 바르고 강물에 뛰어들어도 물이 흐려지지 않던 푸른 강물은 왜 그리도 탁해졌는지.............

푸른 대바지강 건너편에는 수박, 참외, 땅콩밭이 널려 있었다. 뜨거운 한낮 원두막 위에서 무료하게 부채질로 파리를 쫒던 망루지기가 졸기 시작하는 오후. 우리는 마치 적진지를 습격하는 특공 대원처럼 뜨거운 밭고랑을 배로 긴다. 가능하면 욕심내지 말고 잘 익은 놈을 골라야 한다. 코앞을 막고 있는 수박을 두드려 본다. 속이 빈 듯한 맑은소리가 난다. 수박 한 덩어리를 따 뒤로 전달한다. 순간 뒤에서 망을 보던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튀어!” 소리를 들었는가 싶었는데 “저놈 잡아라! 소리치며 원두막에서 내려오는 망루지기가 보인다. 죽을힘을 다해서 뛴다. 한참 후 강가에서 돌맹이로 깨트린 수박을 으적으적 씹으며 행복해 하던 때도 있었지만 때론 실패하여 여름 내내 서리했던 과일 값을 몽땅 물어주고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개학이 되면 그때의 무용담은 시시한 영화 한편보다도 신나는 이야기 거리이기도 했다.

그 서리의 짜릿한 즐거움과 덜 익은 과일을 먹고 설사를 하던 추억이 아직도 아직도 강가에 머물고 있는데 중도는 두 동강난 섬이 되고 배를 타야만 다다를 수 있는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또 안보회관, 방송국 그리고 어린이회관이 들어서 도시의 한부분이 된 삼천동은 교외의 야산이었다. 이곳도 예전 또래들과 삽 한 자루 어깨에 메고 도심지를 지나쳐 뚝방을 넘고 곰짓내(예전의 호칭)를 건너고 배미산을 지나 산길을 헤쳐 칡뿌리를 캐던 추억의 장소였다. 단맛과 씁쓰름한 맛을 내는 칡을 질겅질겅 껌처럼 씹어대며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유년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변해버린 도시와 산천.

도시 여기저기에 솟아있던 얕은 야산엔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고 너울거리며 흐르던 푸른 대바지 강은 너른 의암호가 되어 흐름을 멈추고 말았다. 고향에서 마음속의 고향을 그려보며 향수를 느끼는 나 또한 벌써 중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안개 속에서 승용차 한대가 쌩하고 신기루처럼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내 안개 속에 빠져 버리고 만다. 탈출인가. 갇힘인가. 혼미한 안개는 정신까지도 흔들어 놓는다. 그것이 안개이던, 도시이건, 아니면 안개 속에 갇혀 있든 외로움이던, 늘 꿈꾸던 탈출의 의미. 안개만 벗어나면 무엇이던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파랑새. 그러나 나이테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이젠 오히려 안개속이 편안해 진다. 벗어나고만 싶던 탈출의 의미가 안개 속에서 희석된다. 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자연에 순응하며 안개를 포용한다.

도시와 호수를 부드럽고 신비스럽게 감싸 안는 저 안개는 춘천의 무형적 상징물이다. 어느 곳이나 안개는 있겠지만 강마을의 지독한 안개는 춘천에 “안개의 도시”라는 특별한 이름을 부여한다. 아침 해가 늦잠을 자고 차량이 거북이 걸음마를 한다 해도 오늘도 춘천은 안개의 베일속에서 또다른 비상을 꿈꾸고 있다.

모처럼의 등산길.

대룡산 줄기 깃대봉 정상에서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도시를 가소롭게 내려다본다. 화악산, 북배산, 삼악산, 금병산, 안마산, 구봉산, 마적산, 용화산이 손잡고 둥글게 이어져 강강술래를 하듯 돌고 있다. 그 안쪽에 내 고향 춘천은 마치 커피 잔에 휘핑크림처럼 안개속에 갇혀있고 삐죽이 머리부분만 내밀은 봉의산이 그림처럼 떠있다.

머리를 털자 하얀 안개비늘이 도시전체로 퍼져나간다. 유난히 하얀 머리카락은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현상이 아니었다. 이제서야 내가 안개마을 사람이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나는 안개를 일으키며 고향마을 춘천을 지키는 하얀 신선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