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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의 전각(건물/ 불당)

심봉사(심창섭) 2010. 4. 8. 15:54

 

 

 

 

 

 

 

 

 

 

 

 

 

 

 

 

 

 

              *  차도 타고 배도 타고 산도 타는  일석삼조의 여행- 청평사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에 위치한 청평사는 소양호 안쪽에 등산로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품에 안겨 있는 천년고찰이다. 

                  산자수려한 자연경관 뿐만아니라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 164호 회전문을 비롯 강원도지정

                  기념물 제55호로 인 청평사지(절터), 강원도지방 문화재자료 제8호 삼층석탑이 있고

                  또한 고려시대에 조성된 고려정원(高麗庭園)있어 사계절 답사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 청평사는 973년(고려광종 24) 선사 승현(承賢)이 백암선원(白岩禪院)이린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보현원(普賢院) 문수원(文殊院)으로 중건 때마다 이름을 달리하다가  1550년(조선 명종 5)

                 에 보우(普雨) 스님이 지금의 사찰명인 청평사로 바꾸었다.
                 그러나 청평사가 유명해진 것은 고려시대  이자현(李資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세인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고려의 유명한 많은 문객들이 이자현을 찾아 방문하였고  조선조에는

                 그의 자취를 찾고자 선비들과 학자들이 이곳을 찾아 많은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평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국가의 관심을 갖게된 것은 국사였던 보우때였지만

                 그 후 한국전쟁 등과 인재로 국보였던 극락보전이 화재로 사라지고  구광전(九光殿)과 사성전

                 (四聖殿) 등도 소실되어 당시의 건축물로는 유일하게 회전문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건축물은 사라졌어도 당시의 축대 등 절터의 보존상태가 양호했으나 사찰에서 극락

                 보전, 삼성각 대웅전 등을 신축하였으나 아쉽게도 예전의 모습, 규모, 양식 과는 다른 건축물이

                 지어졌다.

                 이후 근년에 사지 발굴조사를 한후 행각, 루각, 전각 등을 지어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현재 건축물로는 회전문을 비롯 대웅전 삼성각 적멸보궁 나한전 관음전 루각(경운루) 종각과

                 2동의 요사채 1동의 주지실이 있다. 

                 또 사찰 마당 좌우에 남아있던 비석 받침돌중 좌측 우리나라 신품사현의 한분으로 불리던 탄헌

                 스님의 글씨로 만든 이자현의 행적과 사찰의 연혁이 새겨진 청평사 문수원중수기비는 복원

                 되었으나 우측의 시장경비는 비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또한 청평사를 감싸고 있는 산도 본래는 경운산이였으나 이자현이 청평산이라 하였으나 언제

                 부터인지 오봉산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이외에도 이자현 은거시 조성된 8개의 암자인 견성(見性), 양신(養神), 칠성(七星), 등운(騰雲),

                 복희(福禧), 지장(地藏), 식암(息庵), 선동암(仙洞庵)은 모두 사라지고 겨우 그 터만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아직 복원되지 않은 우측의 비석인 유원고려국청평산문수사시장경비(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

                施藏經碑)는 1327년(충숙왕 14) 원나라 황제 진종(晉宗)의 황후가 불경과 함께 돈 일만 꾸러미를

                시주하면서 원나라 황실과 황태자의 복을 빌고한 내용이 담긴 비석으로 조선의 명필인 이암의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