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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공주와 상사뱀 관련

심봉사(심창섭) 2010. 4. 8. 16:05

 

 

 

 

 

 

 

 

              *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 청평사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중국(당 태종)의 딸인 공주와 한 평민청년이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었지만 

                당시의 관습상 공주와 평민의 사랑은 불가하던 시기였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처럼  몰래 공주의 궁을 드나들던 청년이 붙잡히자 격노한 당 태종은

                이 청년을 처형해 버린다. 사형장에서 청년이 참형되자 홀연히 한마리의 큰 구렁이(상사뱀)로

                변한  청년은 공주를 찾아가 몸을 감아 버린다. 신분상의 차이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의

                한이 상사뱀으로 화한 것이다.  

                공주는 자신과 사랑을 나누던  청년의 혼을 생각하고 애처러워했으나 자신의 몸을 감고있는 뱀이

                징그럽고 행동을 제약을 받아 점점 야위어만 갔다  놀란 황제는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

                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고승이 신라의 영험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

                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시녀와 함께 신라의 사찰을 순례하다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무렵 청평사 입구에 도착한 공주일행은 계곡의 구성폭포 앞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날 계곡에서 범종소리가 들려오자

               "절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밥을 얻어오려고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수  있는지요, 너무 피로

                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다녀오겠습니다."하니 한번도 말을 들어

                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에서 내려와 주었다.

                몸이 홀가분해진 공주는 계곡의 웅덩이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사찰로 들어가니 마침 가사불사

                법회가 있어 법당에서  법회에 참여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혹시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선다. 절에 도착한 상사뱀이  절문(중문으로 사천왕문과 같은성격)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내리쳐  상사뱀이 죽어 빗물에 떠

               내려 깄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공주는  밥을 얻어 가지고  동굴로 내려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 웅덩이

               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주는 짬짝 놀랐지만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뱀을 정성껏 묻어 주었다.

               시원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자신때문에 죽은 상사뱀이 안타까워 청평사에 머무르며

               그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은 기뻐하며 금 세 덩어리를 보내니

               한 덩어리는 청평사에 기거하면서 사용하고 하나는 귀국여비로, 또 하나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

              석탑을 세우니 후세에 이를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도 부른는 연유가 되었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들어가려다 벼락을 맞고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공주가 노숙했던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재계한 웅덩이를 공주탕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렇게 애처롭고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공주와 상사뱀의 러브스토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건립하였

              는데 처음에는 구성폭포 앞 공주굴 부근에 건립하고자 했으나 문화재구역으로 제한을 받아 현재의

              위치에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