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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 『서당 개, 달 보고 짖다』 발간

심봉사(심창섭) 2021. 1. 8. 19:54



prologue

 

로맨스그레이romance grey를 꿈꾸며

 

* 어느 사이 세월이 꽤나 흘렀다.

미련을 비워야 한다면서 또 일을 저질렀다. 한동안 책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오랜만에 집중력은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 순간이 행복해 멈출 수가 없었다. 숨찬 과욕이지만 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개밥에 도토리마냥 뒤채이다가 불혹의 문턱에서 우렁각시 만나 어렵사리 상투를 틀었다. 의암호 언저리에 둥지 틀고 셔터누르기와 끼적임을 벗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워져가는 첫사랑이 잊힐까 임프란트 치아로 되새김질하며 그리움과 외로움사이에서 조금씩 시들어가는 중이다.

 

  지공선사地空禪師 자격을 얻은 지 이미 오래이다.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무례해 보이지 않고, 식구들 앞에서 서슴없이 방귀도 뀔 수 있는 나이이다. 너무 느려 답답했고, 때론 너무 빨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세월의 뒤란에서 주절대던 혼잣말에 사진 몇 장 얹어 포장을 한다. 겉은 그럴듯할지 몰라도 사실은 흩어져 있던 원고를 모아담은 종합세트이다. 등단 14년 만에 엮는 감성 일변도의 어눌하고 부족한 첫 산문집이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라 했다. 아득한 저편인줄 알았는데 불쑥 다가선 시간과의 마주침에 스스로 놀란다. 그 많은 날들이 낮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한 순간이었다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내 발자국을 찾는다, 어느 것이 내 것인지 알 수 없는 삶의 흔적이 미미하다.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색 바랜 사진첩을 들춘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던 내 젊음의 세월이 고스라니 담겨있다. 그곳에선 내가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위로를 받는다.

 

  흰머리와 주름살이 잘 어울리는 로맨스그레이romance grey를 꿈꿨다. 매력 있게 늙지 못하고 있지만 나이를 먹는 일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 했으니 시들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터닝포인트turning point의 시점이다. 지난 생각이 어설퍼 내칠까 하다가 내 삶의 여정이고 사고思考였기에 부끄러움을 숨긴 채 밀어 넣었다. 문장과 사진을 교직交織한 것은 부족한 문학 감성을 감추기 위한 방법이다.

 

  하찮은 글이지만 내 삶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곰삭은 안개서정을 담으려 했다. 허나 개꼬리를 묵혀도 범의 꼬리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주눅이 든다. 뚝배기 같은 삶이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행복이라 자위自慰한다. 그 동안의 잡다한 상념想念을 반추反芻하며 타협과 순응의 보폭으로 스스로를 정돈하고자 한다.

 

  부족한 삶의 노정路程에서 등대가 되어 주신 많은 분들의 격려와 질정叱正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樂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