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조형물

춘천의 기념물 진병산 전적비

심봉사(심창섭) 2010. 8. 1. 11:24

 

 

 

 

 

 

 

 

더보기

진병산 전적비

 * 김유정역을 지나고 신동면 사무소, 금병초교를 차례로 지나면 금병산의 작은 산기슭이 이곳까지 뿌리를 내려 어쩔수 없이 도로는 크게 굽어지며 산기슭을 돌아가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우측도로는 팔미리 방향이고 좌측은 삼포, 광판리로 가는 길이다. 

 이 산이 발걸음을 멈추는 작은 능선위에 바로 진병산 전적비가 위치한다. 이 비석이 자리잡은 산은 금병산이나 예전 이곳에서 진을 치고 전투가 있었던 연유로 이 작은 능선을 진병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비석 바로 윗편에는 지정문화재로 관리 보호되고 있는 강원도기념물 제45호 증리 고분군(춘천 문화재편 참조) 이 소재한다. 고분군이라 불리는 것은 여러기의 고분들이 있을때 한자로 무리 군(群)자를 사용하는데 천전리 지석묘군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1979년 12월에 당시 춘성군(현 춘천시)에서 세운 오석재질의 비석으로 글은 최승순 교수가 지었으며,  서예가 이만진의 글씨이다.      

 

<진병산 전적비 비문 전문>

여기 금병산은 전장의 사화 속에서는 진병산이라 전해온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여주 신륵사와 원주 구미포에서 왜군을 격퇴한 강원도 조방장 원호(元豪 )장군이 춘천에 머물렀을 때 이 일대에서 왜군과 혈전을 펴 진병산이라 별명하게 되었다.

그 후 구한말 의병항쟁 때 또 진병의 기록으로 민족사에 빛을 남겼다. 을미(乙未)의병장 이소응(李昭應) 이진응(李晋應) 유홍석(柳弘錫,) 홍재구(洪在龜)선생 등이 춘천지방의 의병을 이끌고 여기를 넘나들며 진을 쳤고 정미(丁未)의병 때는 이강년(李康年)의 부대가 1907년 12월 13일 도연합의병의 서울 진격 작정 중 이곳에서 작전을 펴 핏자국이 산기슭을 적셨다. 국난이 일 때마다 나라를 위해 정성을 다 바친 선조의 슬기와 그 용기는 오늘의 국난을 극복하여 만대의 영광을 심으려는 후손의 귀감이 될 것이니 조상의 얼을 기리는 알뜰한 마음을 모아 여기 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