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金石文)이란?
금석문은 말 그대로 철이나 청동 같은 금속성재료에 기록한 금문(金文)이나 비석같은 석재(石材)에 기록한 석문(石文)을 일컫는 말이다.
- 백제시대에 일본에 보낸 칠지도(七支刀)는 철로 만든 칼이지만 그 몸체의 양면에 칼을 보낸 사연을 기록한 것과 고구려시대에 광개토왕의 의례용기 바닥에 호우라는 명칭을 양각으로 주조한 것 그리고 불상광배에 조성기를 새겨 넣은 것 등이 금문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비롯 무덤에 넣었던 망자의 신원과 행적을 기록한 묘지문(墓誌文)과 조선시대 지방관들의 선정을 기리는 송덕비 등이 석문의 대표적 사례이다.
허나 일반적으로 금석문이라 하면 금문, 석문뿐 아니라 토기 명문(銘文), 나무 조각에 쓴목간(木簡)의 기록, 직물에 쓴 포기(布記), 고분의 벽에 붓글씨로 기록한 묵서명(墨書銘), 칠기(漆器)에 기록한 묵서, 기와나 전돌의 명문(銘文) 등을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현재 춘천에 전해지는 금석문은 그리 많지 않은 상태이며 여기서는 청평사의 문수원중수기비를 비롯하여 묘비석(특히 신도비)을 중심으로 하되 몇몇의 암각문을 포함하고자 한다.
금석문이 중요한 것은 옛 선인들의 글씨를 통하여 우리의 서예사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옛 글씨를 두고 서예의 대부로 추앙되는 진나라의 왕희지, 당나라의 구양순, 안진경 등 중국대가들의 아류로 보는 이들이 많다. 서예사에서 이들의 서체를 함부로 논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글씨체를 바탕으로 우리의 정서에 맞는 미감으로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필법으로 변모시킨 걸작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청평사 문수원중수기비는 12세기 고려의 명필인 대감국사 탄연의 글씨인데 서화가 오세창은 “근역서화지”에서 ‘마치 연꽃이 못에서 피어나는 듯하고 단단한 뼈가 가운데 박히고 겉에는 고운 살이 둘러 있어 재주 있는 목수가 좋은 재목을 가지고 사방을 알맞게 깍아만든 그릇같아서 전연 아로새기고 깍은 흔적이 없게 되었다. 이것이 어찌 배워서 얻은것이 겠는가. 하늘에서 받은 재주일 것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의 서체(행서)는 강철같은 획의 힘찬 필세가 압권으로 날아갈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예리하고 침착하고 통쾌하다고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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