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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신상 사진과 설명(3) 원숭이, 닭, 개, 돼지

심봉사(심창섭) 2011. 1. 3. 11:25

 

 

원숭이해는 임신(壬申), 갑신(甲申), 병신(丙申), 무신(戊申) , 경신(庚申) 등 다섯 번으로,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잔나비, 즉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갖가지의 만능 재주꾼이고,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을 빰칠 정도로 애정이 섬세한 동물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교를 믿는 몇몇 민족을 제하고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The emblem of ugliness and trickery)로 기피하면서도 사기(邪氣)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좋은 건강, 성공, 수호(보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서 가장 영리하고 재주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이 닮은 모습, 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띠를 말할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같은 속설 때문이다.
우선 원숭이가 우리 민족에게 비친 대체적인 모습은 구비전승에서는 꾀많고 재주있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이야기된다. 도자기나 회화에서는 모성애(母性愛)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봉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 많이 표현되고 있다.
지혜와 잔재주를 겸한 원숭이, 아픈 척, 슬픈 척, 죽은 척 등등 필요에 따라서 임기응변적 표현이 뛰어난 연극의 시조, 쾌청한 날에 신바람나고, 우충충한 날에 청승을 떠는 원숭이의 성깔 등 이러한 원숭이의 생태학적 모형을 문화의 창을 통해 민속학적 모형으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사람의 운명과 연관시키는 띠문화를 만들었다. 가령 잔나비띠는 천부적인 재질인 숫자놀음과 지혜를 잘 이용하는 수학 공학적인 직업인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등의 속설이 있다.

원숭이는 실제로는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이지만, 여러 민속과 전통미술품에 나타난다. 이러한 원숭이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실존하는 동물이상으로 그 형태나 행태 혹은 생태 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하여 원숭이의 상징성, 암시성 등을 부여했다.
원숭이를 재수없는 동물로 인식하여 잔나비로 대칭(代稱)하고, 아침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 중국과 일본의 원숭이 풍속의 전래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관념이 희석되었다. 그리하여 민속에 나타나는 원숭이는 다소 부정적이나, 전통미술품에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좋은 면이 부각되었다. 원숭이 이야기에서는 원숭이의 생김새나 흉내내기, 재주, 꾀 등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탈판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사람의 흉내를 적나라하게 냄으로써 노장의 형식적인 도덕이나 신장수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속신에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잡귀잡신을 원숭이가 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큰 건물이나 사찰에 원숭이상을 새겨 세우는데, 일반적으로 비애, 불운, 슬픈 장난 등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토우 원숭이는 부적으로 휴대하거나 부장품 혹은 각종 용기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고, 십이지상의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방위신 또는 시간신으로 나타난다.
청자, 청화백자, 백자에서는 도장의 꼭지, 서체, 작은 항아리, 연적, 수적, 걸상 등에서는 자연에서의 원숭이의 모습과 모자 유대의 행태를 아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 속에서 원숭이는 십장생과 함께 장수의 상징과 자손의 번창, 불교와 서유기의 내용에 따라 스님을 보조하는 역할, 자연생활 모습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닭(酉)는 12지의 열 번째 동물로서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기유(己酉), 신유(辛酉) 등으로 순행하며 시각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月)로는 음력 8월, 방향으로는 서(西)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에 해당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黎明)을 알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움소리 !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들여졌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 신앙도 그 여명을 하는 주력 때문일 것이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에서는 믿고 있었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흔히 칭송된다.
즉 닭의 벼슬(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닭은 여명,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태양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의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이 있기도 하다. 장닭이 훼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 신비로운 영물로 간주한다. 닭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양상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속신화나 건국신화에서 닭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 본풀이 서두에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개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알지 신화에서는 호공이 밤에 월성을 지나가다가 나무에 황금 궤가 걸려있고 그 밑에서 흰 닭이 울었는데, 그 황금 궤 안에서 동자가 나왔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성을 김씨라 하였다는 것이
다. 여기서 나라를 통치할 인물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닭의 울음소리는 빛의 상징으로서, 자연상태의 사회에서 국가적 체계를 갖춘 단계를 예고하는 존재이다.시계가 없던 시절의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움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시보로서 닭소리는 고전소설 심청전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 !”
심청이가 뱃사공에게 팔려가기로 약속한 날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탄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닭소리는 새벽, 즉 날의 밝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개띠 해는 육갑(六甲) 가운데 갑술(甲戌), 병술(丙戌), 무술(戊戌), 경술(庚戌), 임술(壬戌) 등으로 순행한다. 십이지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戌)는 시간으로는 오후 7시에서 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 달(月)로는 음력 9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개(戌)는 이 방향과 이 시각에 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동물신(動物神)이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동물 가운데 가장 흔히 접할 수 있고, 인간과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동물은 개이다. 개는 그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사람을 잘 따르며, 개는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또 자기의 세력 범위 안에서는 대단한 용맹성을 보인다. 특히 주인에게는 충성심을 가지며, 그 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 경계심을 갖는다. 아주 오랜 시기를 같이 살아온 개는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헌신하는 충복의 상징이다. 특히 설화에 나타나는 의견(義犬)은 충성과 의리를 갖춘 우호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을 한다.
의견 설화와 의견 동상, 의견 무덤 등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전국에서 전승된다. 그런가 하면 서당개, 맹견, 못된 개, 미운개, 저질 개, 똥개, 천덕꾸러기 개는 비천함의 상징으로 우리 속담이나 험구(욕)에 많이 나타난다. 동물 가운데 개만큼 우리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개살구, 개맨드라미 등 명칭 앞에 ‘개’ 가 붙으면 비천하고 격이 낮은 사물이 된다.
예로부터 개는 집지키기, 사냥, 맹인 안내, 수호신 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흰개는 전염병, 병도깨비, 잡귀를 물리치는 등 벽사 능력뿐만 아니라, 집안에 좋은 일이 있게 하고, 미리 재난을 경고하고 예방해 준다고 믿어 왔다.『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의 멸망에 앞서 사비성의 개들이 왕궁을 향해 슬피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이 난다 하여 개를 팔아 버리는 습속이 있다. 또, 개가 이유 없이 땅을 파면 무덤을 파는 암시라 하여 개를 없애고, 집안이 무사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고 근신하면서 불행에 대비한다.

무속신화, 저승설화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환생(還生)하여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길을 안내해 주는 동물이 하얀 강아지이다. 이처럼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옛 그림에서도 개 그림이 많이 나온다. 동양에서는 그림을 문자의 의미로 바꾸어 그리는 경우가 흔하다. 개가 그려진 그림을 보면 나무 아래에 있는 개 그림이 많다. 이암의 화조구자도와 모견도, 김두량의 흑구도 등이 그 예인데, 나무(樹) 아래에 그려진 개는 바로 집을 잘 지켜 도둑막음을 상징한다. 개는 ‘戌’(개 술)이고, 나무는 ‘樹’(나무 수)이다.
‘戌’은 ‘戍’(지킬 수)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戍’는 ‘守’(지킬 수)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樹’와도 음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된다. 즉 “戌戍樹守”로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개의 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써 도둑을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일종의 주술적 속신(呪術的 俗信)은 시대를 거슬려 올라가 고구려 각저총의 전실과 현실의 통로 왼편 벽면에도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개그림을 그려 놓았다.
사람들은 주인에게 보은할 줄 알고 영리한 개를 사랑하고 즐겨 기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흔히 천한 것을 비유할 때 개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개는 아무리 영리해도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 밖에서 자야 하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 사람보다는 낮고 천하게 대접받는다. 개에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으니 의로운 동물이라는 칭찬과 천하다고 얕잡아 취급하는 양면이 있다. 즉, 개에 대한 민속 모형은 충복과 비천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돼지해는 육십갑자에서 을해(乙亥), 정해(丁亥), 기해(己亥), 신해(辛亥), 계해(癸亥) 등 다섯 번든다. 돼지(亥)는 12지의 열두 번째 동물이다. 해시(亥時)는 오후 9시에서 11시, 해월(亥月)로는 음력 10월이며, 해방(亥方)은 북서북(北西北)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시간신(時間神)이자 방위신(方位神)에 해당한다.
‘돼지’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도 있고, 흔히 뚱뚱한 사람을 보고 ‘뚱돼지’라고도 하며, 귀엽게 ‘꽃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돼지는 십이지의 마지막 동물이며, ‘돼지고기는 새우젓과 같이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 고사를 지낼 때는 돼지머리를 상 위에 올려놓고 장사가 잘되기를 빈다.
돼지와 관련된 민속은 참으로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천년 전에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돼지는 신화(神話)에서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동물, 제의(祭儀)의 희생(犧牲), 길상(吉祥)으로 재산(財産)
이나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을 상징한다.
그런 반면에 속담에서 대부분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는 모순적 양가성(矛盾的 兩價性)을 지닌 띠동물이다.
가축으로서의 돼지의 용도는 고기와 지방을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한 신성한 제물(祭物)이었다.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祭典)의 희생으로 쓰여진 동물이다. 제전에서 돼지를 쓰는 풍속은 멀리 고구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전승되는 역사 깊은 민속이다. 고구려 때는 하늘에 제물로 바치는 돼지를 교시(郊豕)라고 해서 특별히 관리를 두어 길렀고, 고려 때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이 서해용왕에게서 돼지를 선물받았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멧돼지를 납향(臘享)의 제물로 썼다. 오늘날무당의 큰 굿이나 집안의 고사, 마을 공동체 신앙에서도 돼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다. 돼지는 이처럼 제전에서 신성한 제물이었기 때문에 돼지 자체가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유리왕은 도망가는 돼지(郊豕)를 뒤쫓다가 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에 이르러 산수가 깊고 험한 것을 보고 나라의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산상왕은 아들이 없었는데, 달아나는 교시를 쫓아 가다가 한 처녀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고, 그 처녀와 관계하여 아들을 나았다. 부여에서도 돼지가 벼슬이름으로 있다. 이처럼 고구려와 고려는 돼지의 도움으로 도읍지를 발견하고, 왕의 후손을 얻었다. 이는 돼지 자체에 신통력이 있고,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인 동시에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使者)의 모습의 신통력을 지닌다. 이러한 관념은 다시 돼지를 상서로운 길상의 동물로 표출한다. 우리의 고대 출토유물, 문헌이나 고전문학에서 돼지는 상서로운 징조로 많이 나타난다. 민속에서는 돼지는 재산이나 복의 근원이며, 집안의 수호신이라는 관념이 강화된다. 돼지꿈이 길몽으로 해석하고, 장사군들이 정월 상해일에 문을 열며, 돼지그림을 부적처럼 거는 풍속 등은 모두 이러한 관념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런 긍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돼지는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설화에는 돼지가 탐욕스러운 지하국의 괴물로 등장한다. 속담에서는 돼지의 탐욕스러운 성정 즉, 욕심, 지저분함, 돼지의 목청, 어리석음, 게으른 성격을 비유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부정적 관념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성서에서는 종교적 금기, 악마의 의도와 유혹의 상징으로까지 진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