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작가로 유명한 우안 최영식 화백.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소유한 춘천의 예술인이다.
커다란 거구와 꿈벅꿈벅이는 커다란 눈망울하며 개량한복에 걸망(가방)하나 지고
다니는 그 모습만으로도 또 하나의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벌써 몇해던가.
소양호 안쪽 깊숙한 산막골에서 은거하는 도인마냥 세상의 소리를 뒤로 하고 작품에
몰두하던 그가 오랜 인연을 어찌하지 못하고
지난 2010. 11. 30~12. 3간 춘천 아트플라자에서 전시한 본인의 사진전 "부유의
풍경"전을 보고자 나들이를 했다.
그것도 솔향이 물씬 묻어나는 그림 한점은 물론 전시실에서 휘호 한점까지 써주는
아주 특별하고 각별한 우정을 선사하였다.
비포장길에 익숙한 그가 터덜터덜 한마리 우직한 황소처럼 거구를 이끌고 도심을
나들이 한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실 올해초 그에게 이번에 전시한 평론을 의뢰하고자 사진 화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바쁜일정과 창작활동에 어려움으로 토로해 어쩔수없이 다른평론가에게
의뢰하였다.
각설하고
그가 바람도 자고가는 산막골 화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작업하는 틈틈히 맛깔나는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그의 홈피 "산막골 일기"가 있다.
이번 469번째 글은 이번 전시장을 다녀간 감회를 올리고 내게 엽신을 띄웠다.
세상사에 쫒겨 아직도 본인이 전시한 사진전시 작품조차 블러그에 올리지도 못했지만
그의 글이 하도 고맙고 고마워 먼저 이곳에 올려놓았다.
산막골일기[469] 浮游의 風景展을 보고
사진작가 심창섭님이 '부유의 풍경'이란 표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11월30일~12월3일까지 옥천동 아트프라자 갤러리.
마침 산막골 들어온 사람이 있어 30일 오후 6시 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전시장 문은 닫은 상태였다. 오로지 심형의 사진전을 보기위해 급작스런 외출을 한거다.
12월 첫 날 전시장에서 작가와 작품과 작품집을 만났다.
심형과는 꽤 인연이 오래다. 친해진 건 80년대 초 지금의 새명동에서 '포토피아'라는 사진전문카페를 하면서다. 시청앞에 화실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엇보다 가까웠고 전시장을 겸한 아담한 카페여서 마음에 들었다.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즐겨 모여들던 둥지기도 했다. 작년부터 준비를 해왔던 사진개인전이다. 도 예총사무처장으로 있던 심형이 무슨 일로 예총에 들렸을 때 사진작품을 보여줬었다. 전부터 꾸준히 봐왔지만 그날 보여줬던 것들은 그동안의 작품들과 차원이 달랐다. 주로 세월교를 소재로한 영상물인데 폭마다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보는듯 했다.
한 폭 한 폭이 다 탐나게 빼어난 영상시들이었다.
포토피아에서 심형과 문인화의 여백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일이 떠오른다. 심형은 이미 그때부터 채우는 것 이상으로 비워내는 것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서양미의 추종이 아니라 한국미와 정신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심형과 토론하며 내심 많이 놀라웠다.
카메라의 발명부터 전개해 온 역사는 서구에 종속될 필연요소를 가졌고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묵묵히 오랜 세월을 모색해 왔던 도정이 드디어 이번에 결과를 드러냈으니 그 내공과 연륜이 어디로 갈것이냐. 글은 수필을 쓰고 있으나 영상으론 호반 춘천의 속살을
섬세하며 텅 빈 충만감의 간결한 서정시의 절제미로 표출해냈다.
작품집 끝 작가노트에 '사진으로 춘천의 시를 쓰다'라고 스스로 술회를 한 것처럼 대상에서 시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져왔다. <浮游>는 공중이나 물 위에 떠다닌다는 의미다.
심형이 의도한 것은 호수와 그 위를 배회하는 안개, 그리고 바람, 그런 대상들과 교감하는 작가의 심상이라 여겨진다,
3년 전,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선 [浮游-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이란 표제를 걸고 한,중수교 15주년 기념 한,중 국립미술관 특별교류전이 있었다. 여기서 내건 '부유'는 '불안정하지만 활발하고 자유분방한 중국 차세대 작가들의 특징을 표현한'거라 했다.
'개인과 사회, 자아와 타자, 자국과 세계의 혼란한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내면세계와 부유하는 현실세계가 유사해지고 있는 정보화, 도시화시대의 새로운 문화적 본질을 설명하고자 한다'며 '작가들의 민감한 개성에서 기인한 변덕스럽고 부유하는 예술양상을 글로벌 시대 새로운 예술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단 중국미술만의 새 흐름은 아닐 터이다.
심형도 위와 같은 의미까지 포함해 작품의 표제를 달았는지는 모르나 급변하는 세상에서 안주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불안감은 뿌리없이 부유하는 삶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부유 뒤에 붙여진 <풍경>은 그러므로 의미심장하다. '풍경'을 관찰하므로써 無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화합하는 상태에서
영혼의 위안과 평정을 얻게되기 때문이다. 스며들지 않으면 떠다니는거다. 결국은 인간도 생명의 뿌리를 자연에 두어서다.
일본학자 金原省吾의 저서 [동양의 마음과 그림]을 보면 서설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形成이란 자연의 자태 속에 몰두하는 일, 자연에 내 몸을 의지하여 맡기는 일이다. 이를 제쳐놓고서는 형성은 없다. 개성을 발휘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개성은 의도하지 않는 가운데, 그 속에서, 붓이 슬쩍 지나간 자욱에도, 희미한 색의 흐름에도, 일일이 절로 나타나서, 화면에 피어 오르는 향기가 되고 있다. 개성은 목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목적으로 삼기에는 너무도 깊다.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자연에 대한 몰두가 깊으면 깊을수록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개성은 요구의 목적이 아니고 절로 우러나는 것이다.'
심형이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부유의 풍경'연작들이 형성된 과정을 저 序說 속에서 잘 해석되어진다고 여겨져 인용을 해봤다.
특히 사진으로 표현한 여백이 넉넉한 수묵담채화여서 더욱 그러하다. 詩中有畵 畵中有詩는 시인이자 화가였던 王維의 그림을 두고 후세에 칭송한 것이지만 부유의 풍경작들에도 해당된다고 보여진다.
여백은 그냥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안개가 되고 물이 되며 하늘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말하지 않은 더 많은 것들을 감상자에게 상상하도록 만들어 주는 공간이 된다.
농, 중, 담의 먹색이 융합를 이루고 수묵의 번지기 효과까지 잘 나타난 풍경들은 놀랍다. 물과 물안개가 몸을 섞으며 그려내는 부유의 작품들을 보며 老子의 上善若水가 떠오름은 당연한 일이겠다.
지극히 착한 것은,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는 노자사상의 핵심이라 말한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그렇기에 상선약수라 하는 것이다.
부유의 풍경 연작들이 보여주는 사물들은 주로 물이고 안개이나 강이 나오고 금빛노을에 물든 호수도 있으며 갈대며 물숙의 물풀들, 나무가지의 얼킴, 구름을 헤쳐가는 달도 등장한다. 그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觀照의 氣韻이 감돌며 그 속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靜觀의 세계다. 귀 기울여 가만히 들어야 하는 물소리다.
물오리도 날아오르기 보다는 물위에서 떠 논다. 고요하다.
안개든 물안개든 역동성이 아니라 차분하고 곱게 피어오른다.
흡사 얇은 실크천을 드리운 것처럼 곱고 명상적이다.
가장 동양적인 미의 세계이며 우리가 잃고 있는 정서와 격조가 있으며 古雅의 정신이 감돌고 있다. 더불어 절제와 비움은 귀하다.
심형이 동경하는 엔젤 아담스[1902~1984]는 풍경사진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미국 서부의 정신을 필름에 담은 최초의 인물이라 한다.
미국 풍경의 광대함과 섬세함을 영상에 담았다. 靜과 動이 함께 있는 작품세계는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의지를 영상미로 구현해낸 것이다.
엔젤 아담스를 흠모하지만 그를 따르기 보다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호반도시의 아름다움을 찿아내고 영상으로 건져올린 심형의 노고는 값지다. 서양의 정신을 구현한 엔젤 아담스가 있다면 한국의 정신을 탐구하고 이뤄가는 심창섭은 그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까지 다양한 모색을 거쳐 도달한 부유의 풍경들은 더 심화되고 확대되어 가리라고 전망하게 만든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추구하는 세계를 구현하려는 정신은 엔젤 아담스와다를 바 없다. 심형에게 기대가 큰 이유기도 하다.
2010. 12. 8. 산막골에서 두서없고 거친 글을 쓰다. 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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