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포토에세이

심창섭의 포토에세이 152

심봉사(심창섭) 2012. 10. 24. 10:20

 

 

                       

                                 혹시 '겸허'라는 꽃말을 가진 댑싸리를 기억하시나요.

 

   며칠전 화천 북한강변의 해바라기 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이미 절기가 지나 해바라기 꽃은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코스모스와 국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몸을 흔들며 나긋나긋하게 교태를 부리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와 노란국화가 만발한 꽃밭은 향긋한 국화 향으로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윙윙거리며 날고 있는 벌들과 함께 국향과 가을의 풍경에 취해 잠시 시간을 잊기도 했습니다. 꽃밭의 쉼터에서 나눠주는 국화차를 시음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공원아래쪽 진입로 변에 열병을 하듯 좌우로 줄지어 서 있는 색다른 꽃나무가 보이기에 호기심에 달려갔습니다.  그 동안 보아온 연록색의 댑싸리가 아닌 붉은색 댑싸리였습니다. 댑싸리가 꽃나무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댑싸리가 꽃나무를 대신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자태로 시선을 끌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었습니다.

댑싸리는 시골집 뜨락이나 돌담길 변에 부드럽고 연한 연두색으로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자생하던 1년생 식물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가을이면 훌쩍 키 자란 댑싸리 밑동을 잘라 초가지붕 위에 널거나 처마 밑에 걸려 정겨운 풍경을 연출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마른 잎새를 툭툭 털어내고 노끈으로 중간부분을 두어군데 묶으면 간단하게 빗자루가 되던 그런 풀이었습니다. 거친 싸리비와는 달리 그 품세가 부드럽고 마당이 곱게 쓸려 요긴하게 쓰던 댑싸리였습니다. 또 한방에서 ‘지부자’라고 불리는 열매는 방광염 등 비뇨기계통에 효능이 있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하지만 그 약을 먹어본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소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정겨운 댑싸리를 마주합니다. 도심의 아파트에 살다보니 이제는 빗자루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쓸어야할 마당도, 골목길이 없는데도 그 빗자루의 촉감이 느껴집니다. 한참을 서성이다 바로 요 모습으로 서있는 댑싸리 부부를 만났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다소곳한 기댐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에 기대고 있었다면 편안했을 텐데 오히려 큰놈이 작은놈에 응석을 부리듯 기대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 큰 덩치를 받치고도 괜찮다는 듯 어깨를 빌려 주고 있는 모습이 우리시대의 부부를 보는 듯 했습니다. 혹시 그동안 저도 직장에서 받은 억압감을 아내에게 전가했던 게 아니었는지, 은연중에 이런 모습으로 아내에게 기대고 살았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한자로 사람인(人)자는 사람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라도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 겸허란 꽃말을 가진 댑싸리 앞에서 잠시 인생을 뒤돌아보며 아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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