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여행
심창섭
* 예정에 없던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겨우 이름 하나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사람의 흔적을 찾는 미로여행이자 탐정여행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의뢰자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몽타주조차 만들 수 없었다. 나이도, 특징도 모른 채 그저 풍문처럼 떠도는 미로에서 그를 찾아야 했다. 막막하다. 알려준 이름조차도 정확한지 모를 그를 찾고자 초행길의 안개 속에서 길을 더듬었다. 스무고개를 넘고 넘었지만 꼭꼭 숨어 머리카락조차 보이지를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의 세상에 기거하시는 두 분의 큰 스승님께 알현을 청하고 고견을 듣는다. 세상사 모든 걸 꿰뚫고 계시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스승님마저도 고개를 갸웃거리시며 횡설수설하시더니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 보란다. 어쩔 수 없이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길을 떠나야 했다. 묻고 물으며 그렇게 다가가지만 도대체 실체를 잡을 길이 없다. 차라리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포기하고 말겠지만 “저기로 가보세유~” “저기에 가면 그 사람의 흔적이 있을거에유~”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듣기는 했는데 어릴 때라서 기억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셨쥐~” 가면 갈수록 물으면 물을수록 미궁에 빠져들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답답했다.
목도 마르고 출출하여 산 초입새에 있는 주막을 찾았다.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고개를 드니 산 그림자 하나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한잔 걸친 김에 웃으면서 통성명을 나눈다. 그가 커다란 양팔을 벌리면서 ‘좌백호 우청룡을 아슈,’ 불쑥 질문을 던진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신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1,261m의 산이란다. 사실 자신의 본명은 덕고였는데 언제가부터 태기로 불리게 되었단다. 오대산에서 갈라진 산맥 하나가 흥정산을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다시 솟아 오른 봉우리란다.
자신의 가슴속에 품은 사연을 한번 들어보겠냐며 한잔을 권한다. 귀동냥이라도 해야할 처지라 다시 주막으로 들어간다. 평상에 털썩 걸터앉자마자 그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내 행색을 비록 이래보여도 왕년에는 한가락 했지요. 자, 여기 좀 보쉬,‘ 가슴을 풀어 헤치자 여기저기 상처흔적이 보이고 허물어져가는 성벽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사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라 잊고 있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이 어찌 알았는지 나도 제대로 기억 못하던 사실을 다 알고 있더라고요, ’요즘 무슨 일인지 이 문신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요즈음 나도 내 과거에 대한 궁금증으로 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오‘ ’내 가 안내할테니 허물치 말고 동행하면서 서로 회포나 풀어봅시다.’
키 작은 대나무인 조릿대로 뒤덮인 그의 가슴 길을 헤치며 구불구불한 능선을 오른다. 청량한 바람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방울이 금새 사라져 버린다. 능선을 따라 줄지어 있는 커다란 바람개비들이 휘익! 휘익! 휘파람을 불며 느릿느릿 맴을 돌고 있다. 어지럽다. 불면증에 시달릴만했다. 바람의 언덕을 넘어 달려온 한줄기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자 어디선가 함성이 들려오는듯하다. ‘왕이시어’ ‘왕이시여’ 탁 트인 시야 건너편 안개 속에서 도열하고 있던 뭍 산들이 부복俯伏하며 조아린다. 운무에 잠긴 수많은 산봉우리의 계곡 속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반백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모진풍파를 이겨온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지그시 눈을 감고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듯 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때는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에 3개의 부족연맹 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지요. 보통 삼한이라 불렸지만 사실은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 세 나라를 통칭하는 명칭이었어요. 조금 쉽게 말하자면 삼국의 전신이지요. 나중에는 마한은 백제 국에서 백제로, 변한은 구야 국에서 가야로, 진한은 사로국에서 신라가 되면서 한반도에 삼국시대가 형성되지요. 작은 부족국가 체제이다 보니 지도자의 힘이나 세력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좌우 되었지요. 그만그만한 부족들로 서로 견제와 협력으로 유지되다가 알에서 태여 났다는 박혁거세가 사로국을 개국하면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오. 주변의 부족국가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 던 혁거세는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진한을 침략했지요. 대규모 병사와 신흥세력에 대패한 진한군은 피난길에 오르지요. 소수의 병사를 이끌고 쫓기던 진한의 태기왕은 이곳 횡성까지 피신을 했지요. 그리고는 지리적으로 적군을 방어하기 좋은 덕고산에 산성을 쌓고 재기의 꿈을 실현하고자 군사력을 키우며 있었지요. 하지만 사로국의 박혁거세는 태기왕이 살아 있음을 우려하고 이곳 덕고산까지 쳐들어와 태기왕과 진한의 군사들을 모조리 살육한 최후 의 현장이지요. 결국 진한의 역사는 그렇게 이곳 덕고산에서 마침표를 찍고 말았지요. 정말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눈에 선해요. 마지막 결전으로 피범벅이 되었던 산성이 이렇게 허물어지며 기억조차도 가물거리니 참으로 세월의 힘이 무섭기만 해요.
이렇게 흔적과 체취가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아직 태기왕의 이름이 불러지고 있다는 게 불가사의하기만 해요. 또 그들의 자취를 떠올리게 하는 어답산, 갑천면, 병지방 등 땅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전해지고 있잖아요.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만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더니 .....“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던 이야기가 잠시 숨을 돌리며 회한에 빠져드는 동안 산 그림자가 한참 길어졌다.
서쪽하늘로 몸을 낮추며 붉게 물드는 태양.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바람개비는 여전히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더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지만 분명 이 고장에 태기산이 있고 태기산성이 존재하고 있다. 태기왕의 역사적 사실을 논하기에는 미비하고 아리송하지만 역사적 기록에서 조차 실종된 그의 흔적이 지명으로 이어져 아직까지 긴 생명력을 갖고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강자의 출현으로 쫓기다 끝내 이곳에서 비운의 결말을 맞는 태기왕의 안타까운 설화가 슬프지 않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게 더욱 아이러니 할뿐이었다.
그가 숨어들었던 덕고산은 그의 이름을 빌려 태기산이 되고 어느 시기에 누가 축성했는지도 모르는 산성 또한 태기산성으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신라의 왕 박혁거세가 올랐다는 산은 어답산이 되고, 군사들이 피 묻은 갑옷은 씻었다는 개울은 갑천이 되었다. 모두 설화에 얽힌 지명이다. 단서는 많은데 범인의 머리카락조차 찾지 못하고 돌아서는 여행길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무슨 연유일까. 그 흔해 빠진 칡넝쿨조차 자라지 않는 태기산 정상의 굽은 길을 에돌며 저무는 해를 무심히 바라본다.
뜬 구름처럼 왔다가 이 언덕에서 한줌의 바람으로 사라진 태기왕의 이야기 또한 잠시후면 어둠속에 갇혀버리리라.
분명 그를 만났지만 손끝하나 잡을 수 없던 술래잡기 여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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