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소금 2019 봄호 게재
온溫라인 세상의 동면
심창섭
몸은 지난여름 펄펄 끓는 열대야의 두려움을 기억했다.
옷 걱정, 연료비 걱정 없어 좋던 낭만의 여름이 아니었다. 그 악몽이 두려워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열었다. 요즘 에어컨 없는 집이 몇이냐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우리 살림에 선풍기면 되지 에어컨은 허영이라 생각했다.
한겨울에 남국의 찬바람을 가득 품고 있다는 기계에 과감히 투자했다. 하지만 에어컨 구입이 절대 역발상(逆發想)적인 충동은 아니었다. 온난화로 지구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는 예보보다 “내년 여름도 각오하라.”는 기상전문가들의 귀띔이 무서웠다. 비수기(非需期)의 저렴한 가격과 구입과 동시에 설치 가능하다는 핑계도 작용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그럴 듯 하지만 한겨울의 에어컨은 어째 천덕꾸러기 모습이다. 큰 맘 먹고 들여놓았지만 야속하게도 이 녀석은 오자마자 곰처럼 거실 한구석에서 깊은 겨울잠에 들어갔다. 최소 6개월 동안 잠을 잘 기계 앞에서 지난해 여름밤의 악몽은 추억이라 자위(自慰)해 본다.
어찌 그리도 무더울 수 있었을까. 수은주는 연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고기록을 갈아 치웠다. 100년 만에 찾아온 복병(伏兵)이라고 했다. 냉수 샤워도 잠깐뿐, 선풍기는 숨을 헐떡이며 지친 바람만을 토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원치 않은 더위를 먹었고 땀띠 꽃이 만발하면서 버티고 버티던 인내가 무너져 버렸다. 한낮의 태양이 무서웠고 불면(不眠)의 밤이 두려웠다. 아침이면 고시 공부하듯 도서관으로 출근했고 저녁이면 카페를 찾는 보헤미안(Bohemia)생활로 그 여름을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선풍기조차 귀하던 시절, 그 여름도 무더웠지만 부채 하나로 능히 견딜 수 있었다. 한낮에는 펌프로 길어 올린 찬물로 등목을 하고 수박을 한입 베며 더위를 이겨냈다. 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웠다. 식구들과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헤기도 했다. 여름나기의 슬기였고 문화였다. 나름 행복했었다. 나무 그늘 평상에서 부채 하나로 여름을 물리치던 모습은 그대로 풍경화였다.
오래전 우리 조상님들은 체면 때문에 등목도 못하고 그저 대청마루에서 부채질로 무더위를 쫓아냈다. 남정네들은 계곡을 찾아 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과 숲속에서 바지를 걷어 내리고 숲 바람을 맞는 거풍(擧風)으로 여름을 견디어냈다.
이런 운치에 등을 돌려야 하는 현실이 아쉽기는 해도 이미 디지털 시대의 단맛에 길들여졌다. 구시대적인 부채를 과감히(?) 접는다.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이미 동면의 깊은 잠에 빠진 에어컨 뒤편에 지인이 손수 제작하여 보내준 쥘부채가 무상(無想)하다는 표정으로 점잖게 걸려 있다.
그래도 이번 정월 대보름에는 약효도 없는 더위팔기를 하지 않아도 되리라. 온기를 버린 냉정한 삶이 될 올여름의 표정이 내심 궁금하다. 큰 마음 먹고 마련한 에어컨이 동면에서 깨어나자마자 전기료 폭탄으로 다시 여름잠[夏眠]을 재워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미 만년필을 잃고 낯설어하던 컴퓨터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판을 두드리는 이 적응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온라인(on-line)을 온(溫)-라인이라고 쓰고 인터넷을 인(人)터넷으로 써보며 현대인의 대열에 슬쩍 한발을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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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섭(樂涯)_2006년 《한국수필》 등단. photo essay<때론 그리움이 그립다>가 있음. 춘천문학상 본상, 춘천예술상 대상 수상. 춘천문인협회장 역임. 현재 춘천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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