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소리
심창섭
* 외지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우르르 닭갈비집으로 향한다.
그들이 원했고 또 나도 좋아하는 향토 음식이기 때문이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입맛에 길들여진 음식
이고 맛에 대한 실패율이 낮기 때문이다. 춘천의 대표 먹거리로 유명한 닭갈비는 서민과 청춘의 술안주로 시작되었다.
저렴한 가격과 푸짐하고 질리지 않는 맛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헛헛해 질 때마다 친구들과 원탁에 둘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과 세상사를 논하던 젊은 날의 한 시절이 기록된 음식이기에 그 애정이 각별할지도 모른다.
정유년 새해아침 라디오에서 장닭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친근했던 소리라 반가웠다. 도시에서도 간간히 여명黎明을 깨우던
닭의 울음소리는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시계조차 귀하던 시절 닭의 울음과 교회 종소리는 시계를 대신하던 소중한 소리였다.
문득, 홰를 치며 이른 어둠을 흔들어 깨우던 장닭의 긴 울음소리가 그립다.
아파트문화가 없던 시절 도시의 주택에서도 마당 한구석에 몇 마리 닭을 키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싱싱한 계란을 취하고, 한여름 허해진 가족들의 몸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홰를 치며 목청을 돋우면 동네 닭들이 질세라 따라 울어댔다.
견공들까지 덩달아 짖어 메아리처럼 울리던 그 아름답고 여운 있던 하모니가 정겨웠는데........
이육사의 시 <광야> 첫 소절을 떠올린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렀으랴.” 그렇게 첫 하늘이 열릴 때에도 닭이 울었다. 어둠을 걷어내며
밝음을 시작하는 순간 닭이 울어 어둠과 빛을 분리한다. 횃대에서 고개를 쳐들고 혼신을 다해 울어대던 건장한 장닭, 김유정의 <동백꽃>
속에서 사랑의 화신化身으로 대변되던 점순네 수탉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지난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를 맞아 닭갈비의 고장인 춘천이 홰를 치며 날아오르기를 기원祈願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벤트도 없이
지나쳐 아쉬움이 컸다. 김유정문학촌에서라도 닭을 위한 특별행사가 있기를 기대했었다. 아니면 닭갈비업체에서 라도 전국최초로
닭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길 바랐지만 너무 조용히 한해를 보내고 말았다.
닭은 자손번창과 길상吉祥의 상징적 동물로 전통혼례 초례상과 폐백상에도 오른다.또 머리의 볏을 관冠과 동일시해 벼슬에 뜻을
둔 선비들이 닭 모양의 연적硯滴을 애용했으며 닭 그림을 걸어 놓기도 하였다. 닭이 울고 나서야 동이 튼다. 새벽이 되어 닭이 우는
것이겠지만, 닭이 울어야 날이 밝는다는 문학적 감성이 멋지지 않은가. 선조들은 닭의 붉은 볏과 발톱을 문무文武에 비교했다.
땅에서 솟구치며 세찬 날개 짓과 함께 공격하는 모습을 용기勇氣로 보았으며,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祥瑞로운 영물靈物로 표현했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중세에 지은 성당의 탑에 있는 닭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또 지붕위에서 닭 모양의 풍향계가 도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요즈음 춘천에도 닭 조형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상업적 조형물로 예술성이 결여되어 아쉽기만 하다. 장닭이 고개를 쳐들고 아침을 여는
당당한 모습을 시의 문장紋章으로 만들면 좋을 듯하다. 또 문화예술 도시의 위상에 맞는 멋진 예술작품으로 도시의 곳곳에 세웠으면 좋겠다.
매 시간마다 장닭이 홰를 치며 우는 효과음으로 도시가 새롭게 깨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2019 /제39호] 김유정문학촌 가을호 게재분]
닭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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