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움길을 걷다
* 몸속에 피가 흐르듯, 쉼 없이 흐르는 강물줄기를 따라 길을 나섰다.
숨어있던 방랑벽이 드러난 것인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응어리를 풀고자 했다. 달팽이처럼 등에 가방하나 둘러메고 진양조, 아다지오 adagio의 느린 걸음이다.
개뿔!
시간이 남아돌고 배때기에 기름 낀 놈들의 유희라고 비아냥거리던 내가 얼떨결에 그 틈에 합류 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사는 트랜드라고 부추기는 방송의 영향이 컸다. 야곱이 걸었다는 산티아고 순례 길까지 회자되면서 걷기열풍이 불어왔다. 삼다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 길, 서울 성곽길 등 우후죽순으로 걷기코스가 생겨났다. 걷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내 고장 춘천에도 봄내길, 김유정길, 문인의 길 등 걷기 길이 만들어 졌다.
처음엔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학교운동장을 쳇바퀴처럼 돌았다. 만보기를 작동하고 숙제처럼 걷기문제를 풀어나가다 보니 동네 한 바퀴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강도를 높여 지금은 문간방으로 물러난 굽고 굽은 원창고개 옛길과 삼악산 석파령 길도 섭렵했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용어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과 발길이 원하는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일상의 권태로움을 벗어내는 걷기유혹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걷기는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짠돌이의 운동방법 중 최상이었다. 등산처럼 정상을 밟아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날의 컨디션에 맞는 속도와 보폭으로 걸으면 되었다.
버릴 것도 없는 욕심을 비우며 사색의 시간을 즐겼다. 덕분에 몸은 가벼워지고 종아리는 단단해졌다. 하지만 홀로 걷는 먼 길은 적적하고 때론 지루했다. 어울림을 위해 몇몇의 의기가 투합되었다. 경춘선 철길과 북한강 물길사이로 힘줄처럼 그어진 한양 천리 강변길을 택했다. 혼자서는 꿈도 꾸어 볼 수 없는 무모한 도전같았지만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괴나리봇짐 허리춤에서 흔들대던 대신 짚신 짊어진 등산가방속 보온병에 담긴 커피의 출렁거림 또한 매력이다. 아지랑이 물안개를 헤치고 날아 오르는 물새들의 비행에 탄성을 지른다. 역광을 받아 머리를 금빛으로 치장한 갈대물결이 장관이다. 바람이 일 때마다 끝없이 도열한 갈대꽃들이 우르르 타조 떼처럼 고개를 흔들며 환상적인 무대로 반겨준다. 흔들림의 미학이다. 길동무들과 나누는 자잘한 일상의 수다가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길 위의 낱말들은 또 다른 활력과 매력이 있었다. 별것 아닌 대화로 이렇게 마음놓고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마음을 비운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웃음이다. 바람결에 부셔지는 물결의 반짝임이 가슴으로 파고 들면 시시껄렁한 이야기 조차 보약이 된다. 또 가끔씩 수다시간을 자투리 내어 무언의 걷기로 마음을 비우며 찌든 때도 벗겨본다. 이미 걸음수가 만보가 넘었음에도 마음과 발걸음은 가볍기만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빠르게, 점점 빠르게로 숨차다. 지금의 풍요를 만들어준 그 빠름의 공로가 기립박수를 요구했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 되어야 하는데 박수만 치다보니 굳은살 박인 손바닥에 통증이 느껴졌다. 쉴 시간이 필요했다. 느림을 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지러진 낮달하나가 한가롭게 걸려있는 겨울하늘, 바람이 상큼하다. 문명의 속도로 우리 곁을 총알같이 지나치는 전철을 뒤따른다. 느림의 단순함을 통해 빠르게만 달려온 삶이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우친다. 그 동안의 성급함을 참회하며 천천히 걷는다.
앞을 다투지 않고 유장하게 흐르는 저 강물을 보라. 언젠가는 바다에 다다르듯 조금 늦기는 하겠지만 언젠가 우리도 종착역에 도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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