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양마니 단상

심봉사(심창섭) 2021. 12. 26. 17:01

* ‘먹방'이라는 신조어로 요즈음 TV 프로그램이 출렁거리고 있다.

너무 많이 먹는 폭식만 아니라면 정말 괜찮은 프로이다.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다보면 마치 함께 먹고 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먹방의 인기는 풍족해진 먹거리 시대의 대리만족이다.

먹을 입에 비해 음식이 부족했던 시절의 아침인사는 진지 잡수셨어요.’였다.

식사를 거르지 않았냐는 염려와 관심이 배여 있는 말이었다.

요즈음에도 전혀 다른 의미지만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먹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뭇 여성들이 탄수화물을 거부하며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새롭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는 더 높아졌다.

그 바램을 먹방이라는 예능을 통해 대리만족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먹방을 뒤집어 보면 배고픈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던 그 시절, 쌀밥

한 그릇에 김치 한 조각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던 그 때보다 오히려 풍족감을 느끼기가 더 어려운 듯하다.

 

곱빼기주세요.

배가 불러야 성이 차던 식탐의 시절이 있었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내게 양이 적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허나 언제부터인지 게 눈 감추듯 비워대던 곱빼기가 조금 벅차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나이 탓인지, 배에 기름이 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릇을 비우고 나면 더부룩한 불쾌감이 따랐.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나 곱빼기를 시키면 이상해 보일 정도이다.

양이 아닌 질이나 모양이 우선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매력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곱빼기란 말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두 배를 뜻하는 곱빼기, 하지만 배가 커도 두 배의 양을 먹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곱빼기는 두 배가 아닌 보통의 1.5배 정도인 소위 고봉밥 같은 것이다.

배가 큰 사람들에게 보통은 양이 조금 모자라다.

그럴 때 곱빼기를 외친다. 양은 푸짐하지만 값은 보통 1,000원 정도만 더 내면 되는 인정미가 담긴 가격이다.

먹는 것이 부실해 늘 헛헛해 하던 그 시절 서민들의 애창곡이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지인들과 외곽의 막국수 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곱빼기를 시켜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그때 동네주민들이 들어서며 "양마니" 라는 주문을 한다. "양마니"? 메뉴에 없는 음식이었다.

잠시 후 그들의 식탁에 나온 건 우리 것과 똑같은 막국수였다.

넌지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양마니"가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비밀스러운 질문을 한다는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쭈뼛거리며 양마니가 아니라 양 많이에요.

양을 넉넉히 달라는 뜻이었다.

사실 예전 보다 양이 줄기는 했지만 보통도 시내에서 곱빼기정도의 푸짐한 량으로 소문난 식당이었다.

시내 사람들은 양이 너무 많다며 음식을 남기는 일이 빈번했다.

처음에는 주인장도 대수롭지 않게 들었으나 재료도 아끼고 남는 잔반처리도 쉬워

자연스럽게 양을 줄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배에 기름 낀 사람들 때문에 양이 줄었다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이 말에 주인이 주문하실 때 "양을 많이 달라고 하시면 더 드릴게요. 라고 하던 것이 줄임말이 되었다고 했다.

넌지시 "양 많이"라고 하면 예전처럼 보통과 곱빼기 사이의 양을 주었다.

주민들이 이용하던 주문방법이 조금씩 펴져나가 양이 큰 단골들이 애용하는 비법(?)이 되었다.

예외적이나 아주 합리적인 상업기술이자 주민을 배려한 주문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집에는 또 하나 재미있고 생소한 주문메뉴가 있다.

이 식당 부근의 관공서의 원장이 양이 많다며 늘 음식을 남기자 직원들이 "원장님 것은 양을 조금만 주세요."라고

하던 것이 줄임말로 "원장이라는 주문법도 만들어 졌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는데 습관적으로 "양 많이"로 주문을 한다.

귓속말하듯 조용히 전하는 이 비밀스러운 주문어의 정겨움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예전에는 아이들도 헉헉거리며 짜장면은 곱빼기를 먹었다 아니 먹어치웠다.

특별한 날이어야 먹는 환상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시킨 후 탕! ! 국수치는 소리를 들으며 애꿎은 단무지 조각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간.

지금은 국수를 기계로 뽑지만 그때만 해도 수타면뿐이었다.

목젖이 내려앉는듯한 기다림 끝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을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그런 잠재된 기억 탓인지 지금도 짬뽕과 짜장면을 놓고 잠시 멈칫거리지만 결국은 짜장면의 일방적인 승리다.

 

참살이well-being 음식이나 맛과 분위기를 찾는 세태에 밀려 동네 중국음식점이 줄어들었다.

라면에게 국민선호도 1위까지 빼앗긴 채 흑백사진처럼 아스라이 변해가며

짜장면 그릇에 새겨졌던 넉넉함과 맛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진다.

 

  먹거리가 풍족해지면서 살기위해 음식을 취하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

건강을 위해 예전의 거친(?)음식을 찾아 떠도는 식도락가들이 판을 치는 세태이다.

 

하지만 양 많이의 인정과 풍족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60년대 이전의 기성인이라면 짜장면에 얽힌 추억 한 저름씩을 가지고 있으리라.

입맛은 변해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짜장면처럼

맛과 가격으로 사랑을 받는 음식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곱빼기 호칭 속에 담겼던 넉넉함과 따스한 정감아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2020 춘천문학]

'심창섭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문 - 그 시절의 맛 "짜장면"  (0) 2022.01.11
『춘천의 기념비』 prologue  (0) 2021.12.26
십이월의 지청구*  (0) 2021.12.26
모모한 일상  (0) 2021.12.26
독수리 검법  (0) 202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