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 맛이다.
추억의 맛은 언제나 담백하고 달큼하다. 맛을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뒷맛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생각이 간절해지면 때론 그 추억의 맛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침이 마르도록 감칠맛을 이야기하던 지기를 따라 가는 굽고 좁은 길이 조금 멀기는 했지만 즐겁기만 하다. 허름하지만 그런대로 운치 있는 낯선 식당에서 맛만큼은 자부심을 느낀다는 주인장 말을 귓가로 흘리며 음식을 기다린다.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지만 기대만큼의 맛은 아니다. 만족은 아니었지만 조금 색다른 맛에 그릇을 뚝딱 비우고 돌아왔다. 기름진 음식이 넘쳐나고 배에 기름이 낀 시절이니 설사 예전과 똑같이 조리했다 할지라도 담백한 옛 맛의 느낄 수 없었으리라 자위하곤 했다.
어린 시절 우리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음식이 있다. 아니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싫지 않은 짜장면이다. 지금이냐 가장 대중적인 국민음식이 되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생일이나 졸업식과 같은 날에나 먹을 수 있던 귀한 외식용 음식이었다. 짜장면을 먹는 날은 집안에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불고기와 짜장면을 외쳤다. 그때 어른들은 짜장면집을 중국음식점이라 하지 않고 짜장면집, 중화요리집 또는 청요리집이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뜻도 모른 채 그저 장궤집이라고 불렀다. 또 어른들은 대체로 우동, 짬뽕이나 울면을 주문했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짜장면을 큰소리로 합창했다. 또 어쩌다 탕수육도 맛을 보았지만 그건 겨우 한 두 저름 만에 그릇바닥이 보이곤 했다. 언제나 갈증만 유발시키는 맛보기 탕수육에 비해 짜장면은 혼자서 한 그릇을 독차지 할 수 있어 좋았다. 그 시간이 행복하기만 했다. 입가에 짜장을 범벅으로 묻힌 채 씹을 틈도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던 그 구수한 맛과 노란 단무지의 아삭한 결합은 참으로 환상적이었다. 친숙하면서도 특별한 음식으로 부담 없는 가격이 매력이며 어느 누구의 입맛에도 거슬림이 없다. 까다로운 격식 따위 필요 없고 노란 단무지 하나면 그만인 짜장면. 특별한 날에도 생각나고, 평범하고 지루한 날에도 한 그릇의 짜장면이 떠오른다. 아이들 졸업식 날이나 이사를 하는 날, 사람들의 발걸음은 당연하다는 듯 중국집으로 향한다. 밥하기 싫은 날에도, 밥만 먹기 따분한 날에도 한 통의 전화로 배달되는 짜장면은 허기진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군대 갔다 휴가 나온 장병들의 영원한 로망이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의 강력한 적이기도 하다.
지금도 입맛이 없거나 혼자 먹을 일이 생길 때면 가장 부담 없이 찾는 음식중 하나이다.
예전과 달리 손 짜장, 옛날 짜장, 유니짜장, 간짜장, 매운짜장 등을 찾아다니며 섭렵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그 맛을 찾을 수 없어 실망을 하면서도 여전히 짜장면을 시킨다.
짜장면은 1883년 인천항 개항과 더불어 중국 산동지역에서 건너온 화교 인부들이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삶은 국수에 춘장과 야채를 얹어 비벼먹던 것이 시원이라 한다. 짜장면은 조리법이 간단해 된장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점차 인기를 끌게 되었다. 중화요리가 번성하던 일제 강점기부터 주요 메뉴로 자리를 차지했지만 확실하게 인기 있는 음식메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60~70년대였다. 쌀 부족에 따른 정부의 혼ㆍ분식 장려 정책과 값싼 밀가루 가격으로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 음식이 되었다. 또한 추억의 음식으로 시대와 감성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중국의 차오장멘炸醬麵과 비슷하나 우리의 자장면과는 많이 다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중국에서는 만나 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장(춘장)에 캐러멜과 채소를 넣은 색상이 짙은 소스sauce로 만들어 국수위에 부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지금의 짜장면이 완성됐다. 결국 짜장면은 우리의 풍토가 만든 한식의 일부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광복 이후 짜장면과 짬뽕으로 대변되는 중국음식은 '신속 배달'이라는 상술로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더불어 음식배달을 위한 가방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소위 철가방이다. 처음에는 나무로 된 가방이었지만 무겁고 넘친 음식물들이 나무에 배어 냄새가 나는 등 위생 문제로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 플라스틱으로 가방이 나오기도 했으나 비용이 비싸 일반화되지 못하다가 가벼운 재질인 함석과 깨끗한 알루미늄 가방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배달통으로만 불렸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TV의 국민코너인 '쓰리랑 부부'에서 중국집 배달원을 놀리는 애드리브로 철가방이라고 시작한 말이 고유명사처럼 자리를 잡은 용어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더 가볍고 비싸지 않은 플라스틱 가방이 나와서 슬슬 자리를 뺏기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현역이다.
음식만큼 강력한 추억의 편린이 또 있던가? 어느 때, 한 그릇의 음식은 그 순간을 오롯하게 기억 속에 담는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도 그 음식과 조우하면 함께 먹었던 사람과 장소, 나누었던 이야기들, 분위기까지 모락모락 떠오른다는 것이 먹는다는 행위의 위대한 점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는 기념일중에 블랙데이Black Day가 있다. 매년 4월 14일,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 한다. 이날은 솔로들이 만나 함께 짜장면을 먹으면서 서로의 쓸쓸함을 달래는 날로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기념일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화이트데이와 대비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연인이 없어 새까맣게 탄 마음을 본따 블랙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입맛은 변하지만, 추억이 담긴 음식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불현듯 그리움으로 다가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음식이란 추억의 예술이자 오감을 살아나게 하는 마법사의 손길인지도 모른다. 추억이 진득하게 담긴 음식 앞에서 온통 그리움의 맛으로 살아나는 옛 기억을 반추한다. 누구나 음식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비싸거나 특별한 재료가 아니었음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하게 하는 그 요소는 무엇일까
또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은 이상하게도 같은 짜장면을 먹는데 내 그릇에만 특이하게도 국물이 더 생기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동료들이 위장이 나빠서 그렇다고도 했고 위산이 많아서 그렇다고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그 일이 떠올랐다. 사람마다 짜장면을 먹을 때 국물이 생기는 양이 달랐다. 알고 보니 침 속에 있는 아밀라아제란 효소의 작용에 비밀이 있었다. 이 효소는 음식물의 1차 분해와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간 음식물을 좀 더 분해하기 쉽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짜장면 면발과 '짜장'의 주성분인 녹말과 아밀라아제가 만나면 물처럼 점성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서였다. 결국 짜장면을 먹을 때 침을 많이 흘린다거나, 면발의 일부가 입에 들어갔다가 침에 묻혀 나오는 양에 따라 아밀라아제가 녹말과 반응하면서 물이 생기는 것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짜장면 속에 첨가된 전분과 침이 섞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입안에 들어갔던 국수가 침과 섞인 상태로 다시 자장면 그릇으로 되돌아 나오는 비율이 높을수록 물이 더 생긴다. 다만 이런 현상은 모든 음식물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분이 섞여있는 음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 뿐 몸에 병이 있거나 특이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음식을 먹는 방식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는 짜장면을 먹을 때 조심을 했다. 과연 국물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이제는 마음 놓고 짜장면 그릇을 비우고 있다.
지금이야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이 더 많지만 예전에는 춘천에 꽤나 많은 중국인들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회영루, 중화루, 대화관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 예전 서부시장 주변에 있던 대형 중국집과 중앙초교 앞쪽에 만리장성, 춘고 앞 대관원낙원동 가구골목 중간에 중화요리 재료만을 팔던 중국인 가게도 생각난다.
짜장면은 누구나 좋아하는 맛으로 저렴하고 소박한 가장 대중적인 국민음식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장면이라는 올바른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줄기차게 짜장면이라고 한 덕에 2011년부터 둘 다 표준어가 되어 마음 놓고 부르게 되었다,
추억 소환을 위해 오늘 점심은 배달 짜장면을 시킨다. 불과 10여분 후면 벨이 눌리고 투명
랩을 씌운 따뜻하고 구수한 짜장면이 도착되리라. 벌써 시장 끼가 느껴진다. [2018 문소회 춘천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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