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사람들은 옥수수를 ‘강냉이’ 또는 ‘옥시기’(옥씨기)라고 부른다.
지역사투리로 아직도 많은 토박이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용어이다. '옥수수’는 한자로 옥척서玉蜀黍라고 쓰고 위수수로 발음한다. 따라서 중국음에서 유래하여 한자의 우리식 발음으로 옥수수가 되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 있다. 또 지방에 따라 옥시기·옥수시·옥쉬이 등과 강냉이·강내이·강내미 등으로 불린다.
옥수수는 ‘수수' 알맹이가 옥구슬처럼 윤택이 나는 작물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옥수수가 표준어이며 강냉이는 낱말로 인정한다. 지역에서 쓰는 강냉이는 옥수수의 별칭이라는 뜻이다.
옥수수를 ‘강냉이’라고 부르는 것은 원산지가 남아메리카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된 데 연유한다. 남쪽 나라에서 왔다는 뜻의 ‘강남江南’(중국의 양자강 이남지역)에서 바뀐 말이다. 즉 옥수수 이름은 지리적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라 한다. 강낭콩(강남+콩)도 같은 유래로 붙여진 이름이며, '강남 갔던 제비', '친구 따라 강남 간다'의 '강남'도 역시 같은 말이다.
옥수수는 벼와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작물이다. 쌀 자급도가 낮아 궁핍했던 시절, 옥수수는 주식主食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양가 높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금도 옥수수는 사랑을 받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은 옥수수의 계절이다. 찰옥수수는 여름철 최고의 간식이며 강원도의 대표적 음식이다. 7월 하순이 되면 강원도 어디를 가도 도로변에 찰옥수수 판매 노점상들이 당연한 듯 자리 잡고 있다. 참매미 울어대는 나무그늘에서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면서 뜨거운 찰옥수수를 뜯어야 비로소 여름이 짙어진다.
솥에서 금방 쪄낸 뜨거운 옥수수를 뜯는다. 탱글탱글 반짝이는 쫀득한 감칠맛이 강원도의 맛이자 바로 고향의 향취이기도 하다. 찌거나, 구어도 먹지만 말린 옥수수는 쌀과 섞어 잡곡으로 먹었고 국수, 빵, 묵, 과자와 술, 기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또 음료, 피자, 식초, 치즈, 초콜릿, 사탕, 시리얼, 식빵, 과자 등 수많은 식료품으로 태어난다.
옥수수의 활약은 이것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옥수수껍질로 핸드백 같은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고. 수확하고 남은 대궁은 잘게 썰어 소먹이용 사료로 쓰던 유용한 작물이었다.
어린 시절, 어쩌다 한 번씩 뻥튀기 아저씨가 마을 공터에서 강냉이(튀밥)를 튀겼다. 주로 쌀과 옥수수를 튀기지만 쌀이 귀하던 때라 거의 옥수수 튀밥을 튀겼다. ‘뻥’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를 피우며 바깥으로 흩어진 강냉이를 주어먹었다. 그 고소함에 한참씩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지금도 가끔 간식으로 옥수수튀밥을 먹을 때면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못 싸온 아이들에게 무료로 주던 옥수수 죽이 떠오른다.
옥수수는 함께 먹기 좋은 음식이었다. 옥수수를 먹다가 누구라도 만나면 반을 툭 잘라 나누는 음식이기도 했다. 옥시기는 옥수수를 지칭하고 강냉이는 옥수수 튀밥으로 구분하던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올봄도 작은 텃밭에 옥수수를 심었다. 수확기가 긴 다른 작물에 비해 짧고 특별한 기술 없이도 잘 자라기에 매년 빼놓지 않고 심는다. 병충해도 적고 성질이 급한 얼치기 도시농사꾼들에게 아주 적합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키 큰 옥수숫대가 텃밭에서 마치 열병식閱兵式을 하듯 늘어서 나를 맞는다. 바람이 일 때마다 긴 옥수수 이파리들이 부대끼며 서걱대는 시원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건 덤이다. 가마 솥 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 너른 이파리에 떨어지는 청량감 넘치는 소낙비 소리를 떠올리면 후덥지근해 갑갑하던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한다.
옥수수 꽃인 개꼬리로 벌 나비가 모여들고 옥수수자루의 분홍색 수염이 영그는 7월, 어느 절기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는 농작물들이 자연에 순응하는 섭리에 탄복한다.
제철에 가장 흔하고 만나기 쉬운 음식이 바로 찐 옥수수다. 여름철 간식의 대표주자이기도 하지만 웰빙 건강음식으로 최고봉에 있기 때문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지방질이 적어 다이어트는 물론 성인병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 역시 아직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이런 음식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었을까.
키 작은 고추에 주렁주렁 열린 풋고추 몇 개와 잘생긴 애호박 하나 그리고 여린 호박잎 몇 장을 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여름의 강한 햇살과 비바람을 이겨내는 농작물의 생명력에 탄복하며 순간순간 행복을 만끽한다.
그까짓 거 강냉이면 어떻고 옥수수면 어떠랴,
오늘 저녁 식탁은 모처럼 보리밥과 내 손길로 자란 제철채소가 초록으로 풍성할 텐데, [2018 문소총서- 춘천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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