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因緣)
심 창 섭
* 아직도 손시린 겨울인데 벌써 절기는 오늘이 입춘(立春)이란다.
창밖의 찬 바람은 창을 흔들어 대고 있었지만 유리창을 통해 아파트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화사하고 따뜻하기만 하다. 베란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큰 어항 에도 봄볕이 들어 물고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유리파편처럼 부셔지는 은빛 반짝임이 신선하다.
놈은 오늘도 s자로 구부러진 허리를 힘들게 흔들며 어렵게 먹이를 채고, 또 한놈은 짧은 꽁지를 흔들며 비실비실 수면부위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산다는 게 뭔지, 말 못하는 그들의 아픔이 오늘도 내 가슴으로 전해온다. 그들과
두세달에 한번쯤은 꼭 맨살을 부딪는 인연을 가진지도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 . . . . . . . . . .
아이들의 여름방학이었던가, 어느 일요일이던가.
우리 가족은 근교 개울가로 견지낚시를 떠났다. 몇 번의 출조 경험으로 이제는 아이들도 낚시꾼이 되어 있었다.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장비와 간단한 먹이만 있으면 해결되는 견지낚시는 우리가족의 주말 놀이이자 문화였다.
다만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도 구더기가 징그럽다며 미끼를 끼우지 못하고 낚은 고기조차도 빼지 못하는 얼치기 꾼 들이었다. 나는 옆에서 미끼를 달아주고 잡은 고기를 빼주는 조수노릇을 해야했다. 그래도 즐거운 웃음이 넘쳐나는 강변의 하루는 늘 건강하고 싱그럽기만 했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도 우리가족의 극성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하루를 보내곤 했다. 피라미를 한참 잡아대던 아이들이 실증이 났는지 낚싯대를 걷고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논다. 이렇게 가끔씩 물가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고장에 사는 민물고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 이사가는 친지로부터 선물로 받은 어항이 있었기에 우리가 잡은 피라미, 각시붕어, 모래무지, 줄납자루, 갈겨니 그리고 춘천의 사투리로 부러지라 불리는 피라미 수놈 등 20여마리의 물고기를 음료수 패트병에 담아 거주지를 이주시켰다. 깨끗한 물속을 신나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우리가족은 더없는 활기를 느꼈다. 야생어라 일반 금붕어와는 달리 쏜살같이 어항 속을 누비는 생동감 있는 움직임은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고기들이 어항 위에 둥둥 떠있고 또 몇 마리는 베란다 바닥에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에도 어항속이 답답했는지 작은 인기척에도 놀라며 쏜살같이 어항속을 헤치며 유리벽에 박치기를 하더니 결국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우리와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불쌍하다며 물고기를 정원에 정성껏 묻어주는 아이들에게 삶과 죽음은 무엇으로 비춰 졌을까. 그들에게 죽음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보이지 않는 상처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는지 다행히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못할 짓을 한 것 같은 죄의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애써서 잡아온 고기들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버리거나 며칠동안 비실비실 거리다 결국은 어항 위에 하얗게 뜬 물고기를 몇번인가 아이들 몰래 걷어내기도 하였다. 그래도 토종물고기로 어항을 채우겠다는 미련과 고집으로 몇번의 실패 끝에 어렵사리 이들과 한가족이 될 수 있었다. 몇번의 쓰라린 경험은 자연과 살아있는 생물의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되었다. 가능하면 가까운 거리에서 산소가 풍부하도록 큰그릇을 이용하였으며, 어항에는 미리 물을 채워 놓아 온도를 실온과 적당히 해야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죽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얻게 되었다. 물론 예쁘다고 아무 고기나 기를 수도 없었고 낚시로 잡은 물고기보다는 어항으로 생포한 것이라야 성공률이 높다는 것도 깨우치게 되었다.
몇 번의 실패를 경험 삼아 생존율이 높아 기르기에 좋다는 붕어, 묵납자루 등 새끼 60여마리로 어항을 채웠다. 옛 기와 몇 장을 쌓아 숨을 곳도 만들고 자연석으로 놀이마당도 꾸며 주었다. 정성이 갸륵했는지 물고기들은 적응을 잘했다. 떼로 무리를 지어 기와집을 들락거리며 유영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두 달에 한번씩은 정성으로 물도 갈아주며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비록 인공사료이기는 했지만 식성이 좋아선지 성장이 예상외로 빨라 3년이 지나자 어항이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어느 날 그 중에서 이상한 놈을 발견하였다. 기형어, 아니 두 마리의 장애어(障碍魚)였다. 그 작은 어항 속 세상에도 아픔과 경쟁 그리고 혈연과 잘 난자와 못난 자의 아픔이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한 놈은 등이 s자로 굽어 있었고, 또 한 놈은 뒷 꼬리가 반 이상 잘린 모습으로 어렵게 유영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새로운 발견에 호기심을 갖고 다시 물고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등이 굽은 놈은 안쓰러울 정도로 힘들어 보이게 헤엄을 치면서 그런 대로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며면서 먹이도 잘 먹고 있었지만 꼬리지느러미가 반이상 잘린 놈은 아래로 잠수하기가 어려운지 꼭 수면에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볼품도 없고 보기가 민망해서 아이들과 아내에게 장애어를 치워버리자고 했지만 불쌍하다며 그대로 키우자고 했다. 처음 이사올 때부터 장애가 있었는지 아니면 우리 집에 와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부터 우리의 시선은 늘- 그들과 함께 있었다. 세상에는 어디를 가도 유별나게 시선이 모이는 곳이 있고 어디에 내놓아도 유난히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어느 곳을 가서도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하물며 이렇게 아픈모습으로 다가온 그들도 내게 시선과 관심을 갖게 하는데 세상 속에서 내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문뜩 어항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한번도 정상에 우뚝 서 본 경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아주 평범한 삶도 아니었는데 나는 주위의 관심도 끌어보지 못하고 예까지 달려오기만 했던 것이 아닐까.
불쑥 커버린 아이들과 장애어를 위해 올해는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자고 아이들과 약속을 한다. 그들이 우리의 관심에 벗어난다고 해도 소외됐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은가. 다만 넓고 좁은 어항 속을 유영하던 작은 몸짓으로 살아온 그들이 넓은 호수를 어떻게 달려나갈지 보고싶다. 아마 며칠동안 자유를 만끽하며 먹이 먹는 것도 잊은 채 “세상이 멋지고 이렇게 넓을 줄이야,”라며 외치며 의암호를 마음껏 헤엄치리라. 세상엔 더 큰 호수와 더더욱 큰 바다가 있는 줄도 모른채 .......
5년여 동안 어항 물을 갈아주고 매일 먹이를 주던 나는 은인이 아닌 구속자일 뿐이었다.
방생이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것인지, 또 다른 시련을 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연의 끈을 잘라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나 또한 넓은 호수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한 마리의 물고기로 변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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