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 삶이 뭐 별거간디!

심봉사(심창섭) 2010. 4. 18. 19:57

 

삶이 뭐 별거간디!

 

沈昌燮

 

* 직장동료로 복도에서 마주친 인연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여 년간의 길고 긴 시간. 마주함과 외면, 그리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가슴 저미는 열애(?)끝에 불혹의 문턱에서 겨우 상투를 틀 수 있었다. 처음부터 결혼을 목적으로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세월의 두께가 커갈수록 우리의 의지보다는 주위의 시선과 판단에 마음대로 돌아설 수 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결국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우리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모형제 하나 없이 친척집에 얹혀 살아온 초라한 나의 이력과 소위 짧은 가방끈은 부끄러움뿐이었다. 그녀는 3남 4녀중 맞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이었다. 당시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삶의 무게를 아니 희망의 무게를 달아 본 저울의 눈금은 늘 그녀 쪽에서만 머물렀고 마치 티끌 같은 가벼움뿐인 초라한 내 모습을 느끼면서 나는 절망하고 절망하였다. 차라리 그녀가 나 없으면 못산다고 하던가. 오직 당신뿐이라는 한마디 말이라도 있었다면 무작정 부딪쳐 보았겠지만 속내를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저 처분만 바라는 죄인처럼 숨 조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날 필요조차 없다는 그녀의 부모님을 억지로 뵈었으나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 냉랭함은 겨울바람보다도 매서웠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높디높은 반대에 벽을 넘을 수 없겠다고 느끼며 때론 모든 걸 하얀 백지로 만들고 싶었던 많은 시간을 잊지 못한다. 그저 강물에 떠서 흘러가는 낙엽처럼 주어진 환경에 저항도 한번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인연이 아닌 모양이라며 돌아서고 돌아서던 몇 차례의 이별연습과 마주쳐도 타인처럼 무심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끈질긴 인연으로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되었다. 처갓집이 지근에 있었지만 완고하고 쓰디쓴 외면에 마주설 수 없었고 농촌으로 장가가면 당연히 대접받는다는 처갓집 씨암탉 맛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설까 사랑이란 이름이 낯설어 예쁘게 포장조차 해보지 못한채 우리가 마주했던 그 긴- 시간들. 아픈 가슴을 감추고자 애꿎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리죽여 흐느끼던 시간도 이젠 추억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미화되고 있다. 그 와중에 붕어빵 같은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고 예전의 가슴아리던 설렘과 기대, 그리고 아픈추억도 20여년이란 세월에 씻기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시린 가슴을 안고 어렵게 맺어진 부부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삶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심심치 않게 부부싸움을 벌린다. 어제도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아내와 토닥거렸다. 토라진 아내의 펑펑해지는 뒷모습에서 김치냄새가 배어나고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래도 아내는 나와 아이들을 위해 어제의 감정을 누른채 오늘도 따뜻한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TV에서 어느 노부부가 서로의 손을 꼬옥 잡은채 우리는 평생을 싸움한번 안하고 살았다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다가 아내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의 쑥스러움, 며칠전의 다툼 때문은 아니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도 어렵게 결혼을 하고서도 왜 그 노부부처럼 살 수 없는 것일까. 그분들은 어떤 전생의 인연을 가졌기에 평생을 웃으며 해로할 수 있었을까. 또한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말투와 외모를 보면 정말 저들은 방송용이 아닌 진짜 금술 좋은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한 질투감과 놀부 심보가 발동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라는 의아심이 부풀어 오른다. 피를 나눈 부모형제와도 다투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어찌 각기 다른 인격체가 한울타리에서 저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혹시 자신의 감정을 누른 채 무조건 상대에 비유를 맞추거나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도인 같은 일심동체의 부부로 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론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말싸움이 감정대립이 되어 며칠간씩 말 한마디 건너지 않아도 서로의 심중을 읽는 방법을 배워 나가고 있다. 때론 토닥거리며 싸움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되는 슬기도 깨우치고,

때론 적당히 시간을 보낸 뒤 싱겁고 쑥스럽게 웃거나 은근슬쩍 아내를 부르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재미 또한 행복한 하나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삶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부가 수시로 싸움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끔은 배꼽이 빠지도록 마주보며 웃고, 또 가끔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행복에 겨워하고, 아주 가끔은 자신보다 서로를 위하는 배려로 신뢰를 쌓아 나간다. 마치 소꿉놀이 같은 생활의 작은 즐거움에 만족해하며 아직도 두 손을 꼬옥잡고 산책길을 나서며 행복해 한다.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토닥거리고 묵비권으로 또 며칠을 보내면서 세월의 두께를 더해 나가고 있다.

전생의 어떤 인연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는지 모르나 나의 갈비뼈로 만들어 졌을 아내라 생각하면 너무나도 소중하다. 경제적이나 환경적으로 아내의 가슴을 충족시켜줄 수 없는 헛헛함을 달래주고자 가끔은 빨간 고무장갑을 통해 체감을 느끼고 또 가끔은 빨래비누 거품을 통해 아내의 향기를 맡는다.

삶이 뭐 별거간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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