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리 벽
沈昌燮
* 새 한마리가 느닷없이 사무실로 날아들었다.
다시 탈출을 시도하려고 아우성치는 모습으로 보아 일부러 사무실로 들어온 것은 아니리라.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마음껏 날다 얼떨결에 좁은 공간에 갇혀버린 새는 어쩔줄을 몰라 탈출을 시도한다. 밖이 훤히 보이는 밖을 향해 돌진하던 새의 몸이 유리창문에 부딪칠 때마다 깃털이 여기저기 날린다. 새의 모양으로 보아 박새종류인 것 같으나 잠시도 쉬지 않고 유리벽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애처로울 뿐이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사무실이 술렁거린다. 직원들은 일손을 멈춘채 창문을 모두 열어주며 그가 순탄하게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유리의 속성을 알 수 없는 새는 안타깝게도 창문의 열린 공간이 아닌 투명한 유리벽에 부딪치고 떨어지기를 반복할뿐이었다. 탈출을 위해 필사의 날개 짓을 하며 사무실의 낮은 천장을 맴돌던 새는 1시간여의 몸을 던지는 사투 끝에 가까스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휴우-
새가 떠나버린 사무실은 한참동안 큰일을 하고난 뒤의 적막감 같은 분위기에 쌓인다. 새가 없다는 것을 빼고는 1시간전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이 없건만 무언가 허전한 공간감으로 채워진다. 아니 여기저기에 날리는 아주작고 가벼운 깃털만이 아직도 조금전의 급박했던 시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새가 날아간 빈 하늘을 한참씩이나 응시하는 직원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남는다.
자연과 인공,
동물과 인간
훤히 내다보이는 창공이건만 드나들 수 없는 투명한 벽.
늘 마주하면서도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야 말로 유리벽사회가 아닐까.
반투명 한지창을 통해서 우리선조들은 방안에서도 밖의 자연과 교감했으며,
바람 소리만을 통해서도 계절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생활속에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리창, 이로인해우리의 환경과 정서가 더욱 밝아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오늘 비로소 투명한 유리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늘 열려있는 벽이 아닌 완전한 단절이었다. 안과 밖이라는 두개의 극한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유리벽을 넘나들 수 있는 빛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어느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유리의 저편일까. 이 쪽 편일까. 아니면 유리벽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일까.
우연히 사무실로 날아들었던 새는 자유를 위해 그렇게도 온몸을 던지는 날개짓을 퍼덕였는데 나는 갇혀있는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는 환경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유리의 한 면을 막으면 실체를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이 되고, 공간에 세우면 벽이 된다. 한 여름엔 거센 비바람을 막아주고, 한 겨울엔 찬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던 벽이였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창밖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연출로 나를 행복하게 했던 유리벽이 오늘은 단절감과 고독 그리고 아픔으로 다가온다.
주먹을 불끈 쥐고 투시와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그 투명 창을 깨버리고 싶다는 충동도 마음속에서만 출렁일 뿐 행동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오후.
저 유리벽을 산산조각 낸다면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저 유리벽을 벗어나 더 넓은 미지의 세계로 탈출을 시도할 용기가 내게 있을까?
생사의 퍼덕거림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한 저 새는 이후 하늘을 날면서도 가끔씩
유리벽 속에 갇혀버린듯한 느낌과 허공에 부딪치는 악몽에 시달려 제대로 날개짓을 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내 시야의 저 너머 허공에도 투명한 유리벽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멀쩡하게 눈을 뜨고도 허공을 휘저으며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 아무런 막힘도 없는 자연에서도 가슴이 답답해 미친 듯이 소리치며 울부짖던 혈기왕성한 청년기가 있었는데, 그 답답함은 어떤 이유였을까
아마 눈에 보이지 조차 않는, 아니 느낄 수 조차 없는 아주 큰 유리벽이 있었던 것일까 ?
유리창 너머의 풍경은 변화가 없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보니 창밖에 는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호 입김을 불어 먼지가 나지막하게 엎드려 있는 유리창을 닦는다.
손길이 갈 때마다 유리창은 투명해 진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안팎의 구분이 없어진다. 밖의 풍경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투명이란 위장막이 형성된다. 내가 유리창을 닦고 있는 건 먼지가 아니라 벽이 있다는 것을, 아니 갇혀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사회의 규범이나 가슴속에 숨어있는 그 알량한 체면 때문에 벽을 깨기보다는 벽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자 이렇게 유리창문을 닦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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