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 손끝으로 다가오는 작은 행복

심봉사(심창섭) 2010. 4. 22. 14:39

 

 

손끝으로 다가오는 작은 행복

심 창 섭

 

- 태를 자른 곳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과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그것이 내가 춘천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청년기에 잠시 타향 살이에서 젖은 손수건의 의미를 실감한 후 고향을 떠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아무도 나를 위해 따뜻한 눈길을 주지는 않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도시 속에서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유년기의 편린들,  낯익어 정겨운 길목들,

지금도 소리치면 언제나 되돌아오는 추억의 메아리들.

*

금강산에서 먼길을 달려온 북한강과 설악산에서 시작된 소양강이 반갑게 만나 하나가 되는 주변에 자리잡은 내 고향 강 마을 춘천. 이러한 자연적 조건은 어린 시절 앉은뱅이 썰매를 시작으로 낚시, 스케이팅, 그리고 수영을 자연스럽게 즐겨왔다.

물론 개헤엄(?)이라는 마구잡이식 물장구이긴 했지만 계절마다 자연에 순응하며 물과 관련된 취미생활을 즐겨왔다. 도시 한곳에 세 개의 수력댐을 가진 전국 유일의 도시라는게 자랑스러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알 수가 없기는 하지만........

호반의 도시. 안개의 도시. 문화예술의 도시 등 춘천이라는 이름 앞에 각종 미사여구의 애칭이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조금 씩 고향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느끼고 있다. 신연강, 대바지, 공지내(곰짓내) 등 추억의 물꼬를 삼켜버린 호수. 강바닥에 앙금으로 남아 있을 오염된 호수를 바라보며 불과 40여년전의 내 체험담을 전설처럼 듣고 있는 아이들, 잡아도 먹을 수 없는 고기를 낚고 있는 운치없는 태공들. 손 시린 한 겨울 추위에도 얼지 않는 호수는 그저 막연한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 *

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기던 천렵(川獵)

우리네 서민들에게 가장 친근하고 낭만이 있는 여름철의 피서 법이 바로 천렵이다.

웃옷을 벗어 던지고 개울물을 텀벙거리며 족대로 고기를 건지고 한쪽에선 마른 나뭇가지를 주어 고추장 풀은 솥을 건다. 가까운 밭에서 깻잎과 풋고추 몇 개 따다 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쐬주(?) 잔 몇 순배를 돌리고나면 키 큰 미루나무에선 취기오른 매미 떼도 함께 합창을 하던 여름날의 추억.

 

여울을 오르내리며 한 번에 한 바가지씩 잡는 투망질과 어항 천렵도 일품이나

우리들은 주로 손쉽고 실패가 거의 없는 견지낚시를 즐겼다. 세계에서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견지낚시. 불과 서너 시간의 여유와 파리채 같은 견지대, 그리고 어망하나면 충분하다. 물이 무릎정도만 흐르는 여울에서는 어디서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여름철의 피서 법이자 놀이였기 때문이다.

대 낚시를 하는 분들은 그까짓 피라미 낚시를 왜 기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운 미묘한 느낌과 림의 환희를 모르기 때문이다. 큰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맛. 가느다란 견지대를 통해 손끝에 와 닿는 환상적인 선율을 졸렬한 필체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물론 한국낚시의 대명사는 찌가 솟아오르는 순간 반사적으로 낚싯대를 채는 대낚이다. 큰 고기가 걸렸을때 낚시대를 통해 전신으로 다가오던 그 팽팽한 긴장감때문에 한 밤중에도 눈을 감지못하고 찌를 응시하는 수많은 낚시꾼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묵직한 힘과 끊어질 듯 부러질 듯한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  세월도 낚는다는 여유와 기다림의 멋이야 말로 대낚시가 아니면 맛볼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나 장비와 기술 그리고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큰 기쁨을 맛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대낚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견지낚시라고 피라미만 잡는 것은 절대 아니다. 때론 경이롭게도 30cm가 넘는 누치나 끄리가 걸려 대낚시 못지않은 쾌감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견지낚시의 즐거움은 피라미 잡기이다. 견지는 기다림의 대낚시와는 완연히 구분된다. 흐르는 물의 속도와 깊이에 따라 추를 맞추고 줄을 풀면서 낚싯대를 물 흐름의 반대쪽으로 올렸다 내렸다 챔질을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느낌이 온다. 줄이 팽팽해지며 손끝으로 파르르 떨려오는 느낌을 즐기면서 천천히 줄을 감는다. 뭉게구름 떼를 지어 물장구 치고있는 맑은 여울물을 헤치며 은빛물고기 한 마리가 마지못해 딸려온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한 여름을 가르며 지나친다.

이런 견지낚시의 형언하기 어려운 감칠맛에 끌려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여름방학 기간에 가까운 여울을 다녀왔다. 아내는 물론이고 초등학생인 아이들도 깨끗하고 시원하게 흐르는 여울에서 고기를 낚는 견지낚시를 즐긴다. 또 마음이 맞는 이웃가족과 동행하여 자연 속에서 소풍을 겸한 즐거움과 고기를 낚는 기쁨은 배가된다. 잡은 고기 마리 수로 시합을 하면서 즐거워 하지만 한 시간 정도면 실증을 내는 아이들을 위해서 비닐어항도 몇 개 놓는다. 물장구를 치며 놀던 아이들 사이로 피라미 떼가 쏜살같이 지나친다. 아이들은 고무신 대신 비닐봉지를 이용해 작은 송사리를 잡아 플라스틱 음료수 병에 넣는다. 여름이 병 속에서 유영을 한다. 파란하늘도 병 속에 담긴다. 지금 이 시간이 예전에 우리가 그러했듯 아이들에게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한때가 되겠지.

견지낚시의 느낌이 바이올린의 선율이라면 어항을 들면 그 속에서 아우성치는 은빛의 향연은 교향악에 비교가 된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으로 가슴까지 와 닿는 전율의 농도는 누구나 다르겠지만 삶에 행복 또한 이러하지 않겠는가.

분수에 맞는 삶을 위해,

환경에 맞는 행복을 위해,

어쩌다 잡는 대어(大魚)의 기쁨보다 순간순간 손끝으로 미묘하게 전해오는 마디 마디의 작은 기쁨이라도 놓치지 않는 슬기를 배워야지

어느 날 갑자기 출근길 잃은 아버지들의 아침시간과 빵을 위해서 아들의 새끼 손가락을 잘라야만 했던 어느 아버지의 아픔을 비교하지는 말아야지. IMF라는 복병으로 자꾸만 움츠려지는 어깨를 위하여, 그리고 기상이변의 물난리를 위해 한 통화에 천원이라는 전화 다이얼을 누른다. 가느다란 낚시 줄을 통해서 감지되던 어떤 떨림이 뜨겁게 느껴온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의 척도라는 알송달송한 단어가 유행하는 불황시대에 사는 늘- 헛헛한 일상들.

새끼손가락이 없어도 약속이 이행되는 복지사회를 기다리는 우매함보다도 작은 기쁨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손끝에 와 닿는 작은 떨림의 증폭을 위해서........

199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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