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심 창 섭
* 가로수가 아무 부끄럼없이 고운 옷을 스스로 벗기 시작하는 초겨울.
의암호 건너편 저 멀리로 해발 1,468m의 가장 큰 키를 자랑하고 있는 화악산이 아슴푸레 푸른기운을 띄우며 가까이 다가선다.
때늦은 가을비라도 한줄기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얀 눈 모자를 쓰고 겨울문을 열어주는 겨울의 전령사이다. 의암호에 투영된 가을 산그림자가 아직도 아름다운데 올해도 화악산은 어김없이 흰 고깔모자를 쓰고 겨울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 주었다.
이 산의 한줄기 지맥이 남쪽으로 달려가다 신연강(新延江)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있는 봉우리를 삼악산(三岳山)이라 부른다.
또 세 개의 봉우리 하나하나를 학(鳥)으로 보았는지, 세 마리의 학이 노닐던 봉우리 인지는 몰라도 삼학산(三鶴山)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해발 654m의 그리 높지도 얕지도 않은 삼악산은 폭포와 계곡, 그리고 아름다운 등산로로 알려진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사실 삼악산은 춘천 사람들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산이다.
의암호 건너 서쪽의 수문장처럼 가로막고 매일 붉은태양을 휴식처로 인도하는 삼악산은 자연 기상대로서의 역할도 멋지게 수행한 산이었다. 지금은 실시간마다 정확한 일기예보를 접할 수 있지만 예전엔 라디오의 예보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오보가 빈번하여 춘천사람들은 예보를 믿기보다는 삼악산을 바라보며 하루의 일기를 점치곤 했었다. 삼악산이 검은 구름모자를 썼다하면 영락없이 춘천지역에 비가 오기때문에 외출시엔 반드시 삼악산 쪽을 바라보던 습관에 지금도 가끔씩 눈길이 머무는 정겨운 산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이랴. 예전 춘천의 선비들은 한양(漢陽) 가는 길목인 이 산을 바라보며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키웠 으리라.
1920년대에 만들어져 신작로(新作路)로 불리던 지금의 경춘국도가 있기 전에 삼악산은 춘천의 대문(大門)이었다. 서울쪽에서 춘천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산의 석파령을 넘어야만 했는데 이 고개에 관련된 전설이 하나 전해진다.
어느날 두 사람의 선비가 석파령 고갯마루에서 춘천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춘천으로 새로 부임하는 사또였는데 험준한 산길을 올라 춘천의 풍광을 보며 이런 오지마을에서 어떻게 살꼬? 하며 걱정스럽고 한스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또 한사람의 선비는 한양으로 승진발령을 받고 떠나는구관사또였는데 정들 었던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쉬운 이별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춘천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너무나도 달랐다. 신관사또가 가지고온 돗자리가 산골마을에서는 그리 필요치 않을성 싶어 돗자리를 찢어 나누어 앉아 동변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회자(膾炙)되어 석파령(자리席 찢을破 고개嶺)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춘천 쪽에서 삼악산 우측으로 개미허리처럼 잘록하여 가장 낮게 보이는 능선이 바로 석파령이다. 지금의 서면 안보리에서 가파른 이 고개를 숨차게 올라서면 발끝 으로 한눈에 춘천이 펼쳐진다. 아늑한 고을의 풍광에 도취될 틈도 없이 비탈길 길을 내려서면 다시 북한강 줄기인 신연강이 길을 막는다. 나그네 역시 삼악산처럼 발길을 멈추고 사공이 노를 짓는 나룻배를 타야만 접근 할 수 있었던 춘천교통의 시작점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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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피어오르는 산은 늘- 그리움으로 시작된다.
의암호로 인해 춘천이 안개의 도시가 되고 삼악산은 늘 안개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빼어남이 설악산준령을 닮았고, 웅장함이 오대산을 축소한 듯 하다는 삼악산은 사계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불과 3시간 정도면 완주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4㎞의 등산로와 고대 맥국(貊國)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옛 산성도 만날 수 있다. 허물어진 성벽과 이끼 낀 기와조각에 숨겨져 있는 옛 역사를 기웃거려 보면서 정상에 오르면 발아래 펼쳐진 탁 트인 의암호와 그 건너편에 신기루처럼 떠있는 호반의 도시 춘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에 오늘도 삼악산을 오르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는 뜻에서 세웠다는 전설 속의 흥국사 (興國寺)를 비롯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상원사와 비구니(女僧) 사찰인 봉덕사 등 7개의 사찰이 있는 명산이기도 하다. 또 빙하시기에 형성되었다는 등선계곡엔 크고 작은 6개의 폭포가 이어져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어우 러지며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올해는「산의 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마음으로 지척에 있는 삼악산을 답사하기로 했다. 산을 오르면서도 굿이 등산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은 특별한 산행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삼악산 산행은 일반적으로 의암댐옆의 상원사 쪽 등산로를 시발점으로 깔딱고개를 넘어 정상에 오른 후 초원을 지나 등선계곡에서 마치지만 오늘은 등선계곡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계곡 속에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폭포이름을 찾아보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가나 그러하듯 계곡입구는 관광지답게 토산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이 좌우로 이어진다. 어느 관광지에서 만날 수 있는 그만그만한 물건들이 잔뜩 나열된 기념품 가게와 산채비빔밥, 토종닭, 동동주 등 눈을 감고도 뻔한 식당의 울긋불긋한 차림표를 바라보며 입구로 들어선다. 먼저 좌측편 금선사 계단 위에 자리한 석불이 자비로운 미소로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 한가닥이옷깃으로 파고든다. 등선계곡 입구를 마치 수문장처럼 턱 가로 막고있는 유럽풍의 빨간색 양철 지붕위로 소나무 숲과 진회색의 암벽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매표소를 지나자 폭이 4~8m정도이고 좌우로 높이가 50m도 넘을 것 같은 웅장하고도 멋진 바위협곡이 시작된다. 입구의 오른쪽 벼랑위에 세월의 이끼가 진득한 작은비석 하나가 눈에 띤다. 궁금증에 읽어보려니 작은 글씨에 이끼도 잔뜩 끼었지만 웬 어려운 한문자만 골라새겨 놓았는지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못본체 슬그머니 발길을옮긴다. 흙 한줌없을것 같은 바위뿐인 계곡의 길 한 가운데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다. 어떤 전생의 인연으로 이런 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모르겠다. 많은 관광객들의 손때가 잔뜩 절어 반질반질한 나무사이로 멋지게 휘파람을 불면서 또 한줄기바람이 계곡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좁다란 계곡 위로는 푸른 하늘이 실개천 마냥 흐른다. 흙 한줌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잡풀들의 실루엣이 마치 난초를 친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듯 아름답다. 생명의 끈질김과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 한번 감탄사를 연발하며 계곡을 천천히 오른다. 사진기가 보편화된 오늘도 한쪽 팔에「사진」이란 완장을 두른 아저씨 한분이 조그만 접의자에 앉아 지긋이 졸고있다. 그 앞에 선남선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확대한 사진판넬을 보노라니 70년대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순간, 계곡바위벽 으로 날렵한 한 쌍의 청설모가 꼬리를 세운채 나는듯 오르내린다.
한 굽이 계곡을 돌자 구중궁궐(九重宮闕)속의 안방(內室)같이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는 폭포가 자태를 나타낸다. 바로 등선폭포(登仙瀑布)이다. 그러나 등선계곡의 대표격인 등선폭포의 왜소하고 얌전한 모습에 이곳을 처음 찾는 행락객들의 입에선 모두 에이- 하며 실망한 푸념들이 쏟아진다. 그래, 감탄사를 연발케 하던 협곡의 첫 모습이나 명성에 비해 너무나도 규모가 빈약(?)한 모습에 우선은 실망감을 느낄수 밖에 없다. 하지만 노래 소리보다 보다 맑고 시원스런 폭포수 소리에 기분이 살아난다. 흙이라곤 한줌도 없는 바위 골짜기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폭포수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듯한 신선의 모습이 연상된다.
오호라, 그래서 등선폭포라 했던가.
폭포 우측으로 마치 하늘로 이어진 것 같은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철난간 파이프의 매끈한 금속성과 시멘트계단의 인공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약 50도는 될것 같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자 금새 장딴지가 딴딴하게 뭉쳐오는 기분이 든다. 폭포수 소리를 벗삼아 계단을 오르니 폭포 바로 위 편에 널찍한 공간이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들어서 보니 방금 지나쳐온 협곡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광으로 바위는 온통 먹색으로만 보이고 좁은길은 하얀색으로 보이는 그대로가 한폭의 수묵화다.
어디 그뿐이랴. 너른 공간 안쪽 계곡으슥한 곳에는 마치 여자의 은밀한 부분과 모양이 너무 흡사한폭포가 하나 숨어 있었다. 마치 계곡 속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선녀가 불청객의 방문에 놀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어 비선(飛仙)폭포라고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본다. 폭포 위편으로는 다리하나가 구름처럼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다시계단을 오른다. 계단중간 바위벽에 내등선폭포(內登仙瀑布)라 암각(岩刻)한 큼직한 글씨가 보인다. 그 아래쪽에 강원도지사 김장흥이라 각인되어 있다. 1950년대에 도백이셨던 이분께서폭포의 이름을처음 지은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이름을 확인시켜 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교없이 쓴 큼직한 서체가 시원스럽게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폭포명은 어떤 폭포를 지칭하는 것일까. 방금 내가 비선폭포라 이름한 것이 내등선폭포인지 아니면 첫 번째 폭포의 이름을 이곳에 새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숨도 차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기분좋은 통증이 전해온다. 헐떡거리며 계단을 올라서니 아까 비선폭포에서 올려다 보이던 구름다리가 눈앞에서 계곡을 건너지르고 있다. 내려다보니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낀다. 쇠붙이로 운치없이 만든 구름다리를 건너 계곡을 돌아서니 삼삼오오 둘러앉아 손뼉치며 노래하는 한무리 행락객들의 소리가 산바람과 화음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계곡 속으로 자져든다.
널찍한 공간 위쪽에 돌로 지은 상점을 돌자 다시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여기서 자칫하면 오르막길 좌측 바위 뒤에 숨죽이고 숨어있는 등선계곡의 세번째 폭포를 그대로 지나칠수 있다. 상가 앞의 작은 다리를 건너자 마자 등산로를 살짝 비켜 좌측편으로 약10여m쯤 물길을 따라들어가면 수줍은듯 자태를 감추고 돌아 앉아있는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승학폭포 (乘鶴瀑布)다. 폭포가 크거나 웅장하지 않은 것이 삼악산 폭포의 특징처럼 작은 폭포이지만 정말 너무 예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물길에 닳아 여자의 피부보다도 더 보드랍게 옴폭해진 바위홈 사이로 햐얀 폭포수가 미끄럼틀을 타는 듯이 흐르고 있다. 물기둥이 하얀포말을 일으키며 웅덩이(沼)를 헤엄쳐 나가는 풍광은 정말 목이 긴학(鶴)이 물길을 차며 하늘로 날아오르는듯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폭포를 가로막고 거만하게 앉아있는 커다란 바위면에 승학폭포라 음각 (陰刻)한 글씨가 이끼속에 숨어있는 듯 하다. 산행길은 다시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급경사로 이어진다.
계곡의 좌측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면 널찍한 바위면을 타고 맑은 계곡수가 흐르는 보습이 보인다. 여기서 계곡의 풍광에 너무 도취되지 말고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계곡 우측바닥의 바위면에 백련(白蓮)이라 한자로 음각 된 큼직한글씨를 만날수 있다. 바위 등을 길다랗게 타고 누워 포말을 일으 키며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를 한송이 연꽃으로 비유한 아하! 저것이 등선 계곡의 네 번째 백련폭포렸다
이 등선계곡의 폭포와 담(潭)에는 저마다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해 놓았 지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그들은 쉽게 만나 볼 수가 없다. 마치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폭포주변에 숨어있는 듯한 폭포이름을 찾아보는 묘미도 이 산을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멋이기도 하다.
네 번째 백련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좀더 비탈길을 오르자 다시 작은 평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가뿐숨을 몰아쉬며 물가의 바위에 걸터앉는다. 마치 1인용 욕탕 같은 작은 바위웅덩이를 보드랍게 타고 넘치는 맑은 물에 손을 담근다. 생각보다 물이 차지는 않았지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줄기의 촉감이 감미롭다. 주변을 둘러보니 옥녀담(玉女潭)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런 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여인이라면 이건 분명히 선녀들이 아닐까.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떠올라 잠시 눈을 감고 나무꾼이 되어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다. 손가락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가던 보드라운 촉감은 바로 선녀들이 입던옷의 질감이었다. 아무도 없다면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옥녀담에 몸을 담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누른다.
물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낙엽과 부유물들이 잔뜩 가라앉아 있다. 이렇게도 맑고 깨끗해 보이던 하얀 폭포수도 이 물이 흘러내린 것인데 가슴속엔 이런 응어리를 안고 있다니.....
세월이 흐르면 원한도 용서되고 고통도 아름답게 기억되는데 내 인생의 흐름은 지금쯤 어느 곳을 흐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이를 먹으며 연륜이 더해 가는 데도 나는 왜 물처럼 자연스럽게 깨끗해지는 자정현상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흐르는 물에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 버리고 일어선다. 계곡 물은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듯 졸졸졸 소리를 내며 계곡을 타고 달려간다.
좁은 곳에서는 빠른 속도로 졸졸졸 소리를 내며 바위사이로 빠져나가던 물줄기가 조금 넓은 곳에서는 정지된 듯 주변의 풍광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주변여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계곡의 물줄기를 보면서 무작정 달려온 인생이 부질없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또 한줄기 바람이 은발(銀髮)을 흩트리며 눈가의 이랑사이로 빠져나간다. 물은 벌써 조금전의 물이 아니다. 별안간 낯설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산행은 다시 협곡으로 시작된다. 계곡을 막고 있는 한 덩이 바위 를 돌자 작은 폭포와 그 아래 진한 초록색 물빛의 둥근 소(沼)가 모습을 들어낸다. 이 정도의 멋진 분위기와 경치라면 옛 사람들이 이름을 명명하지 않을리가 없다는 생각에 여기저기로 눈 동냥을한다. 한참만에 좌우의 바위 면에서 작은 글씨를 찾을 수 있었다. 계곡의 우측에서 비(飛)자와 좌측에 용(龍)자가 한자씩 초서체로 음각 되어 있다. 다섯 번째의 비룡폭포다. 지금까지 보아온 글씨체나 크기가 아주 다른 것으로 보아 이건 분명 또 다른 사람이 쓴 것이리라. 폭포와 소(沼)가 크지는 않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진초록색의 웅덩이속에는 정말로 용이 살다 승천했을 것 같은 느낌 이 든다. 돌멩이 하나를 웅덩이속에 던진다. 텀벙 ! 깊이가 제법 깊다는 묵직한 소리가 돌과 함께 잠수해 버린다. 누가 내 가슴속으로 돌을 던진다면 내게선 어떤 소리가 날까. . . . . ?
명주실 한 타래도 더 들어간다는 깊이의 용소(龍沼) 이야기가 떠오르자 별안간 물속에서 아직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놀라며 튀어오를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른 자리를 뜬다. 계곡을 좌측으로 한굽이를 더 돌자 다시 작은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처럼 한참을 두리 번 거려도 글자를 찾을 수가 없다. 핑계 김에 쉬어 가기로 작정을 하고 바위에 걸터앉는다. 분명히 폭포 명이 있다는 우안(牛眼) 화백의 글이 생각나 다시 한번 기웃거려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갈증이 난다. 준비해온 오이를 계곡 물에 두어번 흔들어 씻어 한입 덥석 깨문다. 상큼한 오이향이 향긋하게 입속을 가득 메우며 갈증을 날려보낸다. 계곡이 온통 오이 향으로번지는 듯하다. 한참을 쉬며 두리번거리다가 포기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려는데 엉뚱하게도 등산로인 폭포 좌측면의 바위벽에 주렴(珠濂)이라고 음각한 글자를 만날 수 있었다. 구슬로 만든 발이란 뜻처럼 알알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구슬로 표현한 시적(詩的)인 이름에 취해 금방 폭포 곁을 떠나지 못한다.
아차, 그러다 보니 이 주렴폭포가 등선계곡의 여섯 번째라면 이제 더 이상 폭포를 만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여태까지 보물(폭포이름) 찾는 재미에 힘든 것도 모르고 올랐는데.................
***
아쉬움을 접고 산행을 계속한다. 바위협곡이 끝나고 밋밋해진 산길엔 흥국사 1㎞라는 조그만 팻말이 정겹게 다가온다. 힘도 들고 땀이 등줄 기를 타고 흐른다. 이름 모를 작은 산새 무리들이 물가에서 종알대는 계곡 한가운데 한 그루 고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황당에 돌멩이 하나를 주어 던진다. 돌무지 여기저기에 작은 탑들이 쌓여있다. 무슨 애틋한 바램들이 그리 많기에 이렇게 많은 돌들이쌓였을까. 아니, 내가 잠시 전에 던진 돌맹이는 어떤 의미의 기원이 담겨있을까.
재물, 건강, 행복, 명예 등을 차례로 손꼽아 보았지만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 없다. 불행하지는 않지만 행복에 겨운 생활도 아닌데, 욕심이 적어서 인지, 바보인지 몰라도 무리수 없이 살아온 과거사가 돌무지 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조실부모의 아픔과 친척집에서의 성장기 그리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어렵 사리 상투를 틀고 불행중 다행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교통사고. 그래도 아무탈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이상 욕심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30여년전 아침마다 삐죽이 솟아나는 면도를 하면서 내 삶의 질도 조금씩 이렇게 매일 성장했으면 했다. 당시에는 아주 소박하고 작은 소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사 돌이켜 보니 그 바램이 얼마나 큰 욕심이었던 지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작은 바람에 나뭇잎사이로 햇살이 부셔지며 계곡에 퍼져 나간다. 호흡을 크게 하고 소리쳤지만 메아리도 숨어버리고 음치인지 아주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한떼의 산새마저 햇살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여기는 삼악산 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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