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 군자란

심봉사(심창섭) 2010. 5. 5. 08:03

군자란(君子蘭)

                                                              沈 昌 燮

 

     * 무기로 샤워를 마친 화초에서 뿜어나는 싱그러움으로 상쾌한 아침이 시작 된다. 아내가 분무하는 물안개가 꽃잎 끝에 매달려 투명한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10여년 여기저기 남의 집을 떠돌다 평생 처음으로 내 집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당당히 입성했던 그날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하얀 벽면에 조심스레 못을 박아 가족사진을 걸고, 새로 맞춘 커튼을 달며 내 가족의 안식처를 만들었다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감과 성취감에 몇밤인가 잠 못 이루며 거실을 맴돌던 날이 있었다. 

 소위 인간닭장이라는 말로서 분위기를 몰아치던 삭만한 아파트 생활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면에서 15m의 높이인 7층에서 창을 통해 보는 자연이라야 건너편 아파트에 가려 겨우 머리부분만 살짝 보여주는 대룡산 일부와 정원의 수목들 뿐이다. 그래도 메마르지 않는 정서살 수 있는건 베란다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몇 분의 화초와 씩씩하게 커 가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남향이라 햇볕 잘 들고 관리하기가 편해 실내 정원을 꾸미기에는 아파트 베란다만큼 좋은 곳도 없다. 가족의 중심공간인 거실에 앉아 가장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삶의 활력소로서 촉매역할을 하는 화초 몇 분이 오늘은 너무나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흙을 밟고 흙 냄새를 맡으며 살았던 우리의 삶이 어느 순간 콘크리트 속에 갇힌 답답함도 잊은채 쳇바퀴 돌리듯 하루하루를 반복한다. 마치 개미떼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고 드나드는 곤충의 모습과 내생활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대룡산은 아직도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데 군자란이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소식을 전한다. 꽃봉오리를 세어 보니 무려 이십여 송이도 넘는다. 올해도 군자란은 어김없이 제일먼저 한 무더기의 탐스런 주홍색꽃 망울을 터트렸다. 눈을 감는다. 조용히 다가오는 봄의 향기가 저토록 가슴을 부풀게 하는데 누가 군자란 꽃에 향이 없다고 했는가.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뭔가 기쁜 소식이 올 것 같은 설렘이 전해온다.

 

 콘크리트 덩어리인 우리 집 베란다엔 커튼을 대신하여 군자란을 비롯 오죽(烏竹), 양란, 동양란, 백합란 한분씩과 이름도 모르고 키우는 키큰 활엽수 몇분을 늘어놓았다. 그중 아파트 입주 축하분으로 한가족이 된 군자란(君子蘭)은 특별한 정성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해마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난잎 모양의 넓적하고 두꺼운 잎들이 마치전통 쥘부채(摺扇) 모양으로 나란히 포개져 있는 가슴을 헤집고 길게 솟아오른 꽃대 끝에 불꽃 터지듯 열송이에서 스므송이가 넘게 한무더기씩 피어대는 주황색 꽃은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진다. 더더욱 군자란이 사랑을받는 건 거의 두 달여 동안이나 활짝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양화 소재로서도 사랑을 받으며 우리와 친숙한 군자란은 동양적인이름과는 달리 남아프리카가 고향이고 난과(蘭科)가 아닌 수선화과의 다년초란다. 또 꽃이 지고 나면 꽃대 끝에 열매가 살을 찌우며 다래정도로 커지다 주황색으로 변하면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린다. 언젠가 화분 옆에 던져진 군자란 열매에서 경이스럽게도 뿌리가 삐져나와 흙속으로 파고들더니 연녹색 이파리가 새살 돋듯 커가고 있었다. 아내의 환호가 시작된 그날부터 군자란은 새로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아내의 변화는 집안 전체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분무질을 하며 화초와 이야를 나누며 돌보는 아내의 모습에서 또 다른 사랑을 느꼈고 행복을 음미하면서 가정의 포근함을 느끼곤 한다. 며칠전 화분이 터질정도로 잔뜩 퍼진 군자란 포기를 나누어 동서 댁에 선물로 보낼때는 대견하면서도 섭섭한게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었다. 

 

  군자란의 예쁜짖은 꽃뿐이 아니였다. 꽃이 지고나면 꽃씨앗으로 번식이 가능한 새생명 탄생의 신비를 보여줄 줄이야. 씨를 틔운 군자란을 매년 주변 친지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그들의 생활속에 활력의 씨앗이 되기를 기원하는 즐거움도 또하나의 기쁨이다. 화병에 담겨 진한 향기와 자태를 뽐내는 화려한 장미꽃보다도 이렇게 싱그러운 아침을 열어주는 화초 한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달으며 자연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양파껍질 벗듯 이렇게 또 한 겹의 허물을 벗으며 작은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아직도 몇겹을 벗어야만 하는지 나는 모른다. 불과 한치 속 가슴속에 있는 진솔한 내 모습은 어떤 것일까. 마지막까지 벗지도 못할 허물을 두려워 하는데 아직도 창밖에 찬바람은 빈가지만 남은 가로수를 흔들어댄다. 진정 저 꽃이 피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神)의 뜻인지. 절기에 대한 자연적인 순응인지, 아파트의 따뜻함인지, 아니면 아내의 손길인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단지 활짝핀 군자란 꽃이 내 가슴에 전해준 향기를 행복이란 이름으로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늦잠에서 깨어난 이른 봄날의 일요일 아침.

화초를 돌보는 아내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원고지를 메운다.

불현듯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른 낯설지 않은 생각에 노트를 뒤적인다.

시인의 이름도 없이 내 노트에 잠자고 있던 시 한 수가 고개를 내민다.

긴- 문의 글보다도 함축되어 있는 詩語를 보며 글쓰기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 시를 재음미하면서 일요일의 상쾌한 아침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蘭도 아니면서 蘭이라고

그것도 君子라는 이름을 얻어

뽐내는 君子蘭

자신의 친척인 水仙花를 멀리하고

蘭으로 행세하는 君子蘭

군자란은 주위의 蘭 화분보다

재빨리 꽃을 피운다.

열 여섯 송이의 꽃잎을

동그랗게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