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 돋보기가 있는 풍경

심봉사(심창섭) 2010. 12. 18. 21:32

 

 

돋보기가 있는 풍경

심 창 섭

번엔 왼쪽 눈을 가리세요.

사무적으로 명령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나는 오른쪽 눈을 가리던 주걱모양의 기구로 왼쪽 눈을 가린다

그녀가 차량 안테나 같이 생긴 금속봉으로 가리키는 숫자와 형태를 큰소리로 때론 손가락질로 방향을 가리킨다. 3, 7. 5. 8. 4. 나비......

금속봉은 글씨와 모양이 자꾸 작은 쪽으로 달려간다. 처음에는 큰소리로 쉽게 대답하던 목소리가 기어들며 우물쭈물하면 지체없이 지휘봉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불과 2~3분의 측정이 끝난다. 그녀는 검진부에 아무렇게나 숫자를 휘갈려 쓴다. 1.5. 1.5의 좋은 시력이란다. 초교시절부터 시력검사에서 한번도 1.2 이하로 떨어져 본적인 없는 기록보유자인데.......

노안이신데요.

어느 날 아침신문을 펼치는 순간 눈이 침침해지면서 가까운 글씨가 흐릿하게 떠올라 눈을 비벼 댔지만 작은 글씨가 아물거려 읽을 수가 없었다. 전날의 과음탓이려니 하고 무심히 넘겼지만 숙면을 하고난 다음날도 역시 신문면에 아지랑이가 아른대면서 기사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안경점을 찾아증상을 하소연했다. 별것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시력검사를 마치고 나서는 마치 실험 도구 같은 측정기를 통해 내 눈을 살피던 안경사는 자연스럽게 세월이 만들어준 선물이라며 이제부터는 보고도 못본 체 해야 할 나이가 되셨다며 아이들 장난감 같은 안경을 건넨다.

안경을 쓰고 신문을 펼친다. 마치 안개가 걷힌 것 같은 맑음이요, 쾌청이다. 마치 숨어있던 작은 글씨들이 목욕을 하고 나온듯한 해맑은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돋보기였다. 어린시절 따사한 겨울햇살 아래서 초점을 모아 종이를 태우며 신기해하던 놀이기구로 사용하던 바로 그 화경 속이었다. 개미떼 같은 그 작은 글씨들이 몸피를 부풀리며 내게 다가선다.

세상이 밝고 새롭게 변하는 모습에 기분 좋았던 것도 잠깐, 돋보기를 한참을 쓰고 있자니 어지러움과 눈이 아프고 두통이 수반된다. 또 조금만 초점거리를 벗어나면 어김없이 예전의 흐릿한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

마음은 아직도 40대인데 할아버지 물건의 대명사인 돋보기를 써야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 예전 코끝에 안경을 걸고 말씀들을 나누시다가 안경너머로 올려다 보시며 인사를 받으시던 복덕방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뜻 결정을 못하고 주춤거리자 외형은 일반안경과 모양이 똑같지만 아래 부분은 돋보기고 상단부분은 도수가 없는 맛보기로 외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다초점 안경을 권한다. 값이 꽤 비쌋지만 돋보기를 코끝에 거는 그림보다는 나을성 싶어 구매를 결정한다.

한참 만에 건너 받은 안경을 쓰고 거울을 마주한다. 남들은 안경을 쓰면 오히려 더 인텔릭해지거나, 학자 같다거나, 노숙해 보인다고들 하던데 어째 낯설기만 하다.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하지만 어쩌랴 나이가 들면서 가장 확실하게 다가온 몸의 변화에 낯설고 생소한 모습으로 변화를 시작한다.

노안은 더 이상 자신의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주위 사람과 보다 더 먼 곳을 보라는 가르침이라고도 했고 책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 되는 시기라고도 했다.

돋보기를 쓰는 행위가 자신을 돋보이고자 함이 아니고 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니 방법이 없지 않은가. 별스럽게 저항한다고 자연의 섭리를 막을 수도 없는 마음만 40대면 무엇하랴, 익숙하지 않은 안경을 쓰니 코끝으로 시간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열이라는 숫자를 넘길 때마다 나는 언제나 자세를 한번정도 추스르며 지나간 인생과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새로운 시작점으로서의 각오를 다짐하곤 했다. 물론 작심삼일의 또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는 했지만 그 당시의 의미만큼은 아주 결연했었다. 나이테가 쌓여가는 세월의 무게는 아직도 멀쩡한 정신과 몸놀림으로 잠시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지만 예전같지 않은 시력과 건망증으로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져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이제는 작은 일에도 흥분하고 분노하며 참을성 없는 불같은 마음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한다. 나팔꽃이 피면 핀대로 국화꽃이 지면 진대로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할텐데.......

10여년전 처음으로 돋보기를 맞추며 느끼던 단상도 이미 가물거리고 책상에, 차안에, 외출복에는 물론 화장실에 까지 돋보기를 두고 있다.

안경 뒤의 주름진 눈가로 삶의 여정에서 묻어온 외로움이 보이고 부석한 삭막함도 다가온다. 늙을수록 애가 된다더니 소년시절엔 하나의 화경만 가지고도 세상의 신비를 보았는데 이젠 두개의 화경을 가지고도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세월을 살고 있다. 하기사 듣지 말아야 될 것과 보지 않아도 될 것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니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이 정도의 불편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노안증세 정도야 현대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이제는 사라질만한 증세인 것 같은데 그들은 이 아픔을 몰라서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고 휴대폰이 울린다. 안경을 잠시 벗어 놓았으니 또 눈을 찡그리고 문자를 확인해야 한다. 제발 띄어쓰기라도 잘된 문자가 왔으면 좋으련만 읽어도 해석이 않되고 누가 보낸지도 알 수없는 편지가 아니기를 기대하면서 휴대폰을 연다. *

                                                                                        (2010 새밝지 수록)

돋보기가 있는 풍경(수필 2010 새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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