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업둥이

심봉사(심창섭) 2011. 11. 26. 21:44

 

수필

업둥이

심 창 섭

- 취미의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섰다.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썩은 동아줄이라도 늘어져 있다면 핑계라도 대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는 구실이 생겼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그 간의 공력이 너무 아까웠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다시 내려서려는 핑계를 대기에도 이미 기회를 잃었다. 돈도 되지 않는 예술을 한답시고 꽤 오랜 시간을 사진과 함께해 왔다. 아직도 사진기를 들고 나서지만 깨진 독에 물붓기인지 항아리는 늘 비어있다. 그렇게 올곧은 사진가의 길도 아니었건만 삶에도 굴곡이 있듯 몇 년에 한번 씩은 슬럼프라는 늪에 빠져 허덕였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진기를 부셔버리고 싶던 순간도, 인화된 사진을 찢고 또 찢어버리며 좌절하던 아픔도 세월의 힘에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엔가 다시 치유되곤 했다. 그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다짐으로 사진기를 잡고는 했다. 예술이 돈이 되고 명예가 되는 세상이 도래했음에도 나의 사진세계는 다리 잘린 풍뎅이 돌듯 늘 그 자리에서 맴 돌기만 하였다. 하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도 못했으며, 남다르게 피나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고, 남보다 더 투자한 것도 아니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하지만 왠지 등 뒤가 허전해지는 느낌은 무엇이었던가.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은 있어 연륜의 나이테를 증명서처럼 내 보이며 후배들을 질책하기도 했고. 어깨를 토닥 거려주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비어있는 내 마음을 향한 독백이자 몸짓이었으리라. 미끼 없는 빈 낚시로 세상의 제일가는 태공이 된 사람도 있었지만 미끼 없이 던진 예술은 언제나 허망함이 바늘 끝에서 투명한 물방울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연륜이란 더께로 인해 아집만 강해지고 창의력마저 퇴색해 지고 있다. 사위어가는 불길을 살려보고자 지난해 말에 개인전을 열어 보았다. 어눌하긴 했지만 30년만의 첫 전시. 춘천토박이의 감성으로 바라본 향리의 풍경으로 전시장을 채웠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부분은 나의 사진사에서 늘 중심점으로 멘토가 되어주시는 분이 있었기에 전시회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전시회 한번으로 나의 사진예술세계가 정리되거나 확인되고자 한 것도 아닌데 이 조촐한 전시를 위해 왜 그렇게도 몇 날 몇 밤을 고민과 설렘으로 지새웠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골병이 들고 귀퉁이가 닳아 세월의 흔적이 눈으로도 보이는 사진기를 정성들여 닦는다. 몇 년 전 봉의산에 오르다가 30여m 낭떠러지를 구룬 후 부터 어딘가가 삐꺽거리기는 하지만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다. 직장의 골인지점인 정년의 틀의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진에 전념하려 했던 나의 계획은 희망에 불과했다. 예술은 시간이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과정이나 절차가 아니었다. 예전에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방짐과 모자람을 일깨우듯 나의 사진은 어느 봄날의 벚꽃 잎처럼 바람에 날리며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했다. 사진기를 동행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많아 이곳저곳에서 허허대며 셔터를 눌러 대보지만 풍요속의 빈곤으로 허기와 갈증을 느끼기만 하였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가시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감성을 농축시킨 여백과 이면의 감흥에 따라 질을 달리하기에 쉬운듯하면서도 다가설수록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이번 슬럼프는 예전의 수렁보다 깊은 늪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이럴 때마다 또 그곳을 찾는다. 삶이 버겁게 느껴지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면 습관적으로 찾는 사유의 공간이자 치유의 장소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주중에는 정말이지 깊은 산속의 절간처럼 고요를 유지한다. 조용한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적절한 조명아래 유리상자안에서 깨어진 돌멩이가 나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예전에 이렇게 몸을 부서지는 아픔으로 인간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나, 네 조상들과 삶을 함께 했으며, 지금은 너의 눈길로 인해 행복하다며 옛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눈길을 돌린다. 이번엔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처럼 매끈하게 가공된 돌들이 모여 있다. 또 스님들의 누비고 누빈 가사처럼 조각난 파편을 누벼 완성된 상처투성이의 빗살무늬 토기 사이로 그 오랜 시간의 역사가 살아나고 있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들과 마주하며 매번 시침과 분침사이에서 쌓이고 소멸되던 잡다한 일상을 잠시 잊는다. 결코 나의 사진예술 활동은 누구를 위한 예술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만족과 자아를 찾고자 시작했던 몸짓이었을 뿐이다. 무려 몇 만 년 전 석기시대인 들이 사용하던 도구에서도 느낄 수 있듯 예술이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삶의 흔적이자 산물이 아닌가. 투박한 돌을 깨고 갈아 돌도끼, 화살촉을 정성스럽고 곱게 만들던 석기인 들을 생각한다. 이쯤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심과 강박관념을 훌훌 털어버리고 진정한 예술적 행위를 즐겨야 하지 않을까. 비워야 채워지는 술잔처럼 가슴을 먼저 비워야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뚫린 공간으로 바람이 술술 빠져나가지만 체온이 느껴지는 빗살무늬 토기 술잔 하나를 가슴에 넣어본다.

 

아마 내일쯤이면 다시 사진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박물관 문을 나선다.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잿더미 속에 묻혀있던 작은 불씨가 꿈틀거린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혈관으로 피가 힘차게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결코 사진기를 버릴 수 없으리라. 어느 날부터인지 업둥이에서 분신이 된 그림자처럼 *                                                     <2011 강원한국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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