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현시대의 초상

심봉사(심창섭) 2012. 11. 1. 08:10

 

 

수필

현시대의 초상

심 창 섭

* 오늘은 어머니의 기일忌日이다.

병풍을 치고, 돗자리를 펼친다. 나름대로 두루마기와 유건으로 의관을 갖춘다. 또 정성으로 쓴 지방紙榜을 모시고 축문祝文을 지은 후 조율이시棗栗梨柹, 좌포우혜左脯右醯 등의 형식을 차린 젯상 앞에 경건히 무릎 꿇고 향을 사른다.

향불의 연기가 거실로 그윽이 번져 나간다.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냉수 한잔 준비하지 못한 불효로 가슴을 할퀴던 오랜 독신의 아린시간이 향불의 연기를 타고 피어오른다. 불혹의 나이로 상투를 올리고 첫 제사를 치루면서 정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벅찼던 기쁨과 이제서나마 자식의 도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소리없는 눈물을 흐르게 하였다.

오늘 제사는 아이들이 직장과 군 복무로 집을 떠나있는 상태라 올해는 아내와 둘뿐이다. 아이들과 어릴 때부터 삼헌관으로 차례로 술잔을 올렸는데 혼자 제사를 치루려니 막막한 생각이 든다. 비로소 아이들이 없다는 부재감과 집이 텅빈 것만 같다. 아이들이 제례에 참여한 후에는 한번도 함께하지 않던 아내가 내 맘을 헤아리고 함께 절을 올린다. 불쑥 아내가 볼까봐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부복한 채 일어서지 못했던 첫 제사의 그 감동이 떠올랐다.

어머니!

그 첫 기일을 맞이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

당신을 향한 보고픔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는데 이제는 그 모습마저 사위어 가는 시간입니다. 아이들과 잠시만 떨어져도 이리 보고 싶은데 겨우 일곱 살의 외아들을 두고 떠나신 당신의 아픔은 얼마나 크셨는지요. 그 동안 어미없는 슬픔으로 당신의 아픔은 생각조차 못한 채 늘 원망으로 살아왔는데 오늘에서야 당신의 가슴을 헤아려봅니다.

어머니, 꿈에서라도 한번 뵙고 싶습니다. 절을 올리고 금방 일어서지 못하는 남편의 마음을 엿보던 아내는 숭냉을 준비한다며 주방으로 가버린다. 핑계김에 오래동안 엎드린 채로 어린아들의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아이들과 함께 할때는 생각도 없이 함께 하던 제례가 이렇게 혼자서 절을 올리다보니 이리도 허전할 줄이야. 그 동안은 아이들이 있어 삼헌관三獻官으로 세잔의 잔을 차례로 올렸는데 단잔單盞을 올리려니 괜히 송구스럽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도 무축단잔無祝單盞이라고 축문없이 혼자서 봉행奉行하는 제례방식이 있었지만 허전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축문을 준비했다. 새로운 시도로 한글축문을 지어 읽다보니 어째 운율도 맞지 않고 쑥쓰럽기만 했다. 조상님들도 깜짝 놀라시겠지만 아이들이 이해도 못하는 한문축문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시도한 한글축문이지만 어째 어색하기만 하다. 잘난 척해봐야 나 역시 구시대의 의식으로 포장된 늙은이에 불과한 모양이다.

요즈음은 조상의 날이라고 모든 제사를 1년에 한번 몰아서 올리는 제사방식이 슬며시 번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는 말도 안된다는 소리라며 흥분했는데 제사 때마다 제물준비로 위해 혼자서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면서 한번시도를 할까 하면서도 입을 열기가 그랬다. 늘 현실에 맞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보수적인 성격을 버리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친 아내에게 기일에 제일 힘들거나 문제점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예상외의 대답이 나왔다. 제사는 빠짐없이 모시되 제물차림 형식을 조금 개선하잖다. 어차피 제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인데 우리 식단에 맞는 음식으로 간소화했으면 좋겠단다. 일리가 있기에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다. 우선 계절적으로 맞지 않을 때의 제례는 밤과 대추, 곳감과 생선포같은 비실용성이고 형식적인 제물은 올리지 말고 다른 것으로 대처하잖다.

하기사 조율이시(棗栗梨柿)로 지칭되는 대추, 밤, 배, 감을 놓는건 그 과일의 씨앗이 상징하는 의미였다. 대추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뜻하니 처음에 놓고, 밤은 한 송이에 3개가 들어있어 3정승을 뜻하니 2번째 놓고, 배, 사과는 씨가 6개라 6조판서(判書)를 뜻하니 3, 4번째 놓고 감은 씨가 8개라 8도 관찰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에 굳이 억지 의미를 부여할 과일을 올리기 보다는 철에 맞게 딸기, 포도, 밀감 등의 과일도 올리잖다. 또 바나나, 오랜지, 파인애플 등 외국산 과일도 한번 올려 맛보시게 하는게 무슨 문제냐며 반문을 한다. 일리가 있었다. 북어포 또한 예전 생선이 귀할 때 올리던 의식이니 현실에 맞게 제철에 구하기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해물을 쓰자고 했다. 생전처음 대하는 파격적이랄 수 있는 음식과 상차림에 조상님이 놀라시고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명절이나 기일만 되면 나는 늘 지방을 쓰고 밤(생율)이나 치고 병풍과 돗자리만 내 놓으면 그만이었지만 아내는 제물을 만들기 위해 이틀씩이나 분주해야했지 않은가. 제사가 끝나고 나면 큰 숙제를 했다는 듯 홀가분해 하며 어구구~ 신음을 내며 허리를 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내게는 키워준 은혜와 함께했던 연민의 정을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당연한 의식이다. 또 한번도 마주한 적은 없는 분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부모님이라는 핏줄의 계보를 알려주는 동시에 조상을 기리는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을 전하는 교육장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 아내에게는 남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늘 미안스럽고 고마운 마음에 그 뜻이 그릇되지 않기에 바로 고개를 끄떡이고 싶었지만 뭔가 찜찜하고 개운하지를 않아 한번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살아실제 정성을 다하는 것이 효도지 돌아가신 후에 격식이 무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가슴속에서 우리대까지는 지금의 예법을 따르고 아이들대부터는 그 방식을 따르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밖으로 나오지를 못한다.

아직 다음기일이 넉넉히 남아 그리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지만 어떤 결정으로 이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현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구시대적 의식이 갈팡질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