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풍경과 세계의 풍경 사이에서 떠돌기
- 심창섭 작가의 <때론, 그리움이 그립다.>에 부치는 글 -
표현을 뜻하는 ‘express’는 라틴어의 동사 ‘exprimo’에서 온 것으로, ‘밖으로 내밀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한다.
그것의 번역어로서의 ‘표현(表現)’ 역시 ‘밖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니 아마도 원의를 감안해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싶다.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중의 하나라고도 하거니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내면에 들어있는 무엇인가를 밖으로
드러내려는 수많은 말들과 행동들과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사진의 발명과 함께 인간의 표현 형식은 획기적인 전환을 맞았다. 어떤 그림보다도 가장 사실에 가까운 사진을 보면서 어떤 화가는
절망했을 것이고 어떤 화가는 환호를 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었든 그들의 마음에는 표현욕구와 관련된 묵직한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주의(realism)의 기치 아래 예술가들의 치열한 시대정신이 예술애호가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 실체는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이, 우리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확인해보려는 순간 그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토록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찾아 표현하려는 그 태도가 예술을 추동하는 힘일 수도 있다.
표현하고 싶다 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고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대부분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전혀 표현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생각보다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어렵다. 마치 우리의 언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것처럼, 모든 표현 형식은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수많은 잔뿌리로 흩어진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매체를 통해서 표현하려는 목표와 사진작가의 내면 풍경, 사진기라고 하는 매체가 가지는 다양한 우연성과 의도성 등은 몇 단계
과정을 거치는 동안 표현 욕망은 매체와 표현 목표 사이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일회성을 가진 시간을 하나의 공간 속에 묶어두는 것이 사진예술의 여러 특징 중의 하나라면, 우리는 사진 작품을 통해서 시간의
제약을 넘어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감동을 공유할 수 있다. 어떤 예술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사진 예술에서 ‘감동’을
공유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감상자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사진기의 앵글을 통해서 세상을 경험한다. 그랬을 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며
감동을 느끼고 자신이 세계에 드러내고자 했던 표현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된다. 이미 말한 것처럼 그 내용들이 작가와 감상자
사이에서 흔적없이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거기에서 최대한 작가의 감동을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감동에 완벽한 합일을 하지
못하겠지만, 사진이 던져주는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마 새로운 감동이 예술의 중요한 목표일 것이겠지만, 사진을 보면서
일으키는 감흥과 감동은 작가와 감상자가 사진기와 작품을 매개로 하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교감일 터이다.
그 교감은 처음 작가와 감상자 사이에 일대일의 관계로 시작했겠지만, 그 감동이 확산되면 될수록 그 관계는 세계로 무한히 퍼져나간다.
감상자를 이렇게 만들 수 있다면 작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심창섭 작가의 작품을 보면 언제나 그의 내면풍경이 궁금하다. 사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풍경이 곧 작가의 내면풍경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어찌 단순하게 직접 연결되는 요소들이겠는가. 대지에 굳건히 뿌리는 내리고 있는 나무의 밑둥이 몽환적인 대기 속에 가지를
활짝 펼치고 있는 작품에서는 오히려 저 가지들이 희미한 안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저 대지 속으로 가지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은 꽃이 작품 가득 웃고 있는 걸 보노라면 저 미세한 꽃술 하나에도 온 우주가 가득 담겨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굳이 사람의 모습을
넣지 않더라도 그의 사진에는 언제나 성스러운 인간의 삶이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사진마다 붙어있는 그의 글은 사진의 다양한 감흥과 더불어 감상자 혹은 독자들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글은 사진을 닮아있고
사진은 글을 닮아있는 기묘한 풍경이다. 글과 사진 사이에 심창섭 작가의 세계가 아름답고 성스럽게 부유하고 있다. 작가는 오랜 세월
동안 탐색해 온 세계의 비의(秘義)를 사진 속 풍경과 글 속의 말들 사이에 슬며시 풀어놓는다. 우리는 그 사이에 부유하고 있는 작가의
세계를 체험하고 감동을 받으면서 어느새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삶이 얼마나 새롭고 성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어디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보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딛고 나아가는
세계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곤 하는 것이다.
온통 사방이 닫혀서 어둠 속에 있던 세계가 조리개를 슬쩍 열어준 덕분에 얻은 빛을 통해 드러내는 세계가 사진이 아니던가.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작가가 슬쩍 드러내는 언어들이 바로 문학이 아니던가. 심창섭 작가의 사진과 문학이
우리에게 슬쩍 보여주는 것들을 실마리로 해서, 우리는 그가 ‘표현’하려 했던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세계의 비의가 무엇인지를
슬쩍 체험해 봄으로써 예술적 감동을 받는다.
그의 사진이, 그의 말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내면풍경을 온전하게 혹은 광대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를 새로운 감동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를, 그리하여 작가가 ‘겉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감상자의 닫힌 마음을 툭 건드려서 드넓은 세계로 이끌어내어 함께 세계의 비의를
즐기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그의 작품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가 ‘겉으로 드려내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감동받을 수 있도록 해 주기를 기대한다.
김풍기(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교수.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항상 온화한 말투와 반백의 머리가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언제나 편안해보이는 인상이지만 토론이 대치되었을때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성격도 갖고 있다. 좌중을 사로잡는 화법으로 늘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게 하는 매력의 소유자이다.
몇 차례 들어본 그의 강의는 언제나 진중하고 깊이가 있으면서도 알기쉽게 이끌어가는 독특한 화술로 박수를 이끌어 낸다.
그의 글에서는언제나 품격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한시와 벗하며 살아선가 보면 볼 수록, 마주하면 마주할 수록 진득한,
깊이 우러난 그의 샘터에서 나는 한 모금씩 물을 마시며 삶의 방향을 잡거나 삭막해지는 감성을 추스리며 갈증을 면하곤 했다.
사실 본인의 책에 서평을 써줄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특별한 사이가 아님에도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거라는 그의 인간성을 알고
있기에 받을 수 있는 글이었다.
다시한번 대단치도 않은 책자에 깊이있는 서평을 써주신 김교수에게 머리숙여 감사드리며, 그의 서평으로 인해 본인의 책이 한층
무게감을 더하고 빛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
< 김풍기 교수의 책들>
- 저서 『조선 전기 문학론 연구』 (태학사, 1996)
『옛시 읽기의 즐거움』 (아침이슬, 2002)
『한국 고전시가 교육의 역사적 지평』 (월인, 2002)
『시마, 저주받은 시인들의 벗』 (아침이슬, 2002)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김풍기 역, 해토, 2004)
『삼라만상을 열치다: 24절기에 담긴 한시의 마음』 (푸르메, 2006)
『강원 한시의 이해』 (집문당, 2006)
『동명왕 편 : 변신과 수수께끼의 신화, 주몽 이야기』 (웅진주니어, 2007)
『아내 사랑하는 놈에게 죄를 물으신다면』 (나라말, 2008)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푸르메, 2009)
『독서광 허균』 (그물펴냄, 2013)
『선가귀감 조선불교의 탄생』 (그린비, 2013)
- 역서 『누추한 내 방』 (허균, 태학사, 2003)
『소설에서 만나는 한국인의 얼굴』 (허균, 현길언, 태학사, 2003)
『고전 문학사의 라이벌』 (조현설, 고미숙, 한겨레출판사, 2006)
『소설 옥루몽』 (전5권, 남영로, 그린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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