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論 ································2
Ⅱ. 김유정의 생애와 문학관 ·············· ········3
Ⅲ.〈봄봄〉의 작품 해석 ························9
Ⅳ.〈동백꽃〉의 작품 해석 ········ ··············15
Ⅴ. 〈봄봄〉과〈동백꽃〉에 사용한 고유어 및 토속어······· ···20
Ⅵ. 〈봄봄〉과 〈 동백꽃〉에 사용한 비속어와 동물 비유········22
Ⅶ. 結論······················ ········· 25
※ 참고문헌·················· ············26
Ⅰ. 序論
한국 근대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볼 때 김유정은 큰 업적을 남긴 작가이다. 그가 거둔 文學的 성과는 당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자신의 독특한 산문 미학으로 정착시켰다는 데에 있다. 김유정이 활동한 193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는 식민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궁핍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에 속한다. 그의 소설은 이러한 시대의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즉,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생활 능력을 잃고 방황하는 무력한 사회 계층, 예컨대 농촌의 빈농이나 도시의 빈민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창작 태도 자체가 자기 시대의 모습을 관념이 아니라 실상으로 파헤치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은『원본 김유정 전집』, (강출판사, 1997)을 바탕으로, 김유정의 자라온 환경과 문학관을 먼저 살펴보고, 그의 작품 〈봄봄〉과 〈동백꽃〉의 작품을 먼저 해석한 후에 작품에 투영된 작가정신과 예술성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
Ⅱ. 김유정의 생애와 문학관
일제 식민지 치하의 시대적 상화은 뛰지도 움치지도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울분과 함께 토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특히 문인들에게는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게 하였다. 그것은 결국 한국 문학사에 두 가지 의의를 제공한다. 첫째는 이 궁핍화 현상에 대한 자각과 분노로부터 지적 좌절과 불안에 이르기까지 완숙한 식민지 체제에 대한 광범하고도 정확한 문학적 상황 의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들 문인들이 언어가 단순한 기교의 표현 매체이기보다는 현실을 지양, 극복하는 사고의 대상이란 점을 인식하면서, 언어의 추구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민족적 자각과 당대의 상황 인식이 문학이란 돌파구를 향하여 모여들 즈음에 김유정도 문단에 등단하게 되고, 궁핍에 시달리는 농민들과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에 작가적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어떤 작가든 그가 성장하고 숨쉰 환경과 무관한 자리에 놓일 수 없으며, 작가의 생애와 정신은 그의 전 작품에 걸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어진다고 볼 때, 작가의 삶과 관심의 고찰은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예비 수단으로써 의의를 가지며, 이를 통해 작가가 지향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의 방향성을 감지할 수 있는 자연적 요인들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유정은 그의 수필〈길〉〈病床의 생각〉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을 뜨기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제 길을 찾았으며 그 길이 바로 문학임을 깨닫는다. 그는 문학을 자기 생활의 한 과정으로서 아니, 자기 생의 숙명으로서 받아들이고, 운명하는 그 직전까지도 문학에 매달려 있었다. 요절로 인해 그의 소망대로 그의 문학 세계가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기 대로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여 국문학사상 그 위치를 확고히 자리 잡았다.
요즘에 나는 헤매던 그 길을 바루 들었다. 다시 말하면 前日 잃은 줄로 알고 헤매고 잇든 나는 요즘은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를 爲하여 따로히 한 길이 옆에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 길이 얼마나 멀는지 나는 그걸 모른다. 다만 한가지 내가 그 길을 完全히 겄고 날 그날까지는 나의 生命이 決코 꺽임이 없을 걸 굳게굳게 믿는 바이다.
김유정은 문학에 인생의 승부를 걸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치열한 작품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유정의 생애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삶이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유정에 관한 연보에 의하면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성군 신남면 두메 산골인 실레에서 부농의 8남매(2남 6녀) 중 일곱 번째인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靑松 沈氏는 그의 나이 만 6살에, 아버지 金春植은 만 8살에 돌아가셨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는 외롭게 자라면서 모성 결핍의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유정은 12살까지 실레에서 성장하여 그는 늘 울창한 숲과 맑은 냇물이 흐르는 자연 환경을 접하였다. 그의 고향 풍경은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모든 작품의 자연 묘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일찍 부모를 잃은 김유정은 평탄치 못한 생활을 하게 된다. 가산의 관리자요 유정의 보호자였던 형 김유근이 술과 난봉의로 재산을 축내면서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교육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암송하면서 출발하여 1919년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입학하였다. 그 후 1923년 4월 9일 徽文高普 시절에 安懷南, 林和, 朴秀鎬 등과 사귀면서 독서와 문학에 눈뜬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 때는 문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바이올린을 배우고, 야구, 아령, 축구 등 운동도 즐겼으며 주로 러시아 문학에 심취한 경향을 보였다. 이 때의 모습은〈이런 음악회〉〈봄밤〉에서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926년 4학년 때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형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가정적인 이유도 있지만 연상의 기생 朴祿珠(1906-1979)와 연애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는 祿珠에게 반해서 연정을 호소하는 편지를 띄웠으나 번번이 무시당했다. 그의 조카 김영수는 祿珠에 대한 사랑을 '모순 덩어리의 사랑'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순 덩어리의 사랑은 김유정에게 예술혼을 불러 일으켜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허구화된 박녹주의 모습이 나타나는 소설은〈두꺼비〉와〈生의 伴侶〉다. 봉익동 삼촌집으로 옮긴 김유정은 1927년 4학년에 복학하여 1929년 3월에 徽文高普 5학년을 졸업했다. 그 후 그는 연희전문에 입학하였지만 한 학기도 끝내지 못하고 중퇴하고 말았다. 1930년 삼촌의 집이 있는 봉익동에서 조카 영수와 같이 기거하며 춘천을 왕래하다가 더 있을 수 없어 삼촌의 집에서 나와 둘째 누이 유형과 같이 지내게 된다. 사직동 단칸방에서도 유정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없었다. 누이는 시집에서 소박을 맞고 돌아와 피복 공장을 다니다가 노동자를 상대로 밥장사를 하여 생계를 이어갔다. 이 가난한 시기의 생활이〈따라지〉〈연기〉〈슬픈 이야기〉〈심청〉〈생의 伴侶〉등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김유정은 스무살의 나이에 접어들자 병마의 포로가 되었다. 1929년 치질이 발병 1930년 늑막염 이내 당시의 문화병인 폐결핵의 신병을 이끌고 형수와 조카만이 가는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갔다. 열과 오한에 실달리면서 몸을 고치려고 닮과 뱀을 고아 먹는다. 그러나 禁酒는 不禁한 듯핟다. 신병 중이었으나 유정은 이 시기에 자연과 농촌과 농민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듯하다. 들병이 방탕에 빠지기도 하고 광산을 하며 허황한 꿈을 꾸기도 한다. 이 체험이〈金따는 콩밧〉〈만무방〉〈총각과 맹꽁이〉〈아내〉등의 작품의 배경이 된다. 1932년 얼마간의 휴양 끝에 그의 병이 일시 완화된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해가 32년 24살의 시점인 듯하다. 김유정의 무기력한 준비 기간이 끝나고 인간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생산적인 단계로 접어드는 이 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카 영수와 같이 야학을 하고 농민협동조합인 '농우회'를 조직한다. 이때가 유정의 유일한 인생론인 수필〈病床의 생각〉에서 실토하고 있는 사라을 깨친 시기인 듯하다. 그러나 義塾의 화재, 부친의 유산이 바닥나면서 유정의 농촌운동은 막을 내리고 金甁義塾도 이내 명맥이 끊긴다. 1933년 25살 때 유정은 서울 입성은 문단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춘천에서 완전히 이사한 형수와 조카가 사는 신당동이 창작의 산실이 된다. 이때부터 벽상에 '겸허'란 두 글자를 붙여 놓고 약값을 벌기 위해 집필하였다. 창작의 기쁨잏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해 필경이 얼마간 계속된다. 이 시기에 두메산골의 소재를 머리 또옿ㄹ리며〈소낙비〉,〈산ㅅ골나그네〉를 집필하였다. 이중〈산ㅅ골나그네〉는 그가 최초로 집필한 것으로 실레 근처 덕두원 '돌쇠어엄'에게서 들은 내용을 작품화한 것이다. 그 소설은 돌쇠네 모자가 당한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 해〈만무방〉을 집필하였으며 1935년 단편〈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고 중앙일보에〈노다지〉가 가작입선됨으로써 혜성처럼 문단에 데뷔한다. 이어 안회남의 천거로〈만무방〉〈산ㅅ골나그네〉〈金따는콩밭〉〈떡〉〈봄봄〉등이《개벽》《조선문단》《조광》등의 잡지와 조선일보 등의 신문에 발표되어 문명을 떨친다. 그즈음 김유정은 후기 '구인회'에 가입하여 그 멤버와 李箱, 李石薰, 玄德, 金文輯과 교의를 맺는다. 특히 이단적인 문인 이상과 자살을 공모하리만큼 절친하였다. 김유정이 '구인회'에 가이봔 것은 사실상 그 기능이 완수되어 해체기에 접어든 시기였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문학적 토론을 가질 수는 있었겠지만 모더니즘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구인회'와 김유정의 관계는 일정한 거리 유지하고 있었으며, '구인회' 내에서도 김유정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구인회' 문인들과 교우하는 동안 가난과 술과 문학적 낭만에 빠져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다. 이 무렵 서울 근교 약수암에서 요양 중에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번다인의〈잃어버린 보석〉을 번안하기도 하고 장편〈숱밭〉을 구상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의지와 다르게 1937년 3월 29일 오전 6시에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광주군 신상곡리 100번지 매형의 과수원에서 조카(진수)는 김유정의 시체를 서울로 운구하여 유언대로 화장하여 유골을 갈아 한강에 띄워 보냈다. 유정의 일대기는 조실부모, 형제의 곤란, 사업의 실패, 실연, 각혈, 적빈의 연속인 양난에 몰리어 세궁력진한 폐구의 도정이었다. 평생을 병과 가난과 실연으로 얼룩져 살아온 그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9편의 단편소설과 1편의 미완성 장편소설과 번역 탐정소설을 남겼다는 사실은높이 평가할 일이다. 이처럼 극단으로 특징을 나타난 김유정의 생애와 예술과는 대조적이었다. 김유정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글로는 1937. 3에《조광》지 에〈病床의 생각〉이 있다. 김유정은 "과학에서 얻은 진리를 리지권내(理知圈內)에서 감정권내로 옮기게, 그걸 대중에게 傳達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보고 근대 과학에 기초를 둔 예술론을 펼쳐보이고 있다. 여기서 김유정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근대문학'이었다는 사실과, 김유정이 문학잓품의 창작을 '제작'의 과정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작'으로서의 작품 창작의 파악은, 당대 '구인회'와 상통하는 것이었다. '구인회'를 규정할 수 있는 특징들이 많겠지만, 문학을 기호의 일종으로 디루었다는 점, 따라서 작품을 인공적인 제작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김유정도 같은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김유정이 '구인회'에 가입한 것을 우연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특히 李箱과의 친분을 단지 폐병을 같이 앓고 있었다는 점에서만 이야기하는데, 이것도 큰 이유이겠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제작물로서의 작품'이라는 공통된 문학관 역시 한 몫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를 정리하면 김유정의 생애는 경제적 빈곤과 질병 그리고 역사의 병리적 구조 속에 놓여 있었고, 그의 온갖 역경과 방황하던 체험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하층민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고 본다. 그의 문학 의식은 대중을 하나의 끈에 꿰려 하는 '사랑'과 '혈맥'이 통하는 전통지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당대 민중들의 삶에 주목하고 있으며, 곧장 그들의 생활을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생애와 문학관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活力的 語法 형성에 대한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Ⅲ.〈봄봄〉의 작품 해석
〈봄봄〉은 1935년 12월 《照光》지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김유정의 문학세계의 본질을 해학적이고 골계적(滑稽的)으로 구축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여기에서 해학(諧謔)이란 우스꽝스러움·익살·공격성을 띠지 않은 웃음·무해한 웃음·따뜻한 웃음을 의미한다. 그의 문체 또한 살아있는 강원도 사투리에 짙은 해학성을 가미한 언어적 특색을 펼쳐 보여준다. 이 소설은 1930년대 강원도 산골이라는 향토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애환을 당대의 삭막한 농촌 현실과 대비시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대개 바보스러운 점이 있거나 무식해서 사리를 파악하지 못하여 종잡을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것이 오히려 재미를 느끼게하며, 그 재미가 아름다움(美)으로 승화되고 있다.
〈봄봄〉은 마름인 장래의 장인(봉필)과 우직하고 순박한 머슴이며 장래의 사위인 '나' 사이에 혼인 문제로 드러난 해학적 갈등상을과 해결을 회화적으로 그려나간 소설이다. 〈봄봄〉은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기 보다는 다소 순환하는 양상을 보인다. '나'는 작가의 감정이 투사된 인물로서 거침없이 육담이나 속어 및 사투리를 그사한다. 이를 언어의 위상적 계층으로 보면 분명히 하층 계급들의 생활현장의 구어적인 언어다. ―중략― 골계적 부정과 서민적 쾌감이 후덥지근한 땀냄새처럼 배어 있는 非美的인 언어다. 전통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연유되어다기 보다는 촌놈의 체질적인 어법이다. 구어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지문이고 대화고 분간할 것없이 욕설과 야비한 낱말들이 거침없이 노출되면서도 어떤 스취심의 가면은 적나라하게 벗겨져 있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차려서, "제-미 키두"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밷는다.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크는지 "이 자식아, 일하다 말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고 개떡이냐 하면……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이런 상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서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라왔다.
위에서 열거한 언어는 구어적인 속어 감각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장인을 '제가'라고 표현한다거나 사람을 개, 돼지, 참새에 비유한 것은 매우 희극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점순이를 '개떡'이나 '감참외'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매우 서민적인 작가의 의식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a) 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정하고 일을 했어야 할 것이다. 덮어 놓고 딸이 자라는데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b)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서,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 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a)에서 나는 분명히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속임수를 인식하고서 b)에서처럼 서낭당에 점순이의 키가 자라게 해 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a), b)는 내용 전개로 보아 아이러니 한 것이다. 그러나 b)에서 "장인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는 장인을 이해하는 착한 바보이다. '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속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속박한 바보"인 것이다. 즉 '나'는 생각과 행동 말에 있어서 다른 인물들과 다르다 그래서 '나' 자신의 언행이나 행동이 웃음거리가 된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바보스러움을 이용해 장인은 계속해서 '나'를 속이며, '나'는 계속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c) "너 이 자식, 왜 또 그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 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병철병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 참 내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아, 일하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d) "애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되면 너 장가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품들이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c)에서처럼 그가 저항하면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다가도 장인은 또다시 혼례를 담보로 달랜다. d)에서 보이듯이 혼례시켜 주겠다는 약속은 '나'를 속일 수 있는 즉효약인 것이다. 이때, '나'와 장인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잠정적인 화해를 유지한다. 그러나, 장인은 '나'보다 우위에 서서 계속 속이려고 하는 계약 파기자인 것이다. '나'가 보는 점순이는 늘 감참외 같은 것이다. '나'는 장인에게 약속을 지키고자 하지만 점순이의 키는 나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아냐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고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큼 그저 톱톱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 아랫니까 올해 열 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톡한 것이 내 눈에는 하릴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점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이렇게 감참외 같은 점순이가 어느 순간 성숙한 말을 하게 된다. 즉 점순이가. 적대자인 장인과의 갈등 상태를 해결토록 도와주는 원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점순의 말로 일종의 가능성을 느끼며 자신의 욕망 추구를 위해 비약적으로 발전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점순과 나의 욕망이 일치하는 대목을 보면,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떻게?"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떻게." 하고 되알지게 쏘아부치고 얼굴이 발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을 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셈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갗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 내에 부쩍(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빙장님과 함께 구장댁에 가지만 남의 농사를 망치면 징역간다는 말에 아무 해결도 없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뭉태에게서 장인집의 데릴사위의 내력을 들으면서도 그는 뭉태의 말을 전부 다 곧이 듣지는 않는다. 장인에 대해서 속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모든 해결책이 점순이의 키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또다시 점순의 말을 듣는다.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하고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 된다는 걸 그럼 어떡 헌담!" 하니까,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뒤틀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에미 잃은 황새 새끼처럼 가여웁게,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큼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안만 못생겼다 해도 괜찮지만 내 아니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그는 이러한 점순의 대화를 통해 장인이 혼자 나쁘다고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점순이도 미워하는 장인님을 때려도 좋다고 생각하고서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려들며, "에구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하고 내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껶여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 들어 한 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 사뭇 내려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고도 않고 암만 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 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그러나 지금까지는 원군이라고 여겼던 점순은 적대자가 되어버린다. 그가 생각하는 갈등의 해결 방식은 장인을 실신 상태로 몰아가는 극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갑자기 변한 점순의 태도에 놀란 '나' 역시 장인과 마찬가지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나'는 다시 '장인'에게 착취를 당하는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 '구태여 피하려하지도 않고' 매를 맞는다.
이 소설은 주인공 '나'의 어리석음과 장인의 간교함을 대비시켜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또한 이 사건에 등장하는 소작인 이장이나 '나'의 친구인 뭉태 등은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체 함으로써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데릴사위라는 봉건적 사회의 모순된 제도를 상황으로 한 희극의 주인공 '나'가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믿고 충실해 보지만 결과는 착각과 희극적 장면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흔인을 미끼로 하여 '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마름의 횡포 등을 통해서 당시의 농촌 현실에 나타나는 구조적 모순이 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Ⅳ.〈동백꽃〉의 작품 해석
동백꽃은 1936년 5월 《照光》지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농촌소설'이라는 표제로 신분이나 계층(마름―소작인)을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사춘기의 두 남녀가 사랑에 누뜨는 과정을 김유정 특유의 抒情性과 諧謔性으로 밀도 짙게 묘사하고 있다. 그 자신이 자란 가원도 산골의 토속적인 농촌의 체취에 젖어 있었다. 이 작품은 두 남녀의 코미디를 자연의 아름다움에 조화시켜 사건 뒤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노란 동백꽃으로 나타난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동백꽃이 아니며, 생각나무의 강원도 방언인 '동박꽃'(개동백)이라고도 한다.
나흘 전 감자 조각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예!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 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척만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왠일인가. 황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고,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는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았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다 보더니 행주치마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뽐아서 나의 턱밑으로 뿔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가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집엔 이거 없지?" 하고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나 소리가, "너 봄감자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네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고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린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여기서는 상황적인 아이러니를 였볼 수 있다. 점순이의 관심의 표시를 나는 '쌩이질', '긴치않은 수작'으로 표현할 정도로 미숙하다. 여기에서 이들의 갈등은 시작되는 것이다. 점순이는 '예! 너 혼자만 일하니?'로 둘만 있음을 확인하려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는 삐딱하게 '그럼 혼자하지 떼루 하듸?'라고 일침을 놓는다. 그래도 점순이의 호의적인 관심은 변하지 않고 '나의 턱밑으로 불쑥' 감자를 내놓는다. 그대의 점순의 감정은 뿌듯함이다. 그러나 나는 '그 감자를 도로 어께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이대부터 이들 사이는 의사소통이 차단되는 것이다. 이것은 점순이의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거칠어' 가는 것을 통해 짐작해 간다. 이 둘 사이의 갈등 심화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숙맥다운 행동에 있다. 점순의 호의를 알지 못하는 '나'는 바보인 것이다. '나'는 점순의 은밀하게 보낸 사랑의 메시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점순이는 방법을 달리하여 '나'를 괴롭혀서 관심을 드러낸다. 그것의 매개물은 '닭'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닭'의 크기와 힘 역시 인물들의 성숙정도와 적극성의 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닭'의 크기가 계급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열 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다니면 동리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준 것도 도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나'는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 한다. 이대 일이란 연애나 사랑 같은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가 미숙하다는 것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는 점순이의 관심을 여전히 일부러 외면하거나 나쁘게 묘사한다. 다라서 그들의 갈등은 더욱 심회되어 간다. 결국은 성적인 욕설까지로 이어진다.
"이 바보녀석아!" "얘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려만, "얘! 너 느 아버지 고자라지?" "뭐 울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돌리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중략〉 두 눈에는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분이 아니다.
점순이는 자신의 관심 표명이 더 이상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성적인 욕까지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보려 한다. '배냇병신', '고자'라는 단어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분하고 억울하여 '나'는 '눈물'까지 흐른다. 그러나 점순의 이런 성적인 표현으로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시키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는 "정신적 해방을 언어적 유머의 가장 효과적인 표현은 성적인 농담에 있다."라는 T.G.A. 넬선(Nelson)의 말처럼 사건은 급진전 된다. 이러한 자존심의 상처로 인하여, '나'는 속이기의 술책을 벌이게 된다. 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는 것으로 힘을 배양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가 점점 성인 되어가는 통과의례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늘 '산기슭'에서 점순의 닭을 죽인으로써 완전한 성인이 된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 닭을 단대로 때려 엎었다. 닭은 폭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바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 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서다가, "뭐 이자식이! 누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떠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예날 같으면,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하던 '나'는 '그럼 어때?하고 맞선다. 즉 점순의 닭을 죽인으로써 마침내 그는 점순이에게 당당하게 맞대응한다. 그들의 갈등이 화해되는 방식은 합리성을 띠지 않는다. 주인공 '나'는 닭을 죽이는 대다맘을 보이므로써 다르게 전개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점순이가 대담하게 동백꽃 속으로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장면에서도 피동적으로 이끌려가는 바보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럼 너 이담부터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 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그런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도 그래 봐라. 내 자꾸 못 살게 굴테니." "그래 이젠 안 그럴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둥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뭍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득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 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기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연정을 몰라준 것에 '화가난' 점순의 요구는 '이담부터 안 그럴테냐?'이다. 그에 대한 '나'의 반응 역시 '그래' 정도로 정말 너무 싱겁다. 그러나 그 유아적인 대화 이후 그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매우 성숙하게 나타내어 놀라운 것이다. 그들은 '뭣에 ……뭣에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아찔하였다. 와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동백꽃〉은 애정이 원색미를 보여주는 결말의 화해적 장면과 그 배경을 이루는 동백꽃이 표상하는 짙은 자연 감각의 조화를 보이는 작품이다. Ⅴ. 〈봄봄〉과〈동백꽃〉에 사용한 고유어 및 토속어
토속어란 말 뜻 그대로 지역 방언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여서 방언과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나 김유정의 경우 그의 작품에 사용하고 있는 있는 방언은 지역적인 것들만이 아니기 때문에 방언과 토속어를 구분 없이 함께 써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비속어와 함께 토속어가 많이 쓰이고 있음은 사실이다. 향토성은 다르게 말하면 지방색(local color)과 동의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다. 동의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다. 어떤 지장의 특색이 되는 배경, 방언, 관습, 의복, 사고방식과 감정 등을 소설 속에 상세히 표현하는 것을 향토성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때 한 작가의 소설이 이러한 논리적 근거에 부합하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적 범위의 문제로 본다면 1920-30년대에 쓰여진 농민소설의 대부분을 향토문학의 범주로 한정하는 논의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문학속의 지역주의 문학에 들 만한 작품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점도 점검되어야 할 일이다. 한국에 있어 1930년대는 외형상으로는 근대도시의 풍모가 갖추어진 때이고 이러한 바탕에서 박태원, 이상, 이효석 등의 작가들이 일련의 도시 소설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꼬바기, 붙배기, 거불지는, 뻣디디고, 툽툽하게, 찌다우, 짜장, 내려조겼다, 깨박, 멀쑤룩해, 넝알 〈봄봄〉
대강이, 실팍하게, 덩어리. 얼병이, 울섶, 암팡스리, 물찌동, 멈씰하며, 쟁그러워, 쌩이질, 등어리, 호드기. 당최 〈동백꽃〉
이상은 김유정의 소설에서 토속어가 쓰인 예를 무작위로 뽐아본 것이다. 위의 예만 보더라도 그의 작품 속에 토속어가 풍부하게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곧 김유정 문학의 한 외형적 상징이 되어 그의 작품 분위기를 형성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인용한 어휘는 토속적인 방언, 와전된 것 그리고 유정의 조어도 상당수 있다. 김유정이 사용한 어휘는 전통적으로 쓰여지는 어휘로 국어사전에서는 찾아낼 수 있는 어휘라기 보다는 자신이 만든 개인어나 조어로 그것이 한자어가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점과, 재래의 한국인의 독특한 발상과 언어 감각에 맞는 어휘들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에게는 더욱 친밀감이 가고 이런 점에서 김문집은 김유정의 어휘를 놓고 "조선 언어의 전통미를 살렸다"라고 했다. 김유정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이거나 유랑민, 들병이들이다. 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민들인데 가장 원시적인 육담의 대화를 한다. 욕설과 비판적 비유, 그리고 흙내가 물씬 풍기는 매우 다양하면서도 토속적인 어휘 구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김유정의 소설 속의 지문과 인물의 대화에 두루 토속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향토성의 문제로 제한될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문학어로 개발해 갔다는 측면으로 논의되는 것이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또한 중부 지방의 방언은 당대 사회의 뒤틀린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며 농촌이라는 주요 소설 공간의 선택은 1930년대 한국의 한 상징적 배경으로 파악함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Ⅵ. 〈봄봄〉과〈동백꽃〉에 사용한 비속어와 동물 비유
김유정 소설에 빈번히 등장하는 비속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 방언과 표준어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방언은 단어와 어휘, 낱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언 사용건 언중들에 의해 사용되는 방언에 적합한 문장구조까지를 포함한다. 한 사회 안에서 그 사회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편의상 표준어와 방언으로 나눌 때, 방언은 한 사회의 무의식적 층위를 담당하는 언어이다. 김유정의 작품에서 사용된 비속어는 소설적 리얼리티의 형성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김유정의 작품에 나타난 비속어의 실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에미 키두 ·뼉다귀가 옴츠라드나 보다 ·이 대가릴 까놀 자식 ·대리를 꺽어들라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캥기지 않았다 〈봄봄〉
·망할 계집애 같으니 ·고놈의 계집애가,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 거리는지 ·이 바보 병신아, 얘 너 배냇병신이지?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동백꽃〉
위의 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유정의 소설에는 그 무렵에 활약한 어느 작가보다도 비속어가 많이 나온다 인용된 비속어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직설적으로 쏟아 내는 욕설과 거친 표현은 등장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비속적인 문장은 작가가 작품의 인물을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의도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주제와 문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의도한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 속에서 비속어는 바로 그들 서민들의 일상언어이기 때문에 생활의 애환에 시달리는 욕설이 상투어가 될 수밖에 없고 속시원한 욕설은 그들의 위안이며 당연한 리얼리티이고 카다르시스였다. 이처럼 김유정은 비속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향토적이고 현실적인 서민들의 삶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사용하였다.
Ⅶ. 결론
지금까지 1930년대의 한국 문학사와 김유정의 작품세계를 고찰하였다. 한국 근대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볼 때 김유정은 큰 업적을 남긴 작가였다. 그가 활동하던 1930년대는 문학의 이념성을 중시했던 계급문학이 퇴조하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문학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한국 근대 문학이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 가기 시작한 시기이다. 김유정은 2년에 불과한 문단 활동을 통해서 30여편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전기적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김유정의 생애는 유년기의 일부를 제외하면 경제적 빈곤과 질병, 그리고 역사의 병리적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방황과 체험은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현실 인식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봄봄〉은 김유정의 문학세계의 본질을 해학적이고 골계적(滑稽的)으로 구축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그의 문체 또한 살아있는 강원도 사투리에 짙은 해학성을 가미한 언어적 특색을 펼쳐 보여준다. 이 소설은 1930년대 강원도 산골이라는 향토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애환을 당대의 삭막한 농촌 현실과 대비시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대개 바보스러운 점은 오히려 재미를 느끼게 하며, 그 재미가 아름다움(美)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동백꽃〉은 '농촌소설'이라는 표제로 신분이나 계층(마름―소작인)을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사춘기의 두 남녀가 사랑에 누뜨는 과정을 김유정 특유의 抒情性과 諧謔性으로 밀도 짙게 묘사되고 있다. 그 자신이 자란 강원도 산골의 토속적인 농촌의 체취에 젖어 있었다. 이 작품은 애정이 원색미를 보여주는 결말의 화해적 장면과 그 배경을 이루는 동백꽃이 표상하는 짙은 자연 감각의 조화를 보이는 수작이라고 본다. 김유정이 활동한 193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는 식민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궁핍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에 속한다. 그의 소설은 이러한 시대의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즉,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생활 능력을 잃고 방황하는 무력한 사회 계층, 예컨대 농촌의 빈농이나 도시의 빈민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창작 태도 자체가 자기 시대의 모습을 관념이 아니라 실상으로 파헤치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식민지 치하의 시대적 상화은 뛰지도 움치지도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울분과 함께 토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특히 문인들에게는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게 하였다. 그것은 결국 한국 문학사에 두 가지 의의를 제공한다. 첫째는 이 궁핍화 현상에 대한 자각과 분노로부터 지적 좌절과 불안에 이르기까지 완숙한 식민지 체제에 대한 광범하고도 정확한 문학적 상황 의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들 문인들이 언어가 단순한 기교의 표현 매체이기보다는 현실을 지양, 극복하는 사고의 대상이란 점을 인식하면서, 언어의 추구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민족적 자각과 당대의 상황 인식이 문학이란 돌파구를 향하여 모여들 즈음에 김유정도 문단에 등단하게 되고, 궁핍에 시달리는 농민들과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에 작가적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요절로 인해 그의 소망대로 그의 문학 세계가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기 대로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여 국문학사상 그 위치를 확고히 자리 잡았다. 김유정은 당대 빈민의 문제와 같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상주의적 관념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향토색 짙은 언어와 고유어 그리고 판소리적 해학과 풍자를 통해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특유의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 김유정의 문학적 업적은 당대의 문제를 저 18세기 후반부터 발흥하기 시작한 평민문학의 전통성과 훌륭히 접목시킴으로써 사실주의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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