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춘천이야기- 조금씩 지워져 가는 그 때의 풍경

심봉사(심창섭) 2015. 12. 4. 13:04

 

 

춘천이야기

조금씩 지워져 가는 그 때의 풍경

 

樂涯

 

* 기억이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의 복원만이 아니다.

텅 빈 운동장에서 주어든 키 작은 몽당연필 하나로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형상이었다. 크기도, 질량도, 외형마저도 희미한 대상 앞에서 그저 막막함으로 다가오는 안개 속 같은 것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던 물건을 내 왼쪽 귀에서 꺼내들던 어느 마술가의 손길처럼 그곳에 서면 모든 기억이 그렇게 나타나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다. 생전 처음 본 듯한 모습으로 낯설게 변해버린 그곳에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는 없었다. 빈 모자에서 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비둘기를 꺼내들던 그 마술가의 재주가 내게는 없었다. 예전 검푸르게 변해버린 놋그릇을 나뭇재로 문질러 반짝거리는 유기그릇을 만들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오른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면 옛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희미한 과거의 자취를 더듬는다. 언제 그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던 것일까.

 

지난 시간의 생채기가 희미해 보잘것없고 부정확한 기억의 파편들만 부숙히 쌓인다. 시작은 원고지가 넘쳤지만 결과는 모두 파지가 되며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과거의 시간에 깊숙이 간여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기우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 내게 필요한 과거의 시간 속에서는 나는 언제나 객석에 앉아 있었음을 떠올린다. 출발점과 결승점은 생생하기만 한데 중간부분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까닭이었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궁여지책으로 여기저기 지인들을 찾는다. 귀동냥을 통해 지난시절의 실마리를 끌어낸다. 어느 사이에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전설의 카테고리 속에 갇혀 있었다.

허무하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커피 물을 올린다. 창밖 잿빛하늘이 무겁더니 어느새 비를 뿌린다.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면 향긋한 커피 향을 따라 옛 서정의 여행길을 떠나본다.

 

먼저 커피 맛도 모르고 콧방구리처럼 느나들던 다방을 떠올렸다. 한때 다방은 이십대의 청춘들이 갈 곳을 못 찾아 부나방처럼 찾아들던 피난처였다. 술집이나 당구장이 아니면 어디 특별히 갈만한 장소가 없었다. 시간은 남아돌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 값과 맛 먹는 커피값에 투덜거리면서도 습관처럼 발길을 향하곤 했다. 설탕 2스푼에 프림 2스푼을 넣고도 설탕을 1스푼 추가하던 그때의 쓴 커피는 어른의 길로 접어드는 통과의례의 과정이기도 했다. 여기저기 정말 우후죽순처럼 다방이 생겨났다. 사업가들의 연락처이자 사무실이기도 했고, 백수들의 시간 죽이기 장소였으며, 데이트장소이자 맞선의 장소이기도 했다. 예술인들의 대화마당이기도 했으며, 오아시스였고, 음악이 있는 안락한 장소였다.

 

언제나 담배연기 자욱하고 고만고만한 인테리어로 꾸며졌던 다방들이 다실로, 커피숍과 카페라는 이름으로 고급의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도시의 변두리나 작은 도시에 감초처럼 자리하고 있는 다방이라는 간판을 보면 반갑고 정겹게 다가온다.

 

언제나 한복을 곱게 입은 얼굴마담이 카운터를 지키고, 립스틱을 짙게 바른 레지(여종업원)가 바짝 다가앉아 콧소리로 사장님을 연발하며 커피를 사달라던 졸라대던 그때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동석한 레지와 마담까지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띠운 쌍화차를 시켜주며 호기를 부렸던 사장족들. 소위 노털다방 탁자 재떨이에는 언제나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와 팔각 유엔성냥이 놓여 있었다. 그 성냥개비는 담배를 피우기 위한 부싯돌만의 역할이 아니었다. 성냥개비 쌓기와 퍼즐게임으로 시간을 죽이기 위한 어른들의 유일한 장난감이기도 했다.

 

다방은 차만 파는 곳이 아니었다. 당시 애연가들이 선호하던 황금빛 귀물 청자담배를 단골손님에게만 특별히 판매하며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홍수환의 복싱, 박치기 왕 김일의 레슬링, 아폴로호의 달 착륙 실황중계 등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는 탁자를 치우고 공연장처럼 의자만 배치하여 TV를 함께 시청하며 환호하던 문화공간이자 추억의 공간이었다.

 

아침이면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워주던 모닝커피와 싸구려 도라지 위스키로 만든 위티를 마시며 폼을 잡아야 멋있게 보이던 그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다방은 이제 대기업들이 슬며시 끼어들어 쾌적한 분위기와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운영방식에 저만치 밀려나 향수가 있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그만그만한 맛이던 커피는 변신을 하며 고급화가 되고 제마다의 맛을 자랑하지만 그래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직도 설탕과 프림을 범벅이 되도록 휘젓는 다방커피가 문득 떠오르는 시간이다.

춘천의 옛 다방들을 하나둘씩 떠올려본다. 시장이나 터미널 주변에는 당연히 여러 개의 다방들이 경쟁을 하며 있었지만 사실 춘천에서 유명다방은 주로 요선동과 명동에 운집해 있었다.

 

이제는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 가물거리지만

청탑〉 〈초원〉 〈예맥〉 〈미미〉 〈정다방 〉 〈보리수〉 〈설파〉 〈마로니에〉 〈전원〉 〈춘천커피〉 〈훈목〉 〈아그레망〉 〈이티오피아〉 〈에메랄드〉 〈휘양세〉 〈락킹하우스〉 〈레인보우〉 〈황제〉 〈바라〉 〈전람회〉 〈돌체〉 〈마로니에〉 〈우산〉 〈영타임〉 〈오계절〉 〈랑데뷰〉 〈엘리자베스〉 〈준다방〉 〈하이센스〉 〈비탈에선 카페〉 〈포토피아〉 〈몽마르뜨〉 〈비탈에선 카페〉 〈오페라〉 〈올훼의 땅〉 〈시나위〉 〈외교〉 〈본전〉 〈베네치아〉 〈아름다운 사람〉 〈〉 〈갈채〉 〈심지〉 〈송죽등등 내 기억속의 다방이름만 해도 끝이 없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얼굴마담이 카운터를 지키는 소위 노털(?)다방과 달리 음악다방 얼굴마담은 DJ이었다. 70~80년대 넉살좋은 입담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던 음악다방과 고전음악을 틀어주는 클래식 다방은 젊은이들의 차지였다. 벽면을 가득채운 LP판과 두 개의 턴테이블을 돌아가며 신청곡을 틀어주던 뮤직 박스 속의 DJ, 달콤한 목소리와 해박한 음악상식으로 그 시절 젊은이들은 누구나 한번쯤 DJ를 꿈꾸기도 했었다. 신청메모지를 통래 음악감상은 물론 동행한 애인에게 사랑고백을 간접적으로 하기도 했다. 또 가끔은 음악소리가 줄어들면서 ‘000씨 전화와 있습니다.’ 라는 DJ멘트가 날리면 음악실 옆에 놓였던 전화로 달려가던 모습들도 벌써 먼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또 구구절절한 사연들로 빼곡히 꽂혀있던 메모판하며, 이곳에서 뭉그적거리다 옆 좌석의 처자들에게 메모지를 통해 헌팅(한건)을 하던 연애사냥터이기도 했다.

 

그 많던 김양과 이양은 어디로 갔으며, 입담 좋던 DJ들은 모두 어디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바래가는 흑백사진처럼 희미해지는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시간이다. *(2015 ‘춘천의 기억 2’ 책자 수록분-문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