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涯 심창섭
* 추석을 이틀 앞두고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았다. 정말 오래전에 경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져야 했던 친구였다. 어렵사리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며 잊힌 사람이 되어 있을까 불안했는지 격앙激昂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 숨차게 몇몇 친구들과 고향 땅에 대한 안부를 물었고 보고 싶다는 말끝에 진득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30분 이상 절절한 그리움이 전화선을 타고 이어졌다.
타향에서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것은 연어의 귀소본능과 다를 것이 없으리라.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도 했다. 말 못하는 동물도 죽을 때 살던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데 인간에게 고향은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그리움의 원천이기 때문이리라.
드넓은 바다에서 주유周遊하며 성장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은 귀향이란 이름으로 돌아올 구실을 만든다. 돌아올 수 없는 타지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마저 육신은 고사姑捨하고 마음만이라도 고향의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곳에 부모형제나 친지, 친구들도 모두 떠나 반겨줄 눈동자 하나 없어도 돌아가고 싶은 고향은 그런 곳이 아닌가. 고향의 흙 냄새, 물 냄새, 그리고 어머니의 품속 같은 포근한 산천과 여기저기 묻어둔 한 시절의 사무치는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에게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이 떠나간 임과 두고 온 고향이라는 말도 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곳에 살아도 자기고향의 산천만 못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들의 고향예찬은 구구절절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타향살이의 고통이 있는 사람만이 고향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친구에게 고향은 일곱 가지 무지개 색으로 윤색潤色되고 보호되고 있었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마음이 다가가는 곳이기에 그에게 고향은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처럼 꿈에도 잊히지 않는 그런 곳이었으리라.
스스로 고향을 떠나면 출향出鄕이고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라 했다. 또 고향에 돌아온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면 귀향歸鄕이라 했고 어쩔 수 없이 돌아오면 낙향落鄕이라고 하였다. 또 출향한 곳에서 터 잡고 살면 제2의 고향이라 지칭하며 타관의 삶을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타향살이 사람들에게 향수병鄕愁病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부끄럽지 않은 그런 병이기도 하다.
부모를 통해 태어난 것은 생물학적 탄생이며, 태어난 장소는 지리학적 탄생지라 한다. 그러한 이유로 상황에 따라 고향에 대한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고향이 아닌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살거나 머무는 경우는 타향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외국으로 떠난 사람들은 타국살이라 표현한다. 그들에게 고향은 넓은 의미로 고국故國이 되고 조국祖國이 되어 어머니의 나라[母國]라고 하기도 한다. 결국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조상과 이별하는 아픔이자 정든 것들을 뒤로하지만 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그림자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생각지도 않은 친구전화는 새삼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 역시 잠시 떠났던 방랑지에서 향수병을 얻어 밤잠을 설치다 돌아온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여 돌아오겠다던 스스로의 약속도 저버린 채 조용히 돌아온 고향 땅. 정말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지만 한동안은 정말 행복에 겨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렇다면 이제 고향에서 붙박이로 눌러 살고 있는 내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녀석의 말대로라면 나는 행복에 겨운, 축복받는 최상의 삶이어야 했다. 하지만 친구야, 3개의 댐으로 지도가 바뀔 정도로 변해버린 내 고향 춘천은 배를 타고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을 찾아 추억하는 이상한 실향민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들은 아직도 춘천에 살고 있지만 사라져버린 고향을 그리며 원하지 않는 뱃놀이를 하기도 한단다. 그들이 진짜 실향민이 아닐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고향을 가진 네가 더 행복한 게 아닐까. 뚱딴지 같은 소리 같겠지만 사실 나는 요즘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는 이상한 향수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단다. 고향을 떠나 있거나 물속에 잠긴 것도 아닌데 왜 이리도 마음이 헛헛해지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키를 늘리고 마음을 넓히며 키 자람을 하던 추억의 장소도, 자연환경도 변해버렸지, 친·인척은 물론이고 부랄 친구, 선·후배와 정겨운 이웃들도 예전처럼 만날 수 없는 고향의 의미는 별것도 아니란다. 고향에 산다는 건 분명 행복의 요소이지만 고향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니잖니, 잃고 나서야 그 가치와 소중함이 다가오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이제 현대인에게 고향이란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박제된 구시대적 유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나가 채워지면 또 하나의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인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아닐까. 우리가 함께 뛰어 놀던 골목길과 한여름 내내 텀벙거리던 그 강변의 모래사장은 이미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떠날 수 있었던 네가 부럽기도 했다는 걸 오늘 고백하마. 너를 그리도 못 견디게 하는 향수란 존재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그 어느 것 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와 나의 향수병이 극명하게 구분되더라도 그리워할 대상이 있기에, 바라볼 곳이 있기에 오늘도 희망을 갖고 사는 게 아닐까.
‘마음을 둘 수 있는 곳이 고향이지’라는 말이 네게 위안이 될까 모르겠다. 그리워 할 곳,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이미 행복을 저금했다는 역설이기도 하지. 명절이면 줄을 잇는 귀성차량 행렬을 보면서 잠시나마 스스로를 위로한다. 궤변이기는 하나 조건만 되면 불쑥 찾아올 고향을 있는 너에 비해 오히려 나는 영원한 고향의 행려자로 떠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소리 없이 가을이 다가와 하늘이 높다랗게 떠 있다. 지금쯤이면 큰 눈을 꿈벅이며 들녘에서 풀을 뜯는 황소의 울음소리가 정겹겠지. 올해는 유난히 큰달이 떠오른다는데 타향에서 터 잡고 사는 친구들에게 고향의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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