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전설

전설 : ▮ 천자가 된 머슴 ▮

심봉사(심창섭) 2016. 1. 4. 11:24

 

 

천자가 된 머슴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와 물노리에는 머슴이 중국의 왕으로 오른 전설 같은 한천자전설 하나가 전해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옛날 아주 먼 옛날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 마을에 총각이 누이, 아버지와 함께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늙어 돌아가셨지만 가진 것이 변변치 않은 총각머슴은 산소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산기슭에 임시로 아버지의 시신을 묻어 놓았다.

 

어느 날 저녁 스님이 제자(상좌)를 데리고 머슴이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와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주인은 빈 방이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이미 날이 저물고 스님이 하도 간청을 하자 머슴총각과 한방을 쓰도록 했다. 쇠여물을 끓이고 있던 머슴총각에게 스님이 달걀 세 개만 달라고 부탁을 했다. 총각은 이왕이면 드시기 좋게 하려고 달걀을 쇠여물 끓이는 가마에 삶아서 스님에게 드렸다. 달걀을 받은 스님이 먹지는 않고 바랑에 넣고는 상좌와 함께 잠자리에 누어 버리는 게 아닌가. 머슴총각은 의아했다.

'어째 먹지 않을 달걀을 왜 달라고 하였을까? 또 달걀 세 개는 무엇에 쓰려는 것일까?'

스님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그들의 거동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스님이 일어나 상좌를 깨우더니 바랑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머슴총각은 그들의 뒤를 몰래 따라가 보기로 했다. 스님과 상좌는 어둠을 헤치고 마을을 벗어나 개울을 건너 물노리勿老里 마을을 지나 가리산加里山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중턱에 이르러 지형을 유심히 살피던 스님이 달걀 한 개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땅에 묻는 게 아닌가, 무언가 비밀스러움을 감지한 머슴총각은 좀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 이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더니 다시 지형을 살펴보고는 달걀을 또 하나 묻고, 또 하나는 조금 더 아래에 묻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이어서 스님이 나무 밑에 앉아 상좌에게 말하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왔다.

 

"맨 윗자리가 천자지지天子之地 즉 왕의 자리이고 그 다음은 왕후지지王侯之地이지, 또 세 번째 자리는 정승판서지지政丞判書之地 자리란다. 계명축시鷄鳴丑時라 했으니 조금 있으면 닭이 울거야."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닭은 울지 않았다. 스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상하다. 왜 닭이 울지 않을까?"

머슴총각은 자신이 달걀을 삶아서 드린 것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첫 번째 달걀을 묻은 자리에서 홰를 치는 소리와 함께 닭 울음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스님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틀림없어! 이곳이 바로 천자지지야! 그러나 여기에 묘를 쓰려면 금관金冠을 써야만 하지. 그 뿐만 아니라 황소 백 마리를 잡아야 하고 또 하관할 때 투구를 쓴 사람이 곡을 해야만 한단다!"

머슴은 퉁탕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살며시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다시 자는 척하며 스님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돌아오지를 않았다.

 

스님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머슴총각은 해가 뜨자 누이에게 지난밤의 이야기를 나누며 어찌하면 스님이 말한 대로 장례를 치룰 수 방법이 있겠냐며 묘책을 짜보자고 했다. 온갖 궁리 끝에 누이의 의견을 따라 노란 귀리 짚으로 금관처럼 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황금색 귀리 모자를 쓰고 가매장했던 아버지의 시신을 꺼내어 가리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닭이 홰를 치며 울던 바로 그 자리에 시신을 안치하고 투구모양의 솥뚜껑을 쓴 채 곡을 하였다. 또 봉분을 만들고 나서는 무덤 옆에서 옷을 벗어 황소 같은 놈들이라고 지칭하던 굵직굵직한 이를 백 마리 잡아 장례를 마쳤다.

 

그러나 특별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난함을 벗어나고자 머슴살이를 접고 집을 떠난 머슴총각이 중국의 어느 도시에 이르자 한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짚으로 만든 북을 종각에 매달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천자를 뽑는 자리였다. 중국의 임금인 천자가 후계자 없이 죽어 새로운 왕을 뽑아야 하는데 이 짚 북을 쳐서 소리가 나게 하는 사람이 천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모두가 한 사람씩 나가서 짚 북을 쳤지만 소리는 전혀 나지를 않았다.

 

머슴총각이 용기를 내어 짚 북을 치자 커다란 북소리가 온 장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천지가 컴컴해지면서 뇌성벽력이 하늘과 땅을 흔들었다. 동시에 가리산 무덤 속에 있던 머슴총각의 아버지 시신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렇게 스님의 예언대로 천자지지에 아버지 묘를 쓴 머슴총각은 중국의 천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한 천자라고 불렀다. 그의 성이 한 씨 이기에 한천자라 하기도 하고 한터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한 천자 아버지의 무덤은 지금도 물로리에서 가리산 오르는 길목에 허름한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다. 무덤주변의 산줄기는 지금도 중턱이 허물어진 형상인데 이는 한 천자 아버지의 시신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면서 산을 치고 나갈 때 허물어 진 것이라 한다. 그리고 무덤 근처에는 지금도 비가 많이 오면 붉은 물이 흐르는 데 그것은 그가 장례를 치룰 때 황소 같이 굵직한 이를 백 마리나 잡아 그 피가 아직도 거기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설속의 이 묘소는 아무리 보아도 중국 천자의 아버지의 묘로서는 너무 초라하다.

 

옛날에 중국 황실에서 천자의 조상 묘가 조선의 가리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정비하고자 우리나라 조정에 사신을 보내어 길 안내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중국 황실사람들을 접대하려면 여러 가지로 번거롭고 또 나라의 많은 재정을 축내야 했기에 중국 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그 묘소를 가려면 강원도 춘천으로 가서 십년 강을 건너고 삼천리 고개를 넘어 다시 구만리 고개와 돌 고개를 넘어야 하는 오지에 있어 접근하기가 매우 힘든 곳이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중국 황실에서는 그렇게 멀고 험난한 곳이라면 어찌할 수 없다며 묘역 정비를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직도 훌륭한 아들을 점지해 달라며 소원을 비는 아낙네들이 묘소를 가꾸고, 가리산을 오르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나치며 한 천자 의 전설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