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춘천의 기념물 ② 춘천 국사봉 망제탑

심봉사(심창섭) 2017. 2. 3. 05:53

해발 203

춘천의 기념물 ② 국사봉 망제탑

                     

                                  그날의 울음이 들리는가

- 도심 숲에서 만난 조선말 비운의 역사-

     

* 뒤숭숭한 시국 탓이었을까?

문득 떠오른 곳이 있어 간단한 채비를 갖추고 춘천의 남쪽 퇴계동에 위치한 국사봉을 찾았다. 얼마 전만 해도 호젓한 도심 속의 등산로이자 공원이었는데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공사로 지형과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어쩌랴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니 주변의 야트막한 동산들이 그렇게 하나둘씩 몸을 허물고 있었다.  

못 본체 소나무, 잣나무가 도열한 숲길을 따라 오른다. 마지막 급경사 중간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20여 분만에 국사봉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203. 3m의 작은 봉우리지만 이곳은 춘천선비들의 기상氣像이 서린 유서 깊은 곳이다. 정상의 약 100㎡ 공간 한가운데 높이 3.9m의 그리 크지 않은 조형물이 하나 서있다.

 

 사각의 경계를 두르고 그 중심에 무궁화를 돋을새김한 사각의 화강석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다시 3개의 화강석으로 단을 쌓아 탑을 만들고 상단에 꽃봉오리 모양의 돌을 올려놓았다. 탑의 전면 오석판석에 '國士峰望祭塔(국사봉 망제탑)'이라고 한자로 크게 음각하고 우측면에는 열여섯 분이 지은 한시가, 좌측면에 이 탑을 세운 내력[記文]을 새겨 놓았다.

 이 탑의 건립사유가 구구절절하게 담겼지만 국한문 혼용체로 어려운 한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위치가 높아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한시는 모두 한자로만 써있어 그 뜻을 헤아리기가 대략난감이다. 사전 지식없이 올라온 시민들은 그저 탑을 한번 둘러보고 탁 트인 주변풍광에 빠져들고 말 뿐이다.

 

  이해를 돕고자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1910829일 조선은 일제에 의해 경술국치(한일합방)라는 치욕적인 국권침탈을 당했다. 비운의 왕좌를 지키던 조선의 마지막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1대 황제인 고종황제는 191912268세를 일기로 승하昇遐한다. 그는 나라를 잃고 바람의 촛불처럼 흔들리던 암울한 시기에 유일한 희망이고 정신적 지주였다. 당시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셨는데 자연사설과 일제에 의한 독살설 소문까지 돌아 온 국민들의 비통함이 극에 달하며 국상행렬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엎드려 절하며 통곡들을 했다.

 

  일제치하라 지방의 민초들은 마음 놓고 통곡조차 할 수 없었다. 이때 한양으로 달려가지 못한 춘천의 기개있는 선비들은 일경의 눈을 피해 이곳에 제단(태극단)을 쌓고 한양을 향해 통곡의 제사를 지내며 나라 잃은 통한痛恨의 슬픔과 울분을 달래던 곳이다.

 

  또한 소상과 대상을 치룰 때에도 춘천의 인사들이 모여 제를 올리고 조문弔文과 시문詩文을 지어 올린다. 일제는 이들의 글을 입수하여 투옥하는 만행이 이루어지는 속에서도 고종의 3년 상을 모셨던 비애悲哀의 가슴 아린 현장이다.

 

 이 국사봉 망제탑은 선조들의 의로운 행적과 높은 뜻을 기리고자 199311월 당시 최승순 강원대교수가 기문을 짓고, 박환주 춘천시장과 김정명 춘천문화원장이 건립하였다.

 

  비문을 읽으며 마음이 흔들렸다. 서쪽 서울의 하늘을 바라본다. 한줄기 바람일어 나뭇잎이 몸을 떠는 모습과 그날의 통곡소리가 울컥거리며 오버랩 된다. 한겨울의 맑고 쨍한 찬 공기가 가슴을 찌른다. 과연 우리는 지금 올바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태극기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 누군가 태극기를 달기위해 보호책에 장대를 비닐 테잎으로 칭칭감아 놓은 모습이 흉물스럽기만 하다.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으로 국기게양대와 한글로 된 안내판이라도 세워 춘천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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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분이 지은 한시 중 춘천의 역사문화지리서인 『수춘지(壽春誌)』를 편찬하신 김영하 선생의 시를 음미해 본다.

 

      하늘을 부르짖으며 통곡하니          / 號天倚斗哭

       오백 년 조선의 역사도 눈물지었다    / 五百餘年淚

       삼천리 온 나라가 눈물 흘리니        / 一灑三千疆

       돌아가신 영혼들도 함께 눈물흘린다   / 鬼神亦爲淚 "

 

  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 국사봉은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유린당하였을 때 이 고장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통한의 망곡을 하며 망제를 향사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 망제를 계기로 나라 잃은 정한은 시문으로 서회되어 이 때에 지은 우국의 시문이 이곳 읍지에 실려 있으니 수춘지의 국사봉 시문이 그것이고 춘주지의 국사봉사건 기사도 바로 그것이다. 나라가 제국주의 일본에 병탄되어 우리 역사상 일찌기 겪지 못했던 국치민욕이 극에 달하였을 때인 1919년 초에 고종이 국상을 당하였으나  마음 놓고 애고조차 할 수 없었던 이 고장 사람들은 일제경찰의 눈을 피하여 이곳 국사봉 정상에 태극단을 모으고 수백의 인사들이 여기 모여 서천을 바라보며 고종의 승하를 애도하는 망제를 올리고 나라잃은 슬픔과 울분을 토로했던 곳이 바로 이 국사봉이다. 일제의 경찰은 이곳선비들의 우국의 시문을 압수하여

그것을 증거로 이곳 인사들을 검거 투옥하는 만행을 저질렸으나 이들은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고종의 삼상을 다 이곳 국사봉에서  망제로 향사하였다. 이 고장 선인들은  망국의 한을 여기서 비분했고 우국의 전을 여기서 강개했다. 국사봉은 비록 봉은 범상하나 이 고장 선인들의 애국의 서정이 서려있는 곳이기에 여기 그 연유를 적어 길이고 그 뜻을 기린다.

 

                                      199311

 

                                                             강원도문화재위원 최승순 근선

                                                춘천시장 박환주,  춘천문화원장 김정명 근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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