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물 댁’ 셋째 사위
樂涯 심 창 섭
*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휘는 상대를 부르는 호칭呼稱이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을 갖는 것을 당연시 한다. 아니 요즘은 태명台名이라며 뱃속에서부터 이름을 갖기도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 또한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하물며 이름을 모르는 대상에게도 나름대로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세상 만물에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이름 모를 산새, 이름 모를 들꽃도 있지만 이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이야기다. 설사 무명의 대상을 발견하거나 발명해도 곧바로 이름을 부여한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것은 무존재가 되는 것이다. 살아서도 불리지만 죽어도 남아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이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사람에게는 참으로 많은 호칭이 따른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에도 어릴 때 불리던 아명兒名과 호적에 올린 정식이름이 있다. 이외에도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도 있으며, 남다른 외모나 행동거지를 통해 또 다른 이름을 갖기도 한다. 또 연예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예명과 문인들이 쓰는 필명도 있고 연인끼리만 쓰는 닭살 돋는 애칭도 있다. 직장에선 직위명이 있으며 직업에 따른 다양한 호칭이 파생된다. 그 외에도 별호別號 아호雅號 당호堂號 택호宅號가 존재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또 법명이나, 세례명 등 종교적 호칭도 존재한다. 예전에도 이름조차 없다는 노비나 천민에게도 개똥이, 돌쇠, 언년이 간난이 등으로 불리던 호칭도 분명 이름이었다.
호칭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그분이 떠오른다.
「목박사」이다. 이미 세상을 뜨신지 10여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지근에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분이었다. 박사하면 그 분야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여 존경을 받는 분들의 존칭이다. 그런 박사님들께는 아주 죄송스럽지만 사실 주변에 박사가 너무 많아졌다. 세속적으로 말한다면 흔해졌다. 예전 유행가 가사에 길을 가다가 사장님하고 부르면 10명중 9명이 돌아본다는 노랫말처럼 요즘은 박사라는 칭호가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 문득 떠올린 목 박사는 좀 색다른 분이다. 자칫하면 성씨 때문에 목을 치료하는 의사로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목睦씨 성을 가진 나의 장모님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그 분의 별호가 ‘목박사’였다. 대학은 커녕 신문학을 전혀 접하지 못하신 분이었지만 성격과 결단력이 남달리 돋보였던 분이었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뛰어난 판단력으로 친지들이 자연스럽게 부르던 호칭으로 당신께서도 그리 싫어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호칭 때문이신지 고집도 행동도 박사급으로 특별하셨다. 남에게 지고는 못 견디시는 완고함으로 쉽게 표현하면 고집불통이시기는 했지만 나름대로의 논리와 철학을 가진 분이셨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별호인 목 박사보다 택호인 ‘오수물 댁’으로 호칭했다.
보통 여성들이 시집오기 전 살던 곳의 지명을 택호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새색시에게 택호를 부여 한다는 건 배려의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음이다. 정든 산천을 떠나 낯설고 생활문화마저 다른 곳에 혼자 내던져진 두렵고 외로울 새댁에게 자신이 자란지역의 이름은 얼마나 정겨운 호칭이었을까?
택호의 사용이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아녀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호칭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반드시 지명으로만 택호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예이기는 하나 필자의 장모님 택호는 ‘오수물댁’이었다. 오수물이란 명칭은 지명이 아니었다. 시댁에 접해 있던 우물이름이 택호로 굳어진 분이다. 이미 오래전에 그 곳에서 인근마을로 이사를 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마을에서 오수물 댁의 호칭은 그 분의 상징이었다. 처가의 동네 분들을 만나면 아내는 언제나 ‘오수물 댁 셋째 딸’이 되었고, 나는 당연히 ‘오수물 댁 셋째 사위’로 불렸다. 또 그렇게 말씀드려야 고개를 끄떡이며 누군지를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오수물의 명칭유래는 ‘옻우물’의 변형이었다. 나무가 땔감이던 시절에는 옻나무로 인하여 옻오르는 일들이 빈번했는데 처가댁의 우물물을 먹고 바르면 효험이 있다고 해서 ‘옻 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마을엔 오수물이란 상호가 전해진다. 다만 그 오수물을 「다섯개의 우물」 「다섯가지 맛의 물」 또는 「오염된 물汚水」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 정확한 어원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디지털사회에서 택호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같은 것이리라. 사용빈도가 낮아지고 상징성도 희미해 져가고 있지만 과거의 산물로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쉽기만 하다. 요즈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택호는 바로 호수였다. 아내의 택호는 708호댁이고 나는 708호 아저씨이었다. 과거에는 택호로 그 사람의 출신지나 품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기거하는 장소를 분별하기 위한 단순명쾌한 호칭일 뿐이다. 하기사 아파트는 현관문만 닫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을 구획하는 공간이 아닌가. 이웃의 출신지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 마는 과거의 호칭과 함께 이웃사촌과의 정겨운 관계 또한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또 택호와는 다르지만 문인·학자·화가 등이 본명 외에 호나 별호를 높여 이르는 아호雅號를 쓰기는 한다. 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간에 허물없이 부르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필자가 소속한 문인들도 모두 아호 또는 당호堂號로 서로 간에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택호와는 달리 누구나 편안하게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아무나 함부로 부르기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기는 뜻이다. 같은 연배이거나 손아래 사람일시는 무난하게 사용이 가능하나 상대가 선배 또는 스승일시는 호 뒤에 선배님, 선생님 등의 경어를 덧붙이고 있다.
지명을 사용하는 택호와 달리 호는 그 사람의 취미나 성격, 외모 등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름은 부모(친족)가 돌림자 등을 넣어 지어 주지만, 호는 대체로 스승이나 선배, 친구가 지어준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자호自號를 지어 사용할 수도 있기에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다. 하긴 인터넷시대인 요즘에는 너나없이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어 편하게 부를 수 있으니 변질감은 있으나 그것이 요즘의 아호이자 자호라 생각된다.
현대는 여성 상위시대로 점차 모계사회에 들어가고 있다며 남성들이 호들갑을 떠는 시대이다. 가부장제의 권위시대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름이 지면이나 언론을 통해 당당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그 역할이나 능력이 커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 여성들이 시집을 가면 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댁으로 호칭되고 있다. 나 역시 아내의 이름보다는 여보·당신이나 누구엄마로 호칭하고 있지 않은가.
부부끼리 택호를 부를 수도 없으니 이 기회에 내자에게 적절한 호를 하나 만들어 선물해야 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어떤 아호가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오늘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2016. 춘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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