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골에 남겨진 무채색 유물과의 조우-
* 얼마만큼을 이곳에서 살아야 진정한 춘천사람이 되는 것일까.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정이 든 곳을 제2의 고향이라 했는데 붙박이인 내게 춘천은 어떤 곳이며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한곳에 터 잡고 오랫동안 살아간다고, 도시 지리를 꿰뚫거나 후미진 곳에 남겨진 문화유적을 알고 있다고 춘천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그 하나만으로 춘천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시대에 편승하고자 불로거가 되었다. 내 고장의 모습을 내 시선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몇 가지 주제 중 관심의 뒤안길에 있는 비지정 문화유적을 스케치하듯 찾아 나섰다.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 느낀 단상을 적어나갔다. 한곳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무관심속의 대상들이다.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보아온 작고 조촐한 것들이지만 존재감을 잃지 않고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었다. 기록한 사진과 단문을 블로그에 올린 것이 계기契機가 되어 매달 춘천소식지 봄내지를 통해 발표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감사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기념물에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는 등 예상외의 반응에 신이 났다. 과거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 속에서 찾아낸 춘천의 '타임캡슐‘이라며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의 내용들은 필자가 모두 새롭게 발견하고 기록한 것은 아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대다수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향토문화유산들이다. 현대화속에서 희미해가는 지역정체성을 느껴보고자 시작된 2년 동안의 결과물을 한권의 책으로 엮는다. 다만 그동안 봄내 소식지의 지면 여건상 제외하였던 사진과 내용을 조금 더 첨가했음도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춘천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우리고장의 품격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디지털시대에 과거의 흔적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지면을 채웠다. 또 교과서나 인터넷 등에서 본 사전적 의미나 시각과는 달리 향리사람의 감성으로 풀어본 조촐한 이야기들이다.
언젠가 아름다운 도시라며 감탄사를 토해내는 외지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진 자연적 아름다움과 어우러져야할 예스러운 전통문화유산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들이 남아 있었으면 하던 아쉬움을 달래고자 했다. 이끼 낀 빗돌과 과거의 의미를 되살린 조형물 몇 개가 우리의 자존감을 얼마나 높여 줄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벼슬과 권세를 누린 사람들은 자신의 공덕을 돌에 새겼다. 누대에 걸쳐 우러름을 받고 싶던 욕망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이 단단한 자취들도 비바람風雨을 이겨 낼 수 없었다. 풍화된 몸짓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욕심 없는 삶을 살라는 교훈이다. 이미 어떤 빗돌은 한권의 책보다도 못한 짧은 세월 속에서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터를 지키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본 작업이다.
그저 뼛속까지 춘천사람이고 싶을 뿐이다.
대룡산 머리가 보이는 뒷두루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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