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톡, 톡, 토옥~ 타 닥!
낙숫물 소리가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느리기는 하지만 나름의 박자감이 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모니터 화면에 모음과 자음이 결합되며 글자가 한자씩 완성된다.
마치 석수장이가 글자를 새기는 듯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다.
독수리 타법보다도 더 느리다는 낙숫물 타법이다.
양손의 검지와 중지가 나름 바쁘게 움직이지만 더듬거리는 거북이걸음이다.
게다가 병아리 물먹고 하늘 보듯 쉴 새 없이 자판과 화면을 보며 까닥이는 고갯짓까지 동반한다.
그런 모습으로 27여년의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참 둔하고 딱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변명할 사연이 꽤나 길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류는 펜으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후 사무실마다 타자기가 놓였지만 그건 여직원의 몫이었다.
직원들이 종이문서를 작성해 건네주면 타자를 대신 해주던 타이피스트는 사무실의 꽃이었다.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빠른 리듬의 음악처럼 정겨움과 활기가 넘쳐났다.
또 분량이 많은 회의서류는 발간실이라는 부서에서 타자나 등사기로 처리해 주어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이어서 타자기가 컴퓨터로 대체되면서 1인 1대의 컴퓨터시대를 맞았다.
임기웅변臨機應變의 독수리 타법이었지만 나름의 속도로 일상 업무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만 타자속도가 느릴 뿐이지 업무를 컴퓨터로 해결했으니 분명 컴맹은 아니었다.
매사 빠르고 활동적이었지만 키보드 앞에서는 주춤거리는 내 모습이 짠하기만 했다.
그나마 컴퓨터에 복사기능이 있어 반복 업무는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그런 중에 몇 시간동안 더듬대며 작성한 계획서가 하얗게 사라지는 끔찍함에 실소失笑하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몇 번 시도한 타자 배우기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의 굴레였다.
이 늪에서 벗어나려면 익숙한 버릇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세월을 보내고 은퇴를 했다.
문인이랍시고 글을 끼적이려다 보니 컴퓨터는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독수리 타법으로도 해결되던 업무와는 달랐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성적 언어를 더듬거리며 자판에 신경을 쓰다보면 생각이 멈추곤 했다.
와중에 ‘코로나 19’라는 복병으로 일상이 뒤흔들렸다.
마스크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재앙의 삶이었다.
사람만남이 겁나고 모임도 꺼려져 타의반 자의반 집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하고 무료했다. 구속된 일상을 견디기 위해 찾아낸 일이 독수리타법 탈출이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창의력과 창의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솔깃했다.
이번에는 마지막이라는 굳은 의지로 시작했지만 오랜 습관을 버리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억지라도 매일 30분 정도를 투자했다. 자리연습을 시작으로 낱말, 짧은 글, 긴 글을 반복했다.
실력향상에 앞서 손목 통증으로 며칠간은 자판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지루하고 힘들어 때려치우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물 흐르듯 순응하며 살면 되는데 이제와서 과욕을 부린 듯해 후회를 한다.
그러나 한동안의 노력이 아까웠고 대체할 일도 없는 백수였다.
통증을 달래며 다시 시작했지만 둔한 손놀림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초조했다.
두 달여가 지나면서 손가락이 조금씩 나도 모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감이 생기며 통증도 서서히 사라졌다.
결국 코로나 위기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타자정복을 외친지 150여일의 지루한 노정路程,
아직도 독수리수준이지만 각고刻苦 끝에 다섯 손가락을 쓰는 검객의 대열에 가까스레 합류했다.
그까짓 게 뭐 대단한 일이냐며 웃어버릴지 몰라도 내게는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독수리와 함께 했던 그 오랜 시간의 고질병을 떨어낸 승리였기 때문이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 화면의 문자아래 붉은 줄(오타)이 득시글거린다.
하지만 정확도와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감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걸으면서도 생각이나 딴 짓을 하거나 기타의 코드를 잡는 것처럼 타자운지법運指法은 반복된 연습이었다.
습관은 무의식의 자동성이라 손가락이 스스로 반응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1분에 100타 정도, 처음의 걸음마에 비하면 날아가는 속도이다.
지금 뒤뚱거리며 이글을 쓰고 있지만 머지않아 속도의 리듬과 성취감을 맛보리라.
하지만 타자를 잘 친다고 문장이 저절로 나오거나 사고思考의 속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리라.
빠른 입력과 지우고 복사하는 컴퓨터 글은 왠지 가벼움이 느껴진다.
창작의 원동력은 속도가 아니라 가슴속 에너지를 쏟아내는 작업이다.
언어를 깊이 있는 글로 치환置換하면서 원고지 빈 공간에 더 깊은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 시대는 정성으로 한자 한자 눌러쓴 육필원고를 원하지 않는다.
교정校正과 퇴고推敲 그리고 편집의 편리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발전의 상징어인 ‘빨리 빨리“의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의 DNA를 내가 감히 어쩌겠는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달리려는 욕심을 누르며 오타 투성인 글자를 천천히 조합한다.
내년쯤에는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의 창가에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 본다.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닌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새삼스레 느낀다.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오며 적당히 허비한 지난날들이 이제야 돌아보니 아쉽기만 하다.
철나자 망령난다고 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을 곱씹는 시간,
공지천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속을 날아가는 철새의 대열이 꽤나 길다.* [2021 새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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