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꿈을 꿀까, 꿈을 이룰까?

심봉사(심창섭) 2010. 4. 19. 15:21

 

  꿈을 꿀까, 꿈을 이룰까?

沈昌燮

 

* 어디선가 소곤소곤 거리는 듯한 아주 작은 소리에 잠이 깨었다.

눈을 부비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늦게 잠들은 아내가 깰까봐 살며시 안방문을 열었다. 창밖의 보안등 불빛에 어슴푸레 거실의 윤곽이 드러난다. 딸아이의 방문 틈사이로 불빛이 가늘게 삐져나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공부를 하나, 아니면 불 끄는걸 잊어버렸나 생각하면서 혹시 하는 불안한 마음에 방문에 귀를 대본다. 크지는 않지만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나 버린다.

머리카락이 쭈삣서는것 같이 느낌이 온다. 아이가 혼자 사용하는 방에 누가 있을 리가 없는데 흥분된 가슴을 가라앉히며 다시 귀를 방문에 밀착시킨다.

선율과 함께 소곤거리는 소리의 주범은 라디오였다.

휴-

쿵쿵뛰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며시 문을 열어보니 아이는 공부를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제 고3이다. 얼마나 중압감에 시달리는지 바로 옆에 침대를 두고도 툭하면 책상에 엎드려 깜박깜박 토막잠을 자고 있다.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해도 일등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니 등수문제가 아니라 개인과외나 학원이 아니면 정상쪽으로 오를 수 없는 학교교육의 현실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딸애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자 아이는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책을 펼친다. 강제적으로 공부를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잠들었다는 죄의식 때문이었을까. 잠결에도 연필을 잡고 자세를 바로 잡는다. 더 공부해야 한다는 아이를 달래서 침대에 누이고 딸애가 공부하던 책상에 잠시 앉아본다. 교과서가 아닌 문제집들이 책상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연습장에 깨알같은 글씨가 넘쳐난다. 라디오에서는 아이가 잠든 것도 모르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경제적인 문제로 별도의 공부를 시킬 수 없는 현실이 늘 가슴 아픈데 그래도 아무런 투정 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요즈음 아이들은 365일 밤낮이 없는 시간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인성의 성장보다는 점수의 향상을 위해서 문제집과의 싸움뿐인 것 같다.

아이의 책상머리에 굵은 싸인 펜으로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라는

좌우명이 몽롱한 새벽의 형광등 불빛아래 흔들리고 있다.

"일등은 못해도 괜찮지만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건 바보란다. 환경이나 자신의 머리만을 탓하지 말고 조금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다오” 라는 상투적인 훈계로 은연중에 공부만을 강요(?)하며 채찍을 휘둘러 왔는데 열심히 하면 과연 어떤 꿈이 보장되는 것일까.

진정 꿈이란 무엇일까. 아이는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 것 일까.

잠조차 마음 놓고 잘 수없는 강박관념 속에서 공부를 하는 딸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합격? 취업이나 결혼? 아니면  먼 훗날 미래를 위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할 울타리를 만드는 것일까?

또 이러한 바램들이 충족되고 나면 아이는 또 어떤 꿈을 꾸게 될까.

학창시절의 우등생과 모범생들은 보편적으로 교사, 공무원 또는 기업체의 간부가 된다. 그러나 좀 엉뚱하거나 기질이 있던 친구들은 오히려 창업주가 되거나 생각지도 않게 성직자가 되기도 한다. 꿈의 실현은 반드시 성적순만은 아닌 것 같은데도 공부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등과 라디오를 끄고 거실로 나왔다. 밖은 아직도 어두운 밤이다. 달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별빛조차 희미한 하늘. 외롭게 서있는 보안등 불빛과 몇몇의 상가 간판 등이 하얀 밤을 지새우며 거리를 지킨다. 텅 빈 도로로 적막함을 깨고자 가끔씩 차량이 눈에 불을 켜고 지나치는 모습이 영화속의 장면처럼 펼쳐진다. 베란다 문을 여니 새벽의 찬 공기가 얼굴과 가슴을 향해 달려든다. 잠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청소년기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청소년기 불우한 환경의 자포자기 속에 꿈다운 꿈조차 꾸지 못해본 것 같다. 그저 물위에 떠가는 낙엽마냥 흔들리며 운명이라는 이름에 얹혀 살아온 것이 아닐까. 무지개 꿈은 고사하고 희망제로였던 현실에서

우선 벗어나고만 싶다는 바람으로만 보내야 했던 청소년기의 아픈 추억들이 어둠속에서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빨간 점하나가 껌벅이는 걸 보니 아마 나처럼 잠을 놓친 사람이 담배연기로 시름을 날리고 있는 모양이다. 타버린 담뱃재가 허공으로 날리는가.

순간 어둠의 공간에서 작은 유성 하나가 꼬리를 감추며 건물 뒤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아직도 여명의 시간은 먼데 잠은 어둠의 상자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새벽을 기다리며 졸고 있는 별빛을 바라보며 모든 꿈들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세상이 아침처럼 환하게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아이야! 아름다운 꿈을 꾸려무나. 공부에  찌들려 너무 힘들겠지만 지금이 네 인생에 황금기라는걸 세월이 저만큼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단다. 다만 네가 두 팔을 벌려 잡을 수 있는 만큼의 꿈을 가져야 한단다. 꿈은 아직도 네곁에 머물고 있단다. 꿈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서 잡아야 하는 것이란다. 무지개를 비가 온 후에 볼 수 있는 것처럼 꿈은 네가 노력한 만큼의 무게와 색깔로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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