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섭의 글

수필- 多不有時 (다불유시)

심봉사(심창섭) 2010. 4. 20. 20:11

 

 

多不有時

 

심 창 섭

 

 

* 요즈음은 어느 집이나 거실에 한 두점씩의 예술품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점이나 사무실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동양화나 서예작품들.

 

  불과 30여년전만 해도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값싼(?)복제 유화나 달력그림을 오려 액자에 넣어 대청마루에 걸어 놓았었다. 또 개업식이나 집들이 행사가 있으면 으레 친지들이 사업번창과 화목하게 살라는 뜻으로 거울이나 시계에 '축 입댁 ' 또는' 축 발전'이라는 글씨를 넣어 선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10여마리의 새끼들이 어미돼지 젖을 빠는 모습이나, 정겨운 초가집 마당에서 어미닭을 따라가는 병아리떼 그림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소문만복래(笑門滿 福來) 등의 서예작품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달력그림을 오려 붙이거나 유리 가게에서 팔던 복제예술품은 만나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집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벽면을 차지한 이러한 예술작품들은 공간을 한층 격조있는 분위기로 연출하여 우리의 마음을 한결 여유롭고 편안하게 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작품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지나 스승에게서 받은 작품을 걸어 놓고 그것을 받거나 걸게된 사연과 그 속에 담긴 뜻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수 없다. 물론 아직도 유명 인사나 예술인들의 작품을 걸어놓고 매입 가격만을 떠벌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활이 한결 여유롭고 문화적으로 윤택해 지고 있다는점을 부인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생활 문화는 반드시 빵이 해결된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고고하게 걸려 있는 많은 한문 서예작품을 만나게 되지만 뜻은 고사하고 읽을 수도 없어 글씨를 그림으로만 바라보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나의 한문 실력에 한계가 있지만 동행한 동료들에게 물어 봐도 거의 마찬가지로 느끼던 경험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궁굼증을 못이겨 음식점 주인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대다수는 모르겠다는 대답이 태반일 뿐이다.

 

그래서 슬쩍 빈정거리는 어투로 “아니 뜻도 모르는 글씨를 왜 걸어 놓느냐”고 우문(愚問)을 던지면 “뜻이 아무러면 어때요, 장식용으로는 최고예요. 저게 표구 값만 얼마짜린데......라는 기가막힌 현답(賢答)으로 넘어간다.

거기다 장식용은 해서체 글씨보다는 읽기가 난해한 초서체(草書體)나 전서체(篆書體) 또는 예체(藝體)가 더 멋있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며칠전 점심을 먹은 후 동료들과 요선동의 한 찻집을 찾았다. 여기서 우리의 한문실력이 또 한번 적라하게 표출된 기가 막힌 사건이 벌어졌다. 일행중 한 사람이 낙관이나 두인도 없이 찻집 구석벽면에 삐딱하게 걸려 있는 휘호 한 점을 보고 저게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시선들이 한 곳으로 몰렸다. 다행히 잘쓴 글씨는 아닌 것 같았지만 해서체로 반듯하게 쓴 글씨여서 모두들 읽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多不有時”라며 큰소리로 읽기는 했지만 뜻을 명쾌히 설명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며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많을 , 아니 , 있을 . ”니 시간은 항상 있는것 같으나 실지로는 많은 것이 아니니 시간을 아껴쓰라는 뜻인 모양이야. “ 내가 얕은 한문 실력으로 그럴듯하게 마무리를 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순간에 누군가가 화장실 위치를 묻는다. 계산대에 있던 주인이“ 저기 써있잖아요.”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갑론을박(甲論乙駁)하던 휘호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쪽에 휘호 이외에는 작은 문만 보일 뿐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재차 질문이 던져지자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휘호 앞으로 다가서더니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다불유시”(WC). 처음에는 모두들 영문을 몰라했지만 곧 무릎을 치며 정말이지 배가 아프도록 박장대소를 했다. 화장실을 영어표현으로 그럴싸하게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하긴 어느 카페의 화장실 문짝에는 화투장에서 11월을 뜻하는 똥 껍질을 큼직하게 그려 놓아 한동안 화제가 된 일도 있었다. 화장실은 근심을 풀어버리는 해우소(解憂所)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선인들의 기지를 현대인들은 이렇게 대응하다니.......

 

어디. 그뿐이랴, 대학로에는 세종대왕께서 분노하실BEER天歌라는 맥주집 상호가 술 손님을 청하는 정말 끼가 넘치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상술에 동원된 문자의 변형이 상혼(商魂)인지, 재치인지, 박수를 쳐야 할지, 웃고 말아야 할지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 모두를 순간적이나마 즐겁게 해준 사건 아닌 사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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