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춘천지역에 오래된 금석문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고려시대의 청평사의 진락공중수문수원기비와 장경비, 춘천박씨의 시조인 박항 신도비(舊碑)를 비롯해 조선시대에 세워진 장절공 신숭겸, 청풍부원군 김우명, 풍은부원군 조만영 신도비 등과 태실비, 암각문, 선정비, 묘비 등이 다수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금석문자체가 별도의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없는 상태이며, 조성시기가 올라갈수록 풍화와 인재 등으로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청평사의 진락공중수문수원기비는 1130년(고려 인종8년)에 세워졌다가 오랜 풍화와 인재 및 전란으로 파손되어 일부 비편과 비대석만 남아 있었다. 973년에 창건된 청평사에 고려시대의 유형적 유물로는 비대와 비편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상태이다.
비문의 주인공인 진락공 이자현의 행적은 물론 청평사의 역사서로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와 당대 최고의 명필가가 만들어낸 걸출한 금석문이다.
과거 많은 식자층들이 명필로 알려진 탄연의 서체를 교본으로 삼거나 소장하고자 탁본으로 만든 비첩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1690년경 지방아전이 감사(監司)의 지시로 한 겨울에 문수원기의 탁본을 뜨기 위해 불로 비석을 달구는 바람에 표면 일부가 파손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후 급격히 훼손이 진행되어 1914년에 비석을 건물 안으로 들여놓았는데, 건물의 화재로 다시 손상을 입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청평사가 전소하면서 동시에 비석도 파괴되고 사라져 문수원기에 대한 관심이 잊혀 가고 있었으나 1968년 청평사지에서 다수의 비편(碑片)이 발굴되어 다시한번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춘천지역에서도 본 비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복원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어 왔었으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북관대첩비가 100년만에 일본에서 환수되고 왕희지체 집자비인 인각사 보각국사비가 복원되는 등 국내에서 주요금석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문수원기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재야 서지학자의 복원도 완성 언론보도와 본 연구회 회원의 관련논문 발표 등 복원에 대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어 복원사업에 첫 삽을 뜨기에 이르게 되었다.
빈 비대석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외형적인 비석의 복원만이 아닌 이자현의 사상은 물론 탄연의 서체복원을 동시에 충족시켜야만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다행히 동문선, 조선금석문총람 등 문헌에 비문이 전해지고 비첩, 탁본 등이 부분적으로 국립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등 중요기관과 개인들이 탁본을 소장하고 있었고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비편이 보관되어 있었다.
국내에 비첩과 탁본,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부 파손된 형태의 사진 등 현존하는 자료는 각계기관과 개인소장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비교분석이 가능했다. 그러나 수집된 부분자료의 상이점과 결락자, 자간, 행간 등 해결해야할 숙제가 산적하고 현존하는 탄연서체의 진적이 많지 않아 서체의 복원 해결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다만 수집된 자료의 한계성과 재질, 기술 등의 조건으로 완벽한 복원사업은 어렵다는 결론으로 재현이라는 용어로 접근을 시작하였다. 재현을 염원하는 재야학자의 끈질긴 집념과 복원위원들의 아낌없는 노력과 참여가 있었기에 이렇게 옛 비 건립이 가능할 수 있었다. 비록 완벽한 재현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혹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이제 본 비석은 청평사의 역사서로는 물론 고려 중후기의 불교사를 다시한번 조망하는 한편 신품사현의 한분인 탄연의 걸출한 서체를 만날 수 있는 중요금석문으로 자리할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 본고는 2008년 본인이 근무했던 강원지역문화연구소(회장 김유환)에서 국비지원으로 복원한 청평사 문수원기비 복원사업 보고서에 수록했던 글을 옮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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