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경위
- 춘천의 천년고찰인 청평사에 건립되었던 문수원비 복원사업은 오래전부터 춘천지역의 식자층에서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미뤄지던 과업이자 숙제였다.
최근 북관대첩비가 100년 만에 일본에서 환수되고 인각사 보각국사 일연선사비가 복원되는 등 주요금석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문화재청에서 문수원기 복원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강원도를 통하여 춘천시에 시달되었다.
춘천시에서는 본 연구회에 복원 가능여부를 협의하였다. 현재까지 파손된 중요비석을 탁본에 의하여 복원한 사례가 전무하고 사업에 도움이 될 보고서조차 없는 백지 상태였다. 문수원기 복원은 금석문 복원의 첫단초를 여는 중요한 디딤돌로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본회 연구원 중 문수원기 복원에 대한 논문발표 사례가 있었고 향토의 중요사업을 타 지역으로 넘길 수 없다는 자존심이 발동되었다. 먼저 재야 서지학자가 개인적으로 완성한 복원도 저본 확인과 사업의 동참여부를 확인한 후 신중한 검토 및 심도있는 회의를 거쳐 복원에 대한 계획서를 제출하고 과업을 착수하게 되었다.
우선 사계의 권위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재야서지학자와 이자현의 문중인 인주이씨 종인, 서체 검증을 위한 서예인, 당해 사찰주지스님을 운영위원으로, 본회 연구원들을 실무위원으로 총 12명의 복원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는 한편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학문과 실무의 접목을 통해 사업을 내실과 구체화를 꾀하였다.
복원위원회에 의결사항으로
- 복원모본의 선정 및 사용여부
* (재야 서지학자의 완성본을 저본으로 사용하되 지속적인 재검증 및 보완 조정
하기로 결정)
- 현존 자료의 수집 및 재검증
- 완성비문 및 서체의 감수자 선정을 통한 재검증
- 각수 인선 및 검증
- 비대석 및 비신석, 안내문석 등의 형태, 규격, 재질 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비신 재질인 점판암이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재료를 확보할 수 없었다. 수소문중 충남 보령에서 점판암이 생산된다는 제보에 따라 전문가와 현지 확인결과 점판암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부득이 오석으로 재질을 변경하게 되었다. 또한 오석채취의 특성상 대형으로 질좋은 석재구입이 쉽지 않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사용일 3개월 전부터 채석장과 긴밀한 연락망을 통해 양질의 오석을 구입할 수 있었다. 탁본과 비대로 확인한 비신석의 넓은폭은 약 105cm정도로 추정되나 신 비신석은 111cm로 약 6cm 증가시켰다. 내부의 행간은 변동이 없으며 다만 여백이 없어 답답해 보이는 좌우 외곽 부분만을 조금 넓게 하여 시각적인 안정감을 꾀하였다.
또 남아있는 비대석으로 확인된 규격으로 볼 때 본래의 점판암 비신석은 두께가 12.5cm정도로 추정되나 비신석이 너무 얇아 오석으로 변경건립시 보존관리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두께를 20cm로 약 8cm 키우되 구 비대석은 원형보존하고 새로운 비대를 제작하여 건립하는 실시 설계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구비대가 남아있고 석질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는 판단에 따라 구비대를 사용하라는 문화재청의 조건부 승인이 시달되었다. 그러나 비신석의 두께 증가로 인해 부득이 구비대석 내부를 확대해야만 하는데 이는 문화재 원형 훼손행위라는 라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에 학술대회 참석자들이 연명으로 가능하면 신비대를 제작하여 건립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제출하였고 변경안이 승인되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유구의 정확한 실태 파악과 대처방법을 위해 전문가 입회조사를 실시하였다, 구비대의 기초방법과 본래 위치 확인 및 하부유구의 조사 결과 구 비대는 좌우균형을 잃은 일부 매몰된 상태이며 별도의 하부기초로 볼만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부 토층 또한 근래의 와편과 잡석이 혼재되고 교란된 정황으로 보아 비대는 본래의 위치가 아니고 어느 미상시기에 이동된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었었다. 이어 연접되어 신 비대석을 설치할 토층에서도 별다른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건립위치의 변경에 대한 의견이 있었지만 본 비대의 전면인 동․서방향으로 대칭되어 위치한 장경비 비대석이 있어 현재의 자리를 고수하기로 했다.
또한 복원비 저본과 새롭게 수집한 자료의 육안 비교분석을 지속하는 한편 컴퓨터를 이용해 보완하고 수정하는 일련의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는 저본으로 결정된 완성본이 가묵(加墨)이라는 또 한 번의 작업과정에서 미세하지만 변질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완벽하지 않은 원본(탁본․비첩 등)으로 비석 복원도작업 시에는 반드시 충분한 기간동안 전문 서예인과 컴퓨터 전문가가 병행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모본을 각수에게 전달하고 이를 다시 자간과 행간 그리고 비석에서의 정확한 배치를 위해 글자 한자씩을 원석에 오려붙이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전면 비양의 글자는 크기나 자간이 일정하지 않은 자유분방한 행서체로 모눈종이에 붙일 수 없는 여건이었다. 이에 따라 비첩과 탁본에서 확인된 부분은 모눈종이에 관계없이 원형을 따랐고 나머지 애매한 부분은 복원위원중 서예인의 자문으로 행간과 자간을 완료하였다. 글자조각은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계작업이 아닌 전통수각으로 서체의 맛과 멋을 살리는 작업을 하였다.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된 비편은 재질이 점판암으로서 글자를 조각도로 파낸 수법이었으나 신규 비신 재질(오석)의 특성상 정을 이용해 쪼아내는 기법으로 비문을 완성하였다.
신규 비대의 기초는 잡석과 강회를 번갈아 가며 다지는 전통 강회 잡석다짐 방법으로 약 15일간의 양생기간을 가진 후 하대석과 비대석 비신 순으로 작업을 마무리 했다.
또한 비문이 한자로 되어있어 신규비석 좌측면에 비문내용을 한글로 요약한 화강암 안내문석을 설치하여 답사자들의 이해증진 및 편의를 도모하였고 안내문석 후면에 건립개요를 기록하였다.
보호책은 설계승인 조건에 따라 알루미늄 캐스팅 제품으로 관람에 거슬리지 않도록 가장 낮은 제품으로 시공하고 내부에 잔디를 심었다.
'심창섭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천테마사진 4인전 소개의 글 (0) | 2012.01.08 |
---|---|
이순의 나이에 불러그가 된 까닭은? (0) | 2011.12.30 |
향토사- 청평사 문수원기비 복원관련 머리말 (0) | 2011.12.09 |
향토사 - 청평사 문수원중수기비 간단한 요약 설명문 (0) | 2011.12.08 |
향토사- 요선당邀仙堂/ 문소각文韶閣의 명칭에 대한 재조명 (0) | 2011.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