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지워진 기억의 편린을 줍다.
심창섭
* 내게 춘천은 강원도의 도시명이 아닌 그저 내 고향 춘천일 뿐이다.
이곳에서 태를 잘랐고 또 이곳에 육신을 누이고 흙으로 돌아가야 할 대지인 것이다. 조실부모의 환경 속에서 어렵사리 성장한 고향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애증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성공해 돌아오겠다며 떠난 타지에서 불과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고향의 산천이 밤마다 눈앞에 어리고 물 냄새, 흙냄새가 그리웠다. 고향의 맛과 향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포근함 속에서 청년기와 중년기 장년기를 보내고 이제 노년기의 시작하려한다. 돌아보니 그 동안 지나친 시간이 꽤나 흘렀는지 삶의 궤적이 꽤나 길어 시작점이 보이지 않았다.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 자꾸만 지워져가는 기억의 단편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고향의 옛 모습들을 떠올려 본다.
그래 너무 무심히 살았구나. 그 곳을 잊고 있었다니,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추억의 장소들.....
그러나 기억의 실마리를 찾다 보니 금방 벽이 가로 막았다. 지명도 헷갈리고 또렷할 줄 알았던 영상들이 자꾸만 이지러진다. 기억은 한 달에 한 번씩 차오르는 달이 아니었다. 은하계에서 이름 없이 가물거리는 별처럼 보일 듯 말 듯 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 기억력의 한계였다. 어쩔 수 없이 채비를 하고 여기저기 그 현장을 찾아 기억의 편린들을 줍는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실소를 한다.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참으로 많이도 변해 있었다. 이미 기억을 복원해줄 대다수는 흔적들이 사라져 버리거나 화장한 모습으로 생소하게 다가왔다. 어쩌다 여기저기에서 과거의 작은 실마리를 건져내며 스스로 감동하고 스스로 감회에 젖는다.
몇해전인가, 로상에서 우연히 국민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녀석이었고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는 대뜸 나를 알아봤고 나 또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과장되게 파안대소를 하며 마주잡은 두 손을 흔들자 세월의 더께로 가라앉았던 기억들이 마구 부유했다. 잠시 혼돈이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불러댔고 담임선생님의 존함까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름은 고사하고 그의 존재조차 아른거렸는데 불쑥 내 입에서 녀석의 이름을 불려졌다. 경이로움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순간이동을 통해 잠시였지만 기억들을 되살려내며 코흘리개의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50여년의 세월로 반백의 머리, 깊은 주름, 게다가 안경까지 쓰고 있었지만 본래의 모습을 어딘지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늙지도 않았구나, 옛날과 그대로야” 라는 너스레 속에서 과거는 예상치 않았음에도 자연적으로 복원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력의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사람의 능력에 따라 기억과 재생력의 용량은 다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없는 없지 않는가. 때에 따라서는 버리고 싶은 것은 지워지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했던 일들은 오히려 까맣게 잊어버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잊어버려도 문제고, 잊히지 않아도 고민인 것이다. 동기와 계기 마련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한 표를 과감히 던진다. 디지털시대에서 용량과 크기로 모든 것을 저장하지만 그 역시 인간의 손과 기억이 있어야만 가능하지 않는가.
어느 좌석에선가 과잉기억증후군 증세를 가진 외국 여성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지난 일들을 고스라니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수십 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몇 천만명중의 한 사람일 테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소설가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 주인공 엘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머릿속이 온통 기억으로 차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거에요. 그건 평생 과거라는 철창 속에 갇혀 사는 거라고요” 와우~
과잉기억증후군 환자에게 우리가 부러워하는 탁월한 기억력은 오히려 고통일 뿐이다. 지난 과거 속의 평범한 일상을 사진이나 영화처럼 생생히 저장하고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답답해진다. 보통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조금씩은 희석되겠지만 기억은 그 순간의 즐거움, 괴로움, 분노, 좌절감도 함께 살아나기 때문이다. 망각이라는 절차가 있기에 우리는 이 여백의 공간에서 숨 쉬며 새로운 기억을 쌓고 버리는 작업을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고 있을게 아닌가. 아내의 생일이나 부모님의 기일을 툭하면 잊어버리면서도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는 이 존재는 무엇이던가. 숱한 역경의 삶속에서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노인들이 가족을 몰라보고 자신조차 하얗게 잊게하는 치매는 또 무엇인가?
기억력에 의존해 과거를 복원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하나 그 기억의 편린이나마 마주하지 못했거나 더 지워진 춘천인 들을 위해 잠시 과거로 돌아가는 열차에 올랐을 뿐이다. 감히 온고지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본고를 시작한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전란의 길목에서 부침이 유독 심했던 이곳 춘천은 과거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양반가 서재에 쌓였던 고문헌들은 물론이고 와생초와 이끼 낀 옛 가옥들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만나기 힘든 곳이다.
본고는 본인이 체험한 삶의 여정에서 보고 기억하는 현장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전쟁이후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하지만 틈틈이 선배들이나 어르신을 통해 들은 이야기도 포함하여 미미한 기억력을 보강했고 복원하고자 하였다. 춘천사람으로서 치매인자가 발생되기 전 그나마 간직한 기억을 어떤 의무감처럼 실마리를 찾아 나갔다. 근년에 지역학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이 지역학에 일조하기를 바라며 또다시 기억력에 불씨를 돋구어본다. 춘천사람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순간만은 그런 희귀병을 앓고 싶을 정도로 내 기억력은 너무 미약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의 기억력을 모아 짜깁기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점이 있었다. 이번호에는 “춘천의 극장”과 “춘천의 시장”을 화두로 결정하였다. 학술적인 논고가 아닌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원고이기에 부담 없이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의 편린이라는 부제로 시작한 원고이기에 많은 오류가 있을 것이다. 많은 이해와 용서를 바라며 행여 잘못된 부분은 꼬집어 주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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