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 떠내려 온 부래산 이야기▮
의암호의 상중도 북쪽 끝에 우뚝 솟아 홀로 서있는 해발 98.8m의 작은 봉우리 고산孤山.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춘천을 찾으면 반드시 올랐던 소양정에서 이 산을 바라보며 많은 시구를 읊던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에서 떠내려 온 산이라는 뜻에 부래산浮來山으로도 불렸다. 예전 많은 시인묵객들은 춘천의 진산이라 불리는 봉의산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봉의산이라는 뜻으로 봉리대鳳離臺라고도 불렸다. 또한 춘천에는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이 자연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은 터를 골라 시회詩會를 즐기던 돈대墩臺가 두 곳이 있었다. 고을은 물론 주변의 자양강, 소양강과, 우두벌, 봉의산, 삼악산 등의 보며 즐기던 이곳 고산대孤山臺와 삼천동의 봉항대鳳凰臺이다.
* 금성군金城郡 : 강원도에 있던 행정구역으로 이후에 김화군에 편입되었다가 지금은 철원군과 북강원의 평강군에 속한 행정지역이다.
이곳에 전해지는 부래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한 해 큰 장마로 북한강상류의 금성군 땅에서 작은 바위산이 하나가 떠내려 와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금성군의 관리가 바위산의 행방을 찾다보니 이곳 춘천 땅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확인한 금성군의 관리가 금강산의 일부인 이 산이 우리군의 소유인데 장마로 떠 내려와 이곳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니 세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소유권이 없는 춘천관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매년 금성군에 세금을 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춘천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매년 금성군에 세금을 내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관례적으로 이행하던 절차라 무심하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해 춘천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원님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금성군의 관리가 세금을 받으러 올 때가 되어 가는데 관가에 비축된 곡식도 많지 않고 세금을 주고 나면 관청 살림이 쪼들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성군의 땅이라 하니 세금을 안 낼 수도 없고 주자니 고을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다보니 원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그 원님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요즈음 근심에 젖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고 사유를 여쭈어 보았다. 그러나 어린아들이 묻는 말이기에 “별일 아니다.”라며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님의 고민이 점점 깊어 가시는 것을 어찌 소자가 아들된 도리로서 모르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라며 거듭 이유를 물었다. 이에 고산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며 금성군에 세금을 주어야 하나 관아의 형편이 어려워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한참동안 생각을 하더니
"아버님, 염려 마세요. 세금을 받으러 올 금성관리는 제가 맡아서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아들의 자신감 있고 시원스런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어린 네가 금성관리를 어떻게 한단 말이냐” 라며 반문을 했다. “제가 어리기는 하지만 생각이 있습니다. 한번 믿어보세요"
해결방법이 없던 차라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 그럼 네가 한번 금성관리를 먼저 만나 보거라, 다만 억지를 부리거나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당부를 했다.
며칠 뒤 금성군의 관리가 세금을 받으러 오자 아들이 먼저 그를 만났다.
"먼 길 오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제가 드릴말씀이 있어 이렇게 뵙자고 했습니다. “ ”언제부터 이 부래산 때문에 세금을 걷어 가셨는지요."라고 물었다. 심기가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원님의 아들이고 품격 있게 질문을 하니 답변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산이 우리 금성군에서 이곳으로 떠내려 온 것을 안 후 부터이니 꽤나 오래되었지"
금성관리는 오래전부터 걷어 간 것을 강조하면서 건방진 투로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 동안 좋은 산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잘 활용하며 고마워하는 마음에 세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올해 저희고을에 큰 흉년이 들어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쪼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세금을 드리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송구스러우나 이제 우리고을에서는 저 산이 필요치 않으니 도로 가지고 가셨으면 합니다. “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금성관리는 기가 막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한마디를 더 붙인다. ”저 산을 바로 가져가지 않으시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 산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기에 금성군에서 매년 자릿세를 우리에게 내주셨으면 합니다.“ 금성관리는 아무소리도 할 수 없었다. 당돌하지만 조리 있고 논리정연한 언변에 금성군의 관리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얼굴이 벌게진 모습으로 돌아간 후 두 번 다시 세금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세금에 시달리던 서민들의 생활체험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전설이다.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관리(기성세대)에 비해 슬기롭고 용기 있는 신세대들의 처세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신세대들도 나름대로의 기발한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작은 생각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을 유도해
주자는 교육적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춘천의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산리 아기장수 전설 (0) | 2016.01.04 |
---|---|
효자 반희언의 효성 (0) | 2016.01.04 |
죽림동 전설 (0) | 2016.01.04 |
아침못 전설(못이 되어버린 부잣집 터) (0) | 2016.01.04 |
여우고개 (0) | 2016.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