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말 죄송해유~
樂涯 심 창 섭
* 빵! 빵!
신경질적으로 뒤쪽에서 경적소리가 계속 울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백미러를 보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뿐이었다. 그저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고 앞만 보고 엉금엉금 기어가던 그런 초보운전 시절이 있었다. 부딪칠 듯 쏜살같이 스쳐가는 차량들로 현기증을 느끼며 불쑥불쑥 끼어드는 차량에 급브레이크를 연신 밟아대곤 했다. 면허를 따고 처음 도로로 나섰을 때 그 두려움과 흥분으로 어깨와 목이 뻣뻣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 진땀이 흐른다.
도로라인을 타고 비틀거리는 앞 자동차 운전이 어째 불안하다. 경적을 한번쯤 누를까 했는데 뒤 유리에 붙인 스티커가 보였다. 당연히 ‘초보운전’ 문구인줄 알았는데 ‘밥하고 나왔어요.’ 라는 문구였다. 불안한 마음에 옆 라인으로 비켜 들어가 곁눈질로 옆 차를 살펴본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약 40대정도의 세련된 여성이었다. 휴대전화를 하며 한손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의자를 곧추세우고 정면만을 바라보며 운전을 하고 있을 여성초보운전자 연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남성운전자들이 운전이 서툰 여성운전자를 만나면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라고 비아냥거리자 붙여진 반박표찰이다.
참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한산한 신작로 저쪽에서 먼지를 달고 달려오던 완행버스는 언제나 연착이었다. 또 하얀 먼지를 쓰고 있는 키 큰 미루나무 가로수 길로 소를 몰고 장으로 향하던 촌로의 풍경도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차량이 지나치던 그 한적했던 신작로에 우마차도 아닌 자가용이 개미떼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장님이 아니어도 자가용을 굴릴 수 있는 세상이다. 하긴 나 같은 범부凡夫도 자가용을 자전거처럼 부리는 세상이 되었다. 당당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으로 보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이럴 때는 내가 조심해서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초보운전 시절이 있었으리라.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수동기어(스틱)라 수시로 기어를 변속해야 했기에 초보운전자들은 변속이 서툴러 운행 중에 가끔은 시동을 꺼먹기도 했다. 또 비탈길에서 차가 뒤로 밀려 박치기 했던 그 긴장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거의 자동기어라 ‘초보운전’ 딱지 붙이고 다니는 차 볼 기회가 별로 없다. 초보자가 없어서가 아닌 초보운전자들을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등 초짜들을 대하는 운전자들의 태도 때문에 초보운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스티커로 대신하고 있다.
예전엔 그저’초보운전‘이라고 매직펜으로 큼직하게 써서 차량 뒷면 유리에 붙이고 선배운전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요즈음은’방금 면허를 따고 나왔어요. 라는 애교에서부터 ’저도 제가 무서워요’ ‘당황하면 후진해요’ ‘그래요 나 초보에요’ ‘1시간째 직진 중’ 라는 글귀까지 보노라면 진화의 속도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간혹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차를 보면 괜히 경적을 울리거나 급브레이크를 밟는 고약한 운전자들이 있어 붙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왕초보, 너무 바짝 다가오지 마세요.’
‘답답하시지요. 저는 환장합니다.’
‘아직 좌회전은 한 번도 못해봤어요’
‘초보운전- 마음은 카레이셔’
‘후덜덜 초보’
‘접근금지- 이 글씨가 보인다면 벌써 너무 가까이 접근하신 겁니다.’
라는 솔직한 문구가 있는가 하면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며 ‘지금 쌀 사러 가는 중이에요’ ‘지금 밥하러 가는 중입니다’ 라거나 ‘임산부가 타고 있어요’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며 되돌려 치는 애교스럽고 여성스런 문구는 그런대로 이해 할만 했다.
이처럼 톡톡 튀는 문구들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 아닐까? 그리고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라는 저 글귀는 무엇을 말 하고자 함일까? 성격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 타고 있으니 뒤따르는 차는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 같아 보이니 유쾌한 느낌일 수 없다. 또 ‘운전은 초보, 마음은 터보, 몸은 람보, 건들면 개!’ ‘백미러 안보고 운전합니다.’ 등 알아서 하라는 반 협박조의 문구도 있었다. ‘오 대독자 탑승 중’ ‘차 안에 소중한 내 새끼 있다’ 등 개성은 있을지 몰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초보운전’의 단순함에서 개성이 돋보이는 문구도 좋지만 안전과 사고예방을 위해서 초보는 초보답게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경력자들도 병아리 시절을 생각하며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할 운전문화의 시대이다. 방향 지시등도 안 켜고 차선을 순간적으로 변경하거나 작은 공간만 보여도 끼어드는 얌체운전이 선량한 운전자들을 화나게 만들고 있다. 작은 실수에도 욕설을 퍼붓는 행위는 삼가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지는지 모르겠다.
‘당신도 초보시절이 있었습니다.’ 라는 문구를 떠올려 본다. 그것이 운전이던, 사업이건, 취업이건 인생은 누구나 그곳에 서면 뒤뚱거리면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운전하는 행태를 보면 국민성과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운전문화에 앞서 내 자신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왜 운전대만 잡으면 마음이 급해지고 다혈질이 되는 것일까. 좀 더 침착하자, 그래 좀 더 여유를 갖자.를 되뇌며 룰루랄라 거리로 나섰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변하기에 액셀러레이터 대신 젊잖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뒤쪽에서 끼익~ 소리와 함께 빵! 빵! 전조등을 껌벅거리면서도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댄다.
순수했던 병아리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운전대를 잡고 유유히 거리를 달려보려고 했는데 뒤차 운전자의 화난 시선과 육두문자가 백미러에 가득 넘쳐났다.
아- 이 세찬세상을 견디어내려면 뒷 유리창에 이런 스티커를 하나정도는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증말 죄송해유 ~」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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