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난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져보다.
* 몇년에 한번 씩 어렵사리 꽃 피우는 난蘭을 정성으로 키우고 있다.
난초가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선과 운치를 따라갈 만한 화초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선비의 고고함과 기개의 상징적인 의미보다도 창가에서 실루엣으로 떠오르는 난초의 우아함 때문에 춘난春蘭 몇 촉이 담긴 화분을 애지중지하고 있다. 요즈음이야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흔한 화초가 되었지만 30여년전만해도 난은 아무나 기를 수 있는 그런 도락道樂이 아니었다. 자연산뿐이었기에 값도 비쌌지만 기르기도 까다로운 귀한 화초였다.
그러한 이유로 난을 키운다는 것은 대단한 호사豪奢였다. 옛 시인묵객들은 자연 속에서 매·란·국·죽을 사군자로 꼽아 인격을 부여하였고 그중에서도 난을 가장 으뜸으로 삼았다. 하물며 난초그림 묵란墨蘭조차 특별한 사람들의 영역이었기에 호사를 누려보고 싶었다.
자연 난의 무분별한 채취로 정부에서 재배장려와 수입개방으로 이제는 귀하지 않은 화초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아직도 웬만한 사무실에 가면 책상 위나 창가에 단아하게 놓인 난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꽃은 신이 만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난꽃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는 물론 그 자태와 늘 푸른 잎에서 변하지 않는 기개를 닮고자 수양의 수단으로 보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옛 선비들이 난꽃에 부여했던 의미나 감정은 오늘날 상징성도 희미해졌다. 특히 원예기술의 발달로 꽃이 지닌 고유의 계절감이 사라져 버렸고, 외래종 수입으로 꽃에 대한 취향마저 바꿔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가치관이 흔들리는 과학과 디지털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꽃은 여전히 우리 생활 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풍요로운 마음과 아름다운 정신을 지켜주는 상징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금아 피천득은 "난을 기르는 생활은 마음의 산책이요, 고고한 학처럼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고 살아있는 귀인"이라 했다. 고대 시대부터 "난은 미인과 같아서 꺾지 않아도 스스로 향기를 바친다"라고도 했다.
유난히 찬 겨울을 이겨낸 난초가 올해는 꽃대를 쑤욱 올리기를 기대해 본다. 설사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또 한해를 기다려 보리라. 난초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인품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했으니 난향을 포기하더라도 인향人香까지 버릴 수 없지 않은가.
「허난설헌」의 시 ‘蘭香-난초의 향기’를 음미해 본다.
그 누가 알리요, 그윽한 난초의 푸르름과 향기 誰識幽蘭淸又香 / 수식유란청우향
세월이 흘러도 은은한 향기 변치 않는다네 年年歲歲自芬芳 / 년년세세자분방
세상 사람들 연꽃을 더 좋아한다 말하지 마오 莫言比蓮無人氣 / 막언비련무인기
꽃술 한번 터뜨리면 온갖 풀의 으뜸이오니 一吐花心萬草王 / 일토화심만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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