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심창섭
봄꽃 앞에 서면
그리 예쁘지는 않아도 누이 같고 감참외 같다던 키 작은 점순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 고갯마루 나무에 기대어 오매불망 도련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이쁜이도 떠오른다.
아니, 시루 안마을 여기저기에서는 솥단지를 받아들고 짐을 싸는 들병이 계숙이와
아씨를 농락하던 행랑어멈의 음흉한 속셈도 보이고, 야밤에 덕돌네 집을 빠져 나와 방앗간으로
향하는 아낙의 발걸음에 짓밟혔던 야속한 시간의 흔적들도 떠오른다.
이 주사에게 스스로 다가서는 열아홉 살 춘호의 안해와
소장수에게 팔려가는 복만이의 안해와
콩밭에서 노다지 꿈에 부푼 셈을 하던 안해와
남편의 지게에 얹혀 마지막 당부를 하던 병든 안해와
밤새 들병이 노랫가락을 배우던 음치 안해의 애환들이
아픔에 겨워 둥글둥글 엽전모양 봄꽃으로 마구 피어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건
흐드러진 동백꽃 속으로 나를 밀치던 또 다른 점순이의 정분이 아직도 그윽하기에
알싸한 설레임으로 이 봄을 맞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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