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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검법

* 톡, 톡, 토옥~ 타 닥! 낙숫물 소리가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느리기는 하지만 나름의 박자감이 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모니터 화면에 모음과 자음이 결합되며 글자가 한자씩 완성된다. 마치 석수장이가 글자를 새기는 듯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다. 독수리 타법보다도 더 느리다는 낙숫물 타법이다. 양손의 검지와 중지가 나름 바쁘게 움직이지만 더듬거리는 거북이걸음이다. 게다가 병아리 물먹고 하늘 보듯 쉴 새 없이 자판과 화면을 보며 까닥이는 고갯짓까지 동반한다. 그런 모습으로 27여년의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참 둔하고 딱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변명할 사연이 꽤나 길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류는 펜으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후 사무실마다 타자기가 놓였지만 그건 여직원의 몫이었다. 직원들..

심창섭의 글 2021.12.26

김유정 추모시(2021)

김유정 문인비 樂涯 심창섭 호수 변 에움길 아직도 잉크냄새 폴폴 풍기는 펜촉하나 외롭다. 코발트색 잉크로 펜 끝을 적시는 너른 의암호 각혈로 물든 원고지를 채우며 동백꽃 피고 지는 사이 허리가 꽤나 굵어졌다. 설워마라 한 번의 오르가즘orgasm도 체험하지 못한 채 올봄도 속절없이 떠났지만 계절은 또 다시 돌아오는 것 저 넘실거리는 잉크물이 마르지 않는 한 빈 원고지에 채워야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참 허허롭다.

심창섭의 글 2021.12.17

의암호(소양강) 삭도의 본 모습을 살펴보다

❚폐 다릿발의 미스터리mystery를 풀다 * 의암호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다릿발의 본래 모습이 궁금했다. 막연하게 삭도索道의 잔재물이라고 전해지지만 명확하게 실체를 설명해 주는 사람이나 자료도 없었다. 이번에 춘천학연구소의 도움으로 국가기록원과 신문자료를 통해 본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폐 교각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착공한 화천댐 건설자재운반을 위해 1940년에 만들어 졌던 삭도의 잔재물이다. 삭도cableway란 공중을 가로지른 강철선에 운반용기를 매달아 사람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장비를 지칭하는 한자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운송용기가 차량형태로 사람이 타는 것을 케이블카cable car라 하고 단순한 바가지 형태로 화물을 운반하는 것을 삭도라 한다. 화천댐 건설을 위해 주요 자재인 시..

'서당 개, 달 보고 짖다' 수필집 소개

서당 개, 달 보고 짖다저자심창섭출판산책 | 2020.12.23.페이지수272 | 사이즈 150*205mm판매가서적 11,700원 책소개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 피고 지는 일은 자연스러우니 나이를 먹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말하며 로맨스 그레이(romance+grey)를 꿈꾸는 저자의 일상이 담긴 수필집이 발간되었다. ‘서당 개, 달 보고 짖다’는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빠른 듯 느린 듯 흘러간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글과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배치하며 전개되고 있다. 저자는 부족한 문학감성을 채우기 위함이라 고개를 숙이지만,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시인이자 문학박사인 박민수 전 춘천교대 총장은 책의..

문화관련 2021.02.27

미셀러니 『서당 개, 달 보고 짖다』 발간

prologue 로맨스그레이romance grey를 꿈꾸며 * 어느 사이 세월이 꽤나 흘렀다. 미련을 비워야 한다면서 또 일을 저질렀다. 한동안 책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오랜만에 집중력은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 순간이 행복해 멈출 수가 없었다. 숨찬 과욕이지만 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개밥에 도토리마냥 뒤채이다가 불혹의 문턱에서 우렁각시 만나 어렵사리 상투를 틀었다. 의암호 언저리에 둥지 틀고 셔터누르기와 끼적임을 벗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워져가는 첫사랑이 잊힐까 임프란트 치아로 되새김질하며 그리움과 외로움사이에서 조금씩 시들어가는 중이다. 지공선사地空禪師 자격을 얻은 지 이미 오래이다.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무례해 보이지 않고, 식구들 앞에서 서슴없이 방귀도 뀔 수 있는 나이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21.01.08

춘천의 기념비 - prologue

-봄내골에 남겨진 무채색 유물과의 조우- * 얼마만큼을 이곳에서 살아야 진정한 춘천사람이 되는 것일까.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정이 든 곳을 제2의 고향이라 했는데 붙박이인 내게 춘천은 어떤 곳이며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한곳에 터 잡고 오랫동안 살아간다고, 도시 지리를 꿰뚫거나 후미진 곳에 남겨진 문화유적을 알고 있다고 춘천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그 하나만으로 춘천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시대에 편승하고자 불로거가 되었다. 내 고장의 모습을 내 시선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몇 가지 주제 중 관심의 뒤안길에 있는 비지정 문화유적을 스케치하듯 찾아 나섰다.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 느낀 단상을 적어나갔다...

심창섭의 글 2020.12.21

수필 '모모한 일상'

모모한 일상 * 코로나19로 지구촌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인종과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답답한 세상의 한가운데 내가 서있게 될 줄이야! 아마 역사는 코로나가 21세기를 흔든 재앙으로 기록할 것이다. 1·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한 실체 없는 상대였다. 국경도, 무기도, 이념이나 종교도 아닌 보이지도 않는 한방(onepunch)으로 지구촌이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인류를 한 번에 가장 많이 죽인 것은 전쟁이 아닌 질병이라고 한다. 14세기에도 2억여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흑사병이 있었다. 이후에도 스페인 독감, 홍콩독감, 신종플루, 사스와 메르스 등 몇 차례 독감바이러스와 에이즈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동안 당연시 여겨졌던 평범한 일상들이 지워지고 ..

심창섭의 글 2020.12.21